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미끄러졌는데 쇄골이 부러졌네요... 다들 눈길 조심하세요..."
단톡방에는 동료의 비보가 전해졌다. 17일엔 하루 종일 눈이 내렸다. 배달노동자는 도로에 두 발을 가까이한 채 운행을 해야 했다. 잠깐의 방심은 부상으로 이어졌다. 나도 몇 번을 미끄러졌다. 그래서인지 동료의 소식이 남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산재사고 1위인 배달업에서 사고는 흔한 일이지만, 겨울철 배달노동자의 사고는 평소와 다르다. 원래라면 교통사고가 주요한 원인이겠지만, 영하에 가까운 기온이 되면 배달노동자에게 새로운 위험이 등장한다. 그것은 '블랙아이스'다.
블랙아이스가 생기는 이유는 다양하다. 비나 눈이 내린 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도로 위에 수분이 얼어서 생긴다. 혹은 안개나 이슬이 차가운 지면에 얼어붙어서 생길 수도 있다. 문제는 블랙아이스를 육안으로 쉽게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배달노동자 사이에서 눈이 내리거나 밤이 되면 '골목길은 피하자'는 말을 한다. 평소에는 지나치던 골목길이 눈에 보이지 않는 빙판길로 변해 있기 때문이다. 통행이 드물거나 대리석으로 된 길은 배달노동자에게 공포 그 자체다.
그렇다고 큰 길이 안전한 것만은 아니다. 도로 위에 쌓일 눈과 블랙아이스를 예방하기 위해, 보통 '염화칼슘'을 뿌려놓는다. 이 염화칼슘도 위험을 초래한다. 오토바이가 염화칼슘에 미끄러지기도 하고, 염화칼슘이 만든 포트홀은 사고를 유발하기도 한다.
"겨울 배달은 아이템빨"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
추위도 배달노동자의 대표적인 고충 중 하나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 체감온도는 영하 20도에 육박한다. 영하 20도의 추위에는 옷을 여러 개 껴입어도 춥다. 손가락과 발가락은 마디마다 시릴 정도다.
겨울 배달은 '아이템빨'이라고 불린다. 배달노동자의 방한은 본인이 들인 돈에 달렸기 때문이다. 돈만 있다면... 방한화, 패딩, 발열조끼 등 무엇이든 살 수도 있다. 손을 보호하기 위해 오토바이 핸들에 토시도 달고 열선도 설치할 수 있다.
나는 이번 겨울을 나기 위해 방한복, 방한화, 방한장갑, 핸들 열선 등에 60만 원 가까운 돈을 들였다.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공장이나 건설현장이면 지급되는 장갑이나 핫팩도 배달업계엔 없고, 오로지 내 돈으로 사야 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사업주는 노동자에게 산업안전장비와 방한장비를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 이 규칙은 '산업안전'을 노동자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런데 배달노동자는 이 규칙을 적용받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산업안전을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여유가 없는 배달노동자는 '산업안전'에 들일 비용을 줄이며 추위와 위험에 놓여있다.
세상에 '만약'은 없지만 겨울에 일을 할 때마다 생각한다. 쇄골이 골절된 동료에게 사고 전에 산업안전장비가 지급되었다면, 그 동료는 병원이 아니라 거리에서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었을 거라고 말이다.
'필수노동' 책임지는 배달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노동자에겐 휴게실이 있지만, 배달노동자는 추위를 피할 쉼터도 없다. 보통 돈을 들여서 카페나 편의점에서 쉰다. 그런데 일부는 휴식도 비용인지라 쉬지 않고 일을 하기도 한다. 업무환경이 한랭질환에 노출되기 쉬운 조건이다.
때문에 배달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먼저, 모든 기초지자체에 이동노동자쉼터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배달노동자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노동자 사이의 차별을 시정하는 조치이기도 하다.
둘째로, 사업주가 배달노동자에게 산업안전장비를 지급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사업주가 장비 착용을 격려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장비 착용이 보편화될 것이다. 이때 지자체 차원에서는 소규모 배달대행사에게 산업안전장비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셋째, 기상악화 대응메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눈이 오거나 한파가 찾아올 때, 기상할증→거리제한→주문중단 등의 단계적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추가로 사고발생시 사업주에게 적극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기상할증은 기상악화라는 위험을 감수하는 부분에 대한 수당이다. 거리제한은 노면이 미끄러운 상황에 장거리 배달이 갖는 위험성을 고려한 제한이다. 주문 중단은 폭설 등과 같이 사고 위험이 높은 상황에서 배달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마지막으로, '기후실업급여'를 실시해야 한다. 기상악화 상황에서 발생한 '작업 중지'를 일시적 실업상태로 간주하고, 이 시간 동안 통상 수입의 70%가량을 실업급여로 제공하는 것이다. 위험한 상황에서 일하는 것을 개인의 선택으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
최근에 빈번한 '기후재난'은 공동체 모두의 책임이다. 따라서 상호 호혜와 연대 정신에 따라 사회보험으로 대비해야 한다. 사회보험 중 하나인 고용보험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기후실업급여는 배달노동자에게 실질적으로 일을 쉴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배달노동자는 '돌봄'을 전달하는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배달음식 덕분에 일에 지친 가구가 좀 더 쉴 수 있다. 배달은 우리 사회의 필수 노동이다. 배달노동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의 존재 덕분에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 때 모두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시민들이 배달노동자의 안전을 함께 고민하길 요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