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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은 것일까. 곧게 뻗은 중국 청도의 스카이라인을 따라 달리던 관광버스가 잠시 멈칫했다. 잠시 우회전과 좌회전을 거듭하던 버스는 이름모를 좁은 골목길로 큰 몸집을 겨우 들이 밀었다.

이윽고 '卽墨路小商品市場'이라는 현판이 걸린 2층 건물이 나타났다. 현지인들에게는 '찌모루' 시장으로 불렸다. 건물 외양은 남루했지만, 인근에 관광버스 10여대는 족히 주차할 수 있는 전용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중국 산동성 최대의 짝퉁 명품 시장이라는 명성을 확인시켜주는 듯 했다. 한국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버스는 쉬지 않고 주차장으로 몰려들었다.

▲ 중국 산동성 최대의 '짝퉁' 시장인 청도시 찌모루 시장 입구.
ⓒ 홍기삼
입구에 들어서면서, 20대 여성 관광객 한 명과 어깨를 부딪쳤다. 상대방은 이내 '미안합니다'라는 한국말을 남기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총총 걸음으로 사라졌다. 그는 양 손에 서너 개의 반투명 쇼핑주머니를 움켜쥐고 있었다. 현지 가이드 박동화(32)씨는 "이 곳은 청도를 찾는 한국 사람들이 방문 첫 날에 들르는 필수 쇼핑코스"라며 "상인들도 대부분 기초적인 한국어를 구사할 정도"라고 귀띔했다.

지상 1층은 주로 시계와 진주 등이 진열돼 있었다. 보석관련 인터넷쇼핑몰을 운영하는 한국 상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고 했다. 로렉스, 불가리 등 외국 유명브랜드 상표를 그대로 모방한 상품 등을 드러내 놓고 팔고 있었다. 한 가게에 한국 관광객 서 너 명이 몰려들면서 흥정이 붙기 시작했다.

"타이 꾸이 러~, 피엔 이 이 디얼."(너무 비싸요, 싸게 해 주세요)

처음 200위안이던 짝퉁 로렉스 시계가 몇 번의 실랑이 끝에 90위안에 낙찰됐다. 진짜 로렉스 시계를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언뜻 보기에 가짜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제품은 깔끔하게 복제된 듯 했다. 한국 돈 1만2,000원으로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시계의 호사를 잠시나마 느껴보는 것. 이게 '짝퉁 쇼핑'의 묘미일까.

이런 마음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지, 세계에서 가장 장사를 잘 한다는 중국 상인은 장소를 옮기려던 한국 관광객의 소매를 다시 붙잡았다.

"하나 더 사면 아까 그 시계를 80위안에 주겠다."

가방과 신발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2층에 올라섰다. 재래시장 분위기가 나던 1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돌았다. 한글로'명품 가게'라는 간판이 붙은 점포까지 있는 것으로 봐서 이 곳은 상당한 '짝퉁 격전지'인 것처럼 보였다. 우리나라의 동대문쇼핑 타운처럼 다닥다닥 붙은 수십 개의 가게에서는 구찌, 루이비통, 샤넬 등 웬만한 명품 브랜드는 모두 구비해 놓고 있었다. 물론 모두 가짜다.

중국 당국 단속도 무색…한국 세관도 무사통관

최근 중국 당국이 자국내 가짜 상품 판매에 대한 판매규제를 시작하면서 주요 시장에 '상표법 위반'을 경고하는 안내문이 나붙기 시작했지만, 아직 단속 여파가 이 곳 산동성까지 내려오지 못한 것 같다. 아예 명품 브랜드의 로고나 상표를 떼고 판매하는 타 지역의 짝퉁 시장과 달리 이 지역이 한국 관광객들에게 갈수록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기도 했다.

서너 평이 아니라 10평 이상의 대형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짝퉁 가게도 있었다. 인테리어도 한국의 여느 매장 못지않게 세련됐다. 'Montagut'이라는 중국 자체 브랜드 피혁제품을 주로 판매하는 주인이 "한궈런?"(한국 사람이냐?)이라는 말 한마디를 던지곤, 금세 고객들의 팔을 가게 한 편으로 잡아끌고 쪽문을 열었다.

▲ 한국 관광객들이 밀실에 진열된 짝퉁 상품을 놓고 가격 흥정을 벌이고 있다.
ⓒ 홍기삼
"우와~." 찾을 걸 찾았다는 듯이 한국 관광객들 사이에서 외마디 탄성이 튀어나왔다. 두 평도 채 되지 않은 밀실에는 A급 짝퉁 제품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었다. 페라가모 로고가 찍힌 여성용 쇼울더백을 집어 들자 주인이 800위안을 불렀다.

턱도 없이 비싸다는 표정을 짓자 중국 상인은 "이건 진짜 가짜"라고 한국말로 말했다. 'AA급 짝퉁'이라는 뜻이다. 겉모양은 물론, 가방 속을 들여다봐도 진짜와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했다.

결국 이 제품은 절반 가까이 가격이 깎여 한 손님의 손에 넘어갔다. 한국 관광객들이 아예 처음부터 깎는다는 걸 잘 아는 지, 물건을 집어 들자마자 할인된 가격부터 계산기에 찍어줬다. 기자도 여성용 짝퉁 구찌 파우치(70위안)와 루이비통 지갑(40위안)을 샀다. 확인 결과 구찌 파우치의 경우 서울의 유명 백화점 매장에서 개당 35만원에 판매되는 제품이었다.

이날 동행 취재했던 한국 관광객 40명은 한 사람이 많게는 1,000위안까지 상당량의 짝퉁 제품을 구입했다. 원칙적으로 상표법 위반제품인 짝퉁은 모두 세관 압수대상 품목이지만, 이들 짝퉁 제품은 모두 인천세관을 무사 통관했다.

인천세관 관계자는 "단 1개의 짝퉁이라도 압수대상이지만, 본인이 쓰겠다고 한두 개 들여오는 짝퉁의 경우 간혹 그냥 통과되는 경우도 있다"며 "출입국 지연으로 인해 전수조사를 못하기 때문에 간혹 예외가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러나 판매목적으로 들여오는 짝퉁의 경우 전원 압수조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인천세관은 지난해 981억 원치의 상표법 위반 물품을 압수했다. 이중 절반이 넘는 제품이 시계류로 517억 원치를 차지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8월 15일에 취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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