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뷰티.
오랜만에 보는, 쓰디쓴 웃음을 머금게 하는 영화였다. 그 쓴 웃음이 뭘 의미하는지 몇일을 되새김질하다 홍성식 기자님의 글을 읽게 되었다. 재밌게는 읽었지만 뭔가 허전하고 부족한 듯하다. 너무 줄거리에만 매달린게 아닐까란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딸의 친구를 밝힌다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을까? 또 그걸 성윤리의 혼란과 중산층의 붕괴로 연결할 수 있을까. "섣불리 도덕의 칼날을 휘둘러서는 안된다. 웃음의 앞면과 뒷면, 그걸 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두 가정의 아버지를 주목하려 한다. 한명은 케빈 스페이시, 다른 한명은 이웃집 해병대 대령(이름이 생각 안나서..이하 "대령"이라 표기하겠다. 죄송)이다. 케빈 스페이시는 좋게 말하자면 자유주의적 아버지고 나쁘게 말하자면 무능력해 무시당하는 아버지다. (가장이 아니라)家'卒'이라고 할까.

같은 방식으로 말하자면 대령은 권위있는 아버지이자 동시에 파쇼적 아버지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니 인물의 어느 면을 선택할지도 다를 것이다.

먼저 케빈. 그가 딸의 친구를 좋아한다는 설정은 아무래도 '영계밝힘증'보다는 자유주의적 사람들의 방탕함을 이야기 하는 듯하다. 실제로 양심은 있었는지 그는 딸의 친구가 처녀인걸 알고 하려다(?) 그만둔다.

옆집 대령의 아들에게서 대마를 얻어다 피운다는 설정도 그렇다. 그리고 아주 짧지만, 아무것도 아닌듯이 지나치지만 얼핏 그의 젊은 날을 이야기한다. 왠지 60-70년대 히피나 청년학생운동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가 회사를 때려치우고 하는 일은? 다 아시다시피 햄버거 가게 종업원이다. 가족은 상관없이 자신만의 삶을 찾는게 케빈이다.

그리고 대령. 아들은 사고뭉치지만 그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토록 사고를 치는데도 아들방에 제대로 들어가 본 적도 없다. 아니 신경쓰기는 한다.

아들녀석이 나치 문양이 그려진 접시를 보려고 자신의 무기고에 들어가자 정말 부자지간일까 싶을 정도로 팬다. 그의 애정은 주먹으로 표현되고 강도로 증명한다.

그는 항상 말이 없고 무뚝뚝하다. 그가 항상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은? "해병대 대령 누구누구"다. 그런데 난 이런 아버지상에 더 공감이 간다.(동의한다는 뜻이 아니라 상징적이란 뜻이다. 이 부분은 다음에 기사를 쓰도록 하겠다.)

미국의 현실에서 봤을때 아예 두 인물을 민주당과 공화당에 비유한다면 어떨까. 더 좁혀서 클린턴과 매케인(혹은 부시도 좋다.)으로 보면 어떨까.

클린턴의 스캔들이 한창일때 뉴스위크지에서 그것을 젊은 세대와 늙은 세대의 문화적 가치간 싸움이라 명명한 적이 있었다. 과연 대통령의 성적 타락이 대통령의 퇴진으로 연결될수 있을까?

아마 엄격한 보수주의자라면 그래야 한다가 답일 것이고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자유주의자이라면 별 상관없다고 여길 것이다. 아메리칸 뷰티는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 다만 양쪽 모두에 신랄한 눈길을 보낸다. 그리고 결국 두 집안은 파탄을 맞는다. 가장 우스꽝스러운 이유로 가장 처철하게.

이제 현실로 되돌아와보자. 우리의 가정은 어떠한지. 아마 압도적으로 대령型이 많지 않을까 하는 것의 나의 편견이다. 또 IMF덕에 케빈型 아버지도 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그렇다면 우리 중산층은 더한 위험에 빠지지 않았는지...그것이 실컷 웃다 못내 씁쓸했던 이유가 아닐까.

2000-03-07 17:47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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