메뉴 건너뛰기

close

지금으로부터 8년 전, 97년에 이뤄진 도청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같은 해, 내게도 도청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당시 한총련 핵심간부로 수배를 받고 있던 지금의 아내와 막 연애를 시작하고부터다.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처음엔 나름대로 '스릴'도 있었다.

어느 날 모 대학의 총학생회장이 보안수사대에 연행됐다. 전담 형사는 그 학생을 연행하는 봉고차 안에서 허리에 찬 자신의 '복제 무선호출기(삐삐)'를 자랑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총학생회장의 삐삐에 '호출'이 오자, 동시에 그 형사의 허리춤에 찬 삐삐도 같이 울렸다. 결국, 그 경찰은 수배자의 호출기 사용내역을 실시간으로 죄다 파악한 것이다. 이후 수배자들 사이에는 '삐삐 사용 금지령'이 내려졌다.

그래도 우린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연애 중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운동권과는 전혀 관련이 없을법한 친구들만 골라 그들의 주민등록번호를 빌려, 나와 그녀의 삐삐를 개설했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 둘만의 삐삐 암호까지 만들어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혹시나 해서 우리는 두서너 달에 한 번씩 둘이 가지고 있던 삐삐를 중지시키고, 새로운 주민등록번호로 새 호출기 번호를 개설했다. 아마도 몇 차례 같은 일을 반복했던 것 같다. 본의 아니게 우리는 요즘말로 말하면 '삐삐 얼리어답터'가 된 것이다. 호출을 할 때도 사무실이나 집 가까운 곳의 전화는 아예 피했다. 공중전화 사용은 기본이고, 급하면 아무 가게나 들어가 전화 한 통을 얻어 썼다. 우린 '통신보안'에 있어서만큼은 그만큼 '감쪽같고 완벽했다'고 자부했다.

그랬건만, 그들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내의 행방이 묘연히 지자, 어느 날 갑자기 보안수사대 요원들이 나의 직장으로 들이닥쳤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들은 우리 둘만이 아는 동선을 거의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소름이 끼쳤다. 얼마 후 아내도 경찰에 연행돼 구속됐다.

도청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끔찍한 공포를 모른다.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은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불러 온다. 과거 학생운동권 수배자들이 상황이 해제된 이후에도 공황장애, 우울증 등으로 몇 년간 정신질환을 앓은 사례는 숱하게 많다.

그럼에도, '그들'은 왜 도청을 선호했을까. 도청이 과거 경찰, 안기부, 기무사 등 정보기관의 일상적인 관행이라고 봤을 때, '도청의 수요'를 제공했던 권력자들이 1차적인 원죄자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럼 그 권력자들은 왜 '도청 텍스트'에 목을 맬 수밖에 없었을까.

권력자들은 결국 피해자들의 속마음과 '강제 커뮤니케이션'하는 도구로 도청이라는 수단을 애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열길 속마음'을 아무에게나 내주지는 않는 법이다. 도청 사용자들은 도청 피해자들의 진짜 '속마음'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으리라.

어떻게 보면, 비정상적인 권력자들의 처지가 도청이라는 불법적인 방법을 더 선호하게 하였으리라고 추측된다. 군사파쇼정권이나 권위주의정권 등 어딘가 모자란 '콤플렉스 정권'들이 어쩔 수 없이 만들어낸 공작정치의 산물이 바로 도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도청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도청 피해자들과 당당하고 떳떳이 밝은 세상의 무대에 나와 머리를 맞대고 국사를 논할 수 있는 정당성이 이미 결여됐기 때문이다.

도청은 분명 남의 마음을, 남의 정신을 훔치는 비겁하고 나쁜 짓이다. 그럼에도, 검은 권력자들의 똘마니에 불과했던 '안기부 아저씨'들이 "내가 입을 열면…"이라는 멘트를 날리는 걸 보면 연민이 느껴진다. 지금은 가끔 칭얼거리는 애들을 달래는 장난감으로 전락한 옛 삐삐들을 보며 든 단상이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