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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9일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시국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즉각 이들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고,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이를 받아서 머릿기사로 보도했다. 이에 고건 국무총리는 즉각 감사원에 특감을 요청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그리고 보수언론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근무하는 직원은 공무원의 신분이며, 따라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도록 규정한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이를 지켜보면서 법률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답답한 마음에 법전을 뒤져보고, 이 글을 쓴다.

과연 그들은 법조문을 읽어본 것일까?

최근 우리 국민들은 때 아닌 법률 공부를 하고 있다. 헌법과 국가공무원법에 대해서 토론을 한다. 기각과 각하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 효력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 법학개론에 나올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토론거리가 되고 있다. 어느 야당 정치인이 말했듯이 전 국민이 좋은 공부를 하고 있는 셈이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7조 2항을 보면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되어 있다. 또 이 조항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국가공무원법 제65조에는 "정당 기타 정치단체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가입"을 금지하고 있고, "선거에 있어서 특정정당 또는 특정인의 지지나 반대를 위하여" 투표에 개입하거나 서명운동, 문서나 도서를 공공시설에 게시하거나, 기부금을 모집하거나 공공자금을 이용하도록 하거나 타인을 정당이나 정치단체에 가입하게 하는 등의 행위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즉, 공무원의 정당 활동과 선거 개입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또 하위규정인 공무원복무규정에 이 조항에 대한 세부 설명규정이 있다.

그렇다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직원들이 위에서 정하고 있는 국가공무원법을 어겼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직원들의 의견발표가 국가공무원법 제65조 1항에서 금지한 “정당 기타 정치단체의 결성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럼 2항에서 금지한 “선거에 있어서 특정정당 또는 특정인의 지지나 반대”를 위하여 한 행위인가를 살펴보자.

‘선거에 있어서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의 지지나 반대’가 아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직원들은 성명서를 통하여 국민에게 봉사해야 하는 공무원으로서의 국회의원들이 행한 공적 행위, 즉 탄핵표결행위에 대하여 자신들의 견해를 발표한 것이다. 이러한 의견 발표는 헌법이 정한 표현의 자유에 근거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의견 발표가 국가공무원법 제62조 2항이 정하는 “선거에서 특정정당이나 특정인을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직원들의 성명서를 보면 ‘탄핵사건’은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하고자 하는 과거사 청산 작업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는 것과 이를 저지하기 이해서 노력하겠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성명의 그 어느 곳에도 “선거에 있어서” 특정한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하여“ 행한 것이라는 근거는 없다. 그들은 특정정당이나 그 정당의 입후보자들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입법부의 공무원인 국회위원들의 공무수행과정을 비판한 것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의문사진상규명이라는 역사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탄핵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뿐이다.

야당과 보수언론을 주장하는 것처럼 탄핵을 반대하는 행위가 ‘선거에 있어서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는 행위’로 규정되면, 탄핵반대행위는 명백한 사전선거운동으로서 선거법에 의한 처벌 대상이 된다. 광화문의 20만명 등 전국의 수 많은 국민이 선거법이 금지하고 있는 사전선거운동을 한 셈이 된다. 그렇다면 국민은 정치인을 비판할 방법이 없다.

정치적 행위와 정치적 사건에 대한 견해 표명은 구별해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직원들의 의견발표가 국가공무원법이 정하고 있는 두 가지 사유, 즉, ‘정당 등에 가입하는 행위'이거나 '선거에 있어서 특정정당과 정치인의 지지나 반대'에 속한다고 볼 수 없다. 더 넓게 해석을 해서 선거와 무관한 '특정 정당을 반대하는 행위'로 볼 수 있는지를 살펴볼 경우에도, 성명서를 발표한 목적이 '특정한 정당이나 정파를 반대'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하기 보다는 '탄핵행위'와 그를 행한 '공무원인 국회의원'들에 대한 비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정치적 행위’와 ‘정치에 대한 비판’을 구분해야 한다. 이번 성명서 발표는 정치적 행위가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흔드는 정치적 사건에 대한 견해표현일 뿐이다. 그러한 성명 발표 때문에 결과적으로 국민들로부터 비판받는 정당이 손해보는 것까지 시민이 책임질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더불어 정치적 자유권은 인간으로서의 기본 인권이다. 그러한 인권을 제약하려 할 경우에는 아무리 공무원이라 하더라도 최소한으로 그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헌법정신은 아래에 소개할 판례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공무원의 모든 집단행위가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또 한나라당과 민주당 그리고 보수언론은 성명 발표는 국가공무원법 제66조의 집단행위금지조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가공무원법 제66조 1항에는 “공무원은 노동운동 기타 공무이외의 일을 위한 집단적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되어 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직원들이 연명으로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집단적인 행위'로서 처벌의 대상이라는 말이다.

이 조항은 공무원들의 노동조합 설립을 금지하는 조항이다. 이 조항으로 전교조 결성을 전후해서 대략 50여명 교사들이 구속되고, 1500여명의 교사들이 해직을 당했다. 또 그 동안 공무원들의 집단의사표현을 막는 도구로도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교원노조와 공무원노조의 설립으로 이 조항은 거의 힘을 잃고 있다.

그렇다면 공무원들은 그 어떠한 집단적인 행위도 할 수 없는 것일까? 단체로 하는 축구나 배구를 하면 집단행위 위반이 된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금지되는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이전에는 왠만한 서명 운동에 대해서도 이 조항으로 징계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1992년 이를 명확하게 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판례는 공무원의 기본권을 옹호

1989년 강원교사협의회(전교조의 전신) 정책실장을 맡았던 오아무개 교사는 법으로 금지된 전교조 설립을 주도하고, 교사들의 집단 서명과 집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이 조항에 의하여 구속되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오 교사에게 국가공무원법의 집단행위금지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 번호 : 대법 90도 2310. 1992년 2월 14일 판결)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공무원도 기본권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집회, 결사의 자유를 포함한 표현의 자유는 인간이 그 존엄성을 지켜나가기 위한 기본적인 권리”이고 “공무원에 대하여도 이는 동일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법원은 공무원에게 일률적으로 또는 전면적인 기본권 제약을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을 보면 “공무원의 경우 그 지위나 직무의 성질에 비추어 일반 국민보다는 이에 대한 제약의 필요성이 예상될 수 있으나 그 경우에도 그 공공성이나 필요성을 이유로 하여 일률적, 전면적으로 제한하여서는 아니”된다고 적혀 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기본권의 본질은 침해할 수 없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판결문을 보면 “제약의 사유가 존재하는 경우에도 그 한계를 설정하여 제한되는 표현의 자유와 그 제한에 의하여 보장하려는 공익을 서로 비교하여 형량(비교, 형량의 원칙) 제한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되어 제한하는 경우에도 최소한의 정도에 그쳐야 할 것이고(최소한 제한의 원칙) 그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여서는 아니 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다시 말하면 해당 공무원의 직무의 성질 등을 살펴서 표현의 자유 등을 제약할 공적 필요성이 있는 경우 한하여 일부 제약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제약해서 얻으려는 공익과 제약을 당하는 공무원이 잃어버리는 기본권을 비교해 봐야 하고, 그래도 제약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제약하는 것이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까지 침해하는 정도는 아니어야 한다는 말이다.

공익을 해치거나 직무전념의무를 해태하는 경우만 금지

이에 덧붙여 대법원은 "그렇다면 국가공무원법상의 ‘공무이외의 일을 위한 집단적 행위’가 공무가 아닌 어떤 일을 위하여 공무원들이 하는 모든 집단적 행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위 법규를 헌법 합치적으로 제한 해석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헌법규정, 헌법상의 원리, 국가공무원법의 취지, 국가공무원법상의 성실의무 및 직무전념의 의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공익에 반하는 목적을 위하여 직무전념의무를 해태 하는 등의 영향을 가져오는 집단적 행위’라고 축소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판시했다.

이를 살펴보면 국가공무원법 제66조에서 금지하고 있는 집단행위란 그 목적이 ‘공익에 반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러한 행위가 ‘직무전념의 의무를 게을리하는 것’으로 한정하여야 한다고 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직원들을 처벌하려면 그들의 발언이 ‘공익에 반’하는 것인지를 밝혀야 하고, 또 그들이 그러한 성명을 발표하면서 본래 수행하여야 할 공무를 게을리 했음을 입증해야 한다. 만일 그들이 수행해야 할 의문사진상규명작업을 팽개치고 하루 종일 앉아서 성명서의 문구를 다듬었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처벌할 방법이 없다.

공무원도 국민이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고 말한다. 이 말은 공무원은 공무의 범위 안에서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사적 이익을 위해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정치적 중립 역시 특정 정파나 정당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이 갖는 공무원으로서의 지위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업무수행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한사람인 공무원이 정치에 대한 견해를 갖는 것은 매우 사적영역이다. 공무원이 특정한 종교를 갖는 것처럼, 선호하는 정당이나 정파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재 우리 나라의 공무원법에 공무원이 정당에 가입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은 공무수행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도록 한 것을 지나치게 개인의 영역까지 확대하고 있는 셈이다.

소방공무원이 한나라당에 가입하는 것과 철도공무원이 열린우리당에 가입하는 것은 개인의 영역이다. 소방공무원은 불을 잘 끄는 것이 그 임무이고, 철도공무원은 기차를 잘 운행하는 것이 그 임무이다. 그들은 공무의 범위 안에서 공무원의 의무를 가진다. 물론 공무내외를 불문하고 지켜야하는 품위유지의 의무는 있지만, 그 외의 사적인 영역은 보호받아야 한다.

소방공무원이 한나라당 화재만 진압하고 열린우리당에서 일어난 화재는 모른 채 하지만 않는다면 정당 가입이 문제될 것은 없다. 이처럼 우리 나라에서 초중고교원과 일반공무원의 정당가입을 금지하고 있는 것은 정치적 자유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무원의 기본권 탄압은 자유민주주의와 배치

더구나 이번 성명서 발표는 특정정당을 지지하기 위하여 또는 반대하기 위하여 행한 ‘정치적 행위’가 아닌 ‘직업이 공무원’인 국민들이 헌법이 보호하는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것이다. 이러한 의견표명에 대해서까지 처벌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야당의원들이 항상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질서’에도 벗어난 것이다.

게다가 면책특권의 보호막에서 무책임한 발언을 쏟아내는 국회의원들이 고심하고 고심하다가 한마디 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직원들을 처벌하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서 민망하기 짝이 없다. 오히려 한나라당과 민주당, 그리고 조중동 보수언론이 처벌을 주장한다고 감사원의 특감까지 요청한 고건총리의 행동이 더 정치적으로 보인다.

참조 사항

국가공무원법 제65조 (정치운동의 금지)
①공무원은 정당 기타 정치단체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다.
②공무원은 선거에 있어서 특정정당 또는 특정인의 지지나 반대를 하기 위하여 다음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1. 투표를 하거나 하지 아니하도록 권유운동을 하는 것
2. 서명운동을 기도.주재하거나 권유하는 것
3. 문서 또는 도서를 공공시설 등에 게시하거나 게시하게 하는 것
4. 기부금을 모집 또는 모집하게 하거나 공공자금을 이용 또는 이용하게 하는 것
5. 타인으로 하여금 정당 기타 정치단체에 가입하게 하거나 또는 가입하지 아니하도록 권유운동을 하는 것
③공무원은 다른 공무원에게 제1항과 제2항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도록 요구하거나 또는 정치적 행위의 보상 또는 보복으로서 이익 또는 불이익을 약속하여서는 아니 된다.
④제3항외의 정치적 행위의 금지에 관한 한계는 국회규칙.대법원규칙. 헌법재판소규칙.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제66조 (집단행위의 금지)
①공무원은 노동운동 기타 공무 이외의 일을 위한 집단적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사실상 노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은 예외로 한다.
②제1항 단서의 사실상 노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범위는 국회규칙.대법원규칙. 헌법재판소규칙.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③제1항 단서에 규정된 공무원으로서 노동조합에 가입된 자가 조합업무에 전임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소속장관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④제3항의 규정에 의한 허가에는 필요한 조건을 붙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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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기도 했고, 교육청에서 '어공'으로 근무하기도 했고, 지금은 농사지으면서 유보통합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습니다. 직함을 물어보면 '참교육학부모회 자문위원'이라고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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