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쓴 류옥하다 시민기자는 전공의로 일하고 있습니다.[편집자말] |
의학 드라마는 로맨스, 로맨틱코미디, 스포츠, 수사, 법정 등과 함께 안방극장의 단골 장르물이다. 종류도 다양하다. 환자 치료에 초점을 맞춘 <낭만닥터 김사부>, <골든타임>부터, 우정물을 더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나 시트콤을 더한 <순풍산부인과>까지 셀 수 없을 정도다.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의학 드라마에서, 수술실 장면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 마련이다
. '수면마취 들어갑니다. 10..9..', '바이탈(생체 징후)이 흔들립니다...' 같은 대사는 '클리셰'(전형적인 장면)에 가깝다. 수술복을 멋지게 차려입고 양손에 글러브를 낀 채 집도의가 '메스!'라거나 '라이트'라고 소리치는 장면도 그 중 하나다.
사실 이런 수술실의 모습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작은 의문이 일었을지도 모른다. 분명 수술실의 등불은 위에서 비추고 있는데, 바닥에는 집도의나 보조자의 손바닥이나 머리의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다. 분명 그렇다면 이 '라이트'는 우리가 아는 평범한 그것은 아닐 테다.
병원에서도 모두들 '라이트'라고만 부르기에 의과대학 6년 동안 그것의 이름이 따로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졸업 직전, 흉부외과 수술에서 우연히 '그 라이트'의 제대로 된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여기 무영등 좀 맞춰주세요."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무영등
무영등(無影燈).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등불이라는 뜻이다. 라이트는 스마트폰의 라이트, 자동차의 라이트처럼 어디에나 존재하는 등일 뿐이라면, 무영등에서는 어딘지 모를 이지적인 집도의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직관적이고 품위 있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영등은 기능적으로도 일반적인 라이트와 달리 수술에 딱 맞게 설계되어 있다. 광원에서 발생하는 빛을 바로 내보내지 않고, 거울을 통해 반사해 다시 수술 부위로 모은다. 여러 개의 등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추어 그림자가 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빛이 밝을수록 발열도 심해지기 마련인데, 무영등은 이 문제도 해결했다. 수술 중 열은 장기를 건조하게 하고, 혈액 응고를 가속하여 결과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나 무영등의 특수 제작된 반사경들은 열을 최대한 흡수하여 빛이 닿는 수술 부위의 온도 변화를 최소화한다.
수술하는 의사의 시야에도 무영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조직의 색소를 구별하는 것은 수술의 성공 확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같은 붉은 곳이더라도 혈관인지, 조직인지 미세한 차이를 판별할 수 있는 '분해 능력'이 좋다면 더욱 꼼꼼하게 수술할 수 있고, 결국 결과도 그만큼 좋다.
무영등의 다른 말 '소셜미디어'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가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자 순리이다. 벚꽃 휘날리는 봄이 있으면 칼바람 휘몰아치는 겨울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희로애락이 없는 삶은 없다. 사랑과 이별, 힘듦과 뿌듯함, 고통과 성취는 음양의 조화처럼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무영등마냥 365일 그림자가 없는 곳도 있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 세상 속이다. 그 속에서는 모두가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오마카세를 먹으며, 해외여행을 다니는 듯하다. 나만 빼고 모두 '잘 사는' 것 같아 보이는 '무영등이 비추는 세상'이다.
소셜미디어 속에서는 쉽게 타인의 그림자를 찾기 힘들다. 그런 화려한 모습에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며 나의 현실과 비교한다면 생이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최근 10대 자살 증가나, 우울증 발병의 주요한 원인을 소셜미디어에서 찾으려는 것도 자연스럽다.
미국예방의학저널(AJPM) 2021년 2월호에 게재된 피츠버그 대학과 아칸소 대학의 공동 연구 결과에서는 하루 5시간 이상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하루 2시간 이하로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사람에 비해 우울증이 발생할 확률이 3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이 연구는 소셜미디어 사용과 우울증의 시간적 인과를 밝혀내어 충격을 안기기도 했었다(Brian et al. Temporal Associations Between Social Media Use and Depression, AJPM).
소셜미디어는 누군가의 소식을 접하거나 교류하는 원래의 취지를 이미 한참 벗어난 듯하다. 되려 자신이 하지 못한 가치 있는 경험을 다른 사람이 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나 우울감,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시킬 뿐이다. 포모('Fear Of Missing Out'=고립공포감)라는 신조어가 한창 유행하기도 했었다.
우리가 정말 인스타그램으로 누군가와 '교류' 한다 말할 수 있는 걸까. 명과 암을 모두 보지 못한다면 과연 누군가의 입체적인 참된 모습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단지 보정된 사진, 편집된 시간대의 피상적인 가상 인간을 만나고 교류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관계를 '친구'라 부르며 '팔로우' 한다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정말로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영등을 끈 삶을 향해서
한순간에 소셜네트워크를 끊자는 극단적인 주장은 아니다. 사용 시간과 빈도를 줄이는 '디지털 해독'만으로도 좋은 시도가 될 수 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서는 디지털 해독을 결심한 사람들에게 ▲명상의 시간 갖기 ▲운동하기 ▲얼굴 보며 대화하기 ▲스마트 기기 사용 규칙 만들기 네 가지를 권했다.
수술은 길어야 열몇 시간 안이면 끝난다. 그러나 우리 삶은 무영등이 비추는 수술실이 아니다. 인생은 의학 드라마 속 한 장면보다는,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으로 가득 찬 다채롭고 풍요로운 드라마에 가깝다.
그림자가 없는 무영등은 수술실에서 충분히 그 기능을 다하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는 소셜네트워크라는 무영등을 잠시 꺼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는 인스타그램의 손아귀를 벗어나 온전한 '나'로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림자나 결점에 조금 관대해진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