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철도차량(주)'(대우종합기계 의왕공장) 노동자들이 정부와 채권단의 대우측 지분매각 결정과 다시 불거진 공장폐쇄 문제로 '혹한의 여름'을 맞고 있다.

11일 대우종합기계 노동조합과 민주노동당 과천의왕지구당추진위 부곡분회에 따르면, 정부와 채권단은 오는 7월 말 대우측 지분매각을 위한 공개입찰을 실시해 8월 초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며 지분이 매각될 경우, 의왕공장은 폐쇄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합의 무시, 특정재벌 특혜 시비, 노조와 주민의 연대로 저지투쟁 본격화

이에 따라 노조와 부곡분회는 12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지역주민과 연대해 지분매각과 공장이전 저지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의왕공장을 이전하지 않고 창원공장과 함께 생산품목을 특화하여 양 공장체제로 운영한다"는 2000년 임단협의 합의사항을 준수할 것을 촉구하며 규탄집회와 대주민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조직적인 투쟁에 돌입했다.

성명에서 노조는 "노조와 아무런 논의도 없이 사회성과 종업원의 생존권을 무시한 채 정부와 채권단, 주주3사의 이권만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지분매각과 공장폐쇄 계획에 심한 배신감과 분노를 느낀다"고 밝혔다.

또 노조는 "정부가 강요하는 현대로의 밀어주기식 지분매각은 '전문경영인에 의한 투명경영', '세계5대 철도차량 제작업체로 도약'이라는 최초 한국철도차량주식회사의 단일법인 설립취지와 어긋날 뿐 아니라 재벌개혁의지에 반하여 현대재벌에게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는 특혜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2000년 임단협 당시 한국철도차량 사측은 합병에 따른 노조의 단협과 인원 승계를 파기하고 노조와 협의없이 공장분할 매각을 추진하는 등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했다.

이에 3개 공장의 노조는 '한국철도차량노조 공동대책위'를 구성하고 의왕으로 대거 상경, 88일간의 전면 파업을 통해 3개노조 단일 단체협약 체결과 부산공장을 이전하는 대신 의왕공장을 주력으로 창원과 양 공장체제로 운영한다는 단협안을 관철한 바 있다.


공장폐쇄 및 이전, 다시 불거진 배경

한국철도차량은 현대정공 창원공장, 대우중공업 의왕공장, 한진중공업 부산 다대포 공장으로 이루어진 김대중 정권 빅딜 1호 사업장으로, 99년 7월 동종업계의 과잉경쟁 방지와 경쟁력 향상을 명목으로 대우, 현대, 한진이 4:4:2로 출자하여 만든 합병 기업이다.

합병 당시 부채 6300억, 부실자산 1283억을 떠안고 단일법인으로 출범한 한철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통해 세계 4대 철도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에 따라, 인원을 30% 이상 감원하는 등 피나는 구조조정을 통해 올 상반기 출범 2년만에 38억의 흑자를 기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지분매각은 합리적 구조조정의 과정이라기보다는 대우 채권단과 주주3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현재 매각협상은 대우측이 현 주가보다 높은 가격에 현대측에 40%의 지분을 매각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전망이다. 한진이 있지만 현재 자금력이나 상주쪽에 공장을 신설한다는 복안이 별 실효성이 없어 결국은 현대가 80%의 지분을 흡수해 사실상 자회사로 만들 공산이 크다.

현대가 지분흡수에 나선 것은 무엇보다 독점 공급권이 지닌 매력이 크고, 이후 고속철도사업과 해외수주 증대, 시베리아철도로 이어지는 통일정세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또 정부가 특혜시비를 감수하면서 무리하게 지분매각을 추진하는 것도 이후 평양과 시베리아로 이어지는 현대와의 밀월관계를 계산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장이전 불가피한 처방인가?

1964년부터 현재까지 의왕시와 부곡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당당해온 한국철도차량 의왕공장은 현 대우종합기계로 인수되기 전부터 그 최적의 입지조건과 유무형의 인프라를 통해 한국 철도차량 생산의 메카로 기능해왔다.

또 의왕공장이 위치한 부곡 지역은 전국의 물류 컨테이너가 집결하는 종착지며 의왕공장은 생산된 철도차량이 시운전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해 공장이 폐쇄될 경우, 지역경제의 파탄은 물론 현재 세계 5위 수준의 한국 철도차량 생산의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문제는 지분매각과 공장이전을 둘러싸고 주주3사간 이득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소중한 국가적 인프라를 갖춘 의왕공장이 희생양이 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그런 와중에 1500여 노동자들이 단일법인 임단협의 효력을 잃고 '현대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의지할 곳 없이 거리로 내몰리는 것. 그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다.


막대한 시세차익 노린 시나리오 있다

시나리오의 핵심엔 공장 부지의 아파트로의 변신이 있다. 현지에서는 용지 변경이 이뤄질 경우 6배 가량 시세차익을 챙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대로서는 대우로부터 현 시세보다 다소 높은 가격에 주식을 매입하더라도 공장을 폐쇄하고 아파트부지로 매각할 경우 엄청난 차익을 남길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의왕시의회와 경기도의 도우미 역할이 필요하다. 용지 변경은 지자체 의회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우종합기계 노조는 임단협의 한계를 느끼면서 내년 지자체 선거에 대거 참여해 공장이전을 이슈로 정치세력화를 준비해왔다. 용도 변경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측이 쉽사리 공장폐쇄와 이전을 강행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분매각 일정이 예상보다 빨리 수면으로 떠오르면서 내년 선거를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게다가 지난해 말 88일간의 전면파업을 마친 후, 미처 임단협을 준비하지 못해 파업 등 보다 강력한 투쟁을 전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노조의 어려움이다.

냉각기를 거치지 않고 파업에 돌입하는 것은 "정치파업= 불법파업"으로 이어져 지도부 전체가 검거되는 사태를 각오해야 한다는 점에서 생각하기 어렵다. 지역 국회의원 역시 "특정재벌에 몰아주는 것은 잘못됐다"면서도 "정부와 주주사들의 일에 끼어들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입장이어서 별 도움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관건은 노동자의 정치적 진출과 지역주민들과의 강고한 연대

한적한 부곡역 앞 시장거리 IMF, 한철 합병, 대우사태 등으로 30% 이상 인력이 감축되면서 부곡 상권은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 서상영
따라서 이번 공장 이전 저지투쟁의 관건은 지역 주민과 얼마나 강력히 연대해 싸워나가느냐로 모아지고 있다. 이런 이 지역 상권이 의왕공장 때문에 형성됐다고 할 만큼 대우 공장의 역할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파업투쟁 당시 지역 주민들이 보였던 적극적 연대도 이러한 지역적 특성에 따른 것이다.

현재 노동자와 주민의 연대는 아직 수면으로 떠오르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지분매각과 공장폐쇄를 둘러싼 사측의 협상이 전혀 공개되지 않을 뿐더러 직접적으로 그 운명이 관련된 노동조합과 지역주민들과는 아무런 논의도 없다는 점에서, 7월 말 협상의 전모가 드러날 경우 노조와 주민, 그리고 정부와 주주3사간의 대결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프랑스에서도 99년 9월 타이어 제조회사 미슐렝의 노동자 대량해고사태를 시점으로 기업들이 피고용인들의 동의없이 사업장을 자의적으로 폐쇄하고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데 따른 대량해고의 피해가 사회 문제화된 바 있다. 그 해 10월 16일, 미슐렝 해고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에 합세한 공산당은 '경제적 해고로 침해당한 노동권'을 사회적 이슈로 강력히 제기했다.

그리고 집권 사회당과 공산당은 오랜 협의 끝에 올해 6월 13일 전문가에 의한 경영상태 진단, 2회 이상의 노사협의, 실업 급여 2배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미슐렝 개정안'의 입법에 성공했다. 같은 날 공산당 기관지이자 중앙일간지인 <뤼마니떼>는 "본질적 문제는 대량해고사태가 세계화, 자본의 전략, 세계경제기구와 증시에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본질적 문제는 이 사태가 인간을 이용하고 착취하고 압박하는 시스템의 계략의 산물이라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문 닫으면 안되지. 누구 맘대로"

16일 부곡역 앞 거리에서 만난 많은 주민들은 대우 노동자들의 서명활동에 적극적인 지지의 뜻을 표했다. "공장이 없어지고 아파트가 생겨도 상권이 유지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역 토박이라는 배성찬(31. 부곡동) 씨는 "결국 아파트로 변한다 해도 베드타운밖에 안될 텐데 기왕 같은 수라도 공장 노동자들하고 잠자러 오는 사람들하고는 질적으로 틀리다" 고 일축했다. 또 시장에서 순대 장사를 하는 한 아주머니는 "IMF 터지고 인원 줄고 대우사태 터지고... 여기 사람들이 나오질 않아"하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여기 공장이 문 닫을지도 모른다는데 영향이 크겠죠?"
"공장이 문을 닫아? 그럼 장사 못해 먹어. 문 닫으면 안되지. 누구 맘대로"

혹한의 여름, 지금 부곡은 폭풍전야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