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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충무로 49-2. 을지로 노가리 골목 건너편에 '을지오비베어'가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강제집행으로 을지로를 떠나 마포구에 터를 잡은 지 약 2년 만의 복귀입니다. 그 시간 동안 타지를 떠돌다 제자리를 찾은 노가리와 생맥주, 그리고 사장 부부가 지키고자 한 44년 노포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기자 말>
 
 16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다시 문을 연 '을지오비베어'에서 손님들이 생맥주와 노가리를 주문한 뒤 맥줏잔을 부딪치고 있다.
16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다시 문을 연 '을지오비베어'에서 손님들이 생맥주와 노가리를 주문한 뒤 맥줏잔을 부딪치고 있다. ⓒ 복건우
  
 16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다시 문을 연 '을지오비베어'에 손님들이 영업 시작 30분 만에 가득 들어찼다.
16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다시 문을 연 '을지오비베어'에 손님들이 영업 시작 30분 만에 가득 들어찼다. ⓒ 복건우
 
"사장님, 노가리 하나랑 오비 생맥주 두 잔 주세요."

'을지오비베어'가 을지로에 다시 문을 연 16일 저녁, 20년 된 단골손님도 처음 오는 손님도 가게를 찾아와 노가리와 생맥주를 주문했다. 연탄불에 시꺼먼 석쇠를 얹고 이리저리 뒤집으며 구운 노가리를 안주 삼아, 진한 풍미가 가득한 생맥주를 주고받는 소리가 시끌벅적하게 들려왔다.

강제철거 이후 타지를 떠돌던 44년 노포 '을지오비베어'가 2년 만에 을지로로 돌아왔다. 만선호프, 뮌헨호프 등 맥줏집이 몰려 있던 야장 거리는 아니지만, 그 맞은편 블록에 문을 열고 어두운 골목길을 통창 너머로 환하게 밝혔다. 2대째 가업을 이으며 가게에서 생맥주를 내리던 강호신·최수영 부부는 "을지오비베어를 믿고 기다려 준 단골손님들을 생각해 무리하게 날짜를 당겨서 문을 열었다. 빨리 손님들을 만나 뵙고 싶었다"고 이날의 소회를 전했다.

을지오비베어, 우리만 쓸 수 있는 이름
  
 16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다시 문을 연 '을지오비베어' 간판과 그 오른쪽으로 44년 된 테이블의 목재가 벽에 세워져 있다.
16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다시 문을 연 '을지오비베어' 간판과 그 오른쪽으로 44년 된 테이블의 목재가 벽에 세워져 있다. ⓒ 복건우
 
"얘도 2년 만에 돌아왔네."

가게 문을 열기 전, 수영씨가 아직 자리를 찾지 못한 44년 된 목재 테이블을 가리켰다.

"어디다 놔야 할까. 가게 가운데든 끝이든 여기에도 다시 '노맥(노가리+맥주)' 올려야지요."

수영씨가 상기된 표정으로 부서진 목재를 가게 이리저리 옮기는 시늉을 했다. 1980년 대한민국 최초 프랜차이즈 생맥주 가게를 열 때부터, 2022년 4월 강제집행이 들이닥친 날까지 손님들을 거쳐 간 흔적이었다. 인근 공구거리 상인들이 한때 술잔을 주고받던, 철거용역의 횡포에는 너도나도 온몸으로 맞서야 했던 그 테이블이 16일 저녁 손님 맞을 준비를 마쳤다.

새로 연 을지오비베어는 처음 있던 가게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스무 개 테이블과 붉은 벽돌로 장식된 약 40평 크기의 실내에는 반짝이는 전구가 달린 전깃줄이 천장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노가리를 구울 때 쓰는 연탄화덕과 계절마다 온도를 달리해 생맥주를 케그(맥주통)째 보관하는 냉장고가 주방을 든든히 지켰다. 맛도 맛이지만 냉각기를 쓰지 않고 냉장고에 넣어 맥주를 숙성시키는 수고스러움도 그대로였다.

손바닥만 한 주문서를 보니 노가리, 황태, 쥐포 등 마른안주가 한 줄 가득 적혀 있었다. 존슨빌 소시지, 츄러스, 치킨 튀김 같은 기름진 안주도 별미였다. 가격은 모두 1만 원을 넘지 않았다. 이처럼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는 건 을지오비베어를 만든 아버지 고 강효근씨의 '고집' 때문이었다고 호신씨가 말했다.
   
 16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다시 문을 연 '을지오비베어'에서 강호신씨가 손님들에게 나갈 안주를 준비하고 있다.
16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다시 문을 연 '을지오비베어'에서 강호신씨가 손님들에게 나갈 안주를 준비하고 있다. ⓒ 복건우
 
 16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다시 문을 연 '을지오비베어'에서 최수영씨가 연탄불에 노가리를 굽고 있다.
16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다시 문을 연 '을지오비베어'에서 최수영씨가 연탄불에 노가리를 굽고 있다. ⓒ 복건우
  
"을지로는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한평생 고향 같은 곳이에요. 1980년부터 을지로의 풍족하지 않은 서민들, 공구거리 상인들이 고된 노동을 끝내면 380원짜리 생맥주와 100원짜리 노가리로 하루를 털어버리던 기억을 간직하고 계신 거죠. 우리 가게 생맥주와 노가리의 맛을 믿고 찾아주는 손님들이 있었기에, 저렴한 가격은 아버지의 자존심이자 고집이었어요."

강씨 부부는 이날 아침 을지로로 2년 만에 출근했다. 44년 전 '노가리 맥주골목'에 있던 을지오비베어는 2022년 4월 철거돼 경의선책거리 인근에 새 터를 잡았다가 이날 다시 을지로3가(중구 충무로 49-2) 골목으로 돌아왔다. 강씨 부부는 "마포구에 문을 열었을 때도 다시 을지로로 돌아오기 위해 주말마다 이곳 주변을 샅샅이 훑고 검색했다"고 떠올렸다.

"을지로는 이미 재개발로 사람들이 계속 쫓겨 나가는 상태였어요. 권리금에 거품도 많이 붙어서 괜찮은 곳 찾기가 힘들었어요. 그렇다고 원래 가게가 있었던 골목은 가고 싶지 않았어요. 좋지 않은 기억이고 저희가 꼭 그 골목에 있어야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저희는 그냥 을지로에 있었으면 해요. 을지오비베어는 오직 을지로에서 저희만 쓸 수 있는 이름이니까요."

새로운 을지오비베어 운영은 아들 성혁씨가 맡았다. 성혁씨는 강씨 부부와 가영업 첫날부터 아르바이트생들과 함께 노가리 수십 마리를 하나하나 연탄불에 굽고 뒤집었다. 노가리에 찍어 먹는 매콤한 특제 고추장 양념도 옮겨 담았다. 양념을 만드는 비법은 남편 수영씨와 아들 성혁씨도 모르는 호신씨만의 '영업 비밀'이었다.

44년 노포의 역사 이어 백년가게로
   
 16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다시 문을 연 '을지오비베어'에서 직원들이 잔에 맥주를 따르고 있다.
16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다시 문을 연 '을지오비베어'에서 직원들이 잔에 맥주를 따르고 있다. ⓒ 복건우
 
지금의 노가리 골목이 탄생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을지오비베어의 몫이 크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18년 을지오비베어를 '백년가게(100년 이상 보존 가치가 있는 가게)'로 선정했다. 서울시도 2015년 그 역사성과 특수성을 인정해 노가리 골목을 주류 점포 최초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서울 중구청은 예외적으로 이 골목에 야간 야장영업을 특별히 허가했다.

그러나 그 '원조'는 50년도 채 안 돼 골목에서 쫓겨났다. 을지오비베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에 따르면 건물주와 5년 법정 다툼 끝에 을지오비베어가 있던 자리는 2022년 7월 '힙지로 호프 광장'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사실상 만선호프의 열두 번째 가게다. 이를 포함해 주변 가게들을 하나하나 인수해 가던 만선호프는 지난해 기준 분점을 열두 곳까지 차렸다. 공대위는 지금도 을지오비베어와 노가리골목의 상생을 외치며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요구하고 있다.

새롭게 단장한 을지오비베어는 열흘 정도 뒤에 정식 개장할 예정이다. 노가리 골목, 심지어 '만선 골목'이라 불려도 어색하지 않은 '독점'의 건너편에서 을지오비베어가 '상생'의 노가리와 맥주를 다시 팔기 시작한다. 이날 밤늦도록 손님들이 가게 문을 열 때마다 강씨 부부는 그들을 반갑게 맞으며 인사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을지로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저희 가게를 이렇게 아껴주시다니, 저희도 큰 믿음을 드리겠습니다. 을지오비베어의 철학을 지키면서 20년, 30년, 40년 손님들과 앞으로도 가족처럼 잘 지내보겠습니다."
 
 16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다시 문을 연 '을지오비베어' 간판이 가게 뒤쪽 벽에 걸려 있다.
16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다시 문을 연 '을지오비베어' 간판이 가게 뒤쪽 벽에 걸려 있다. ⓒ 복건우

#을지로#을지오비베어#노가리#생맥주#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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