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1사단
연합뉴스
2023년 11월, 해병대에서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이상한 장성 인사가 이뤄졌다. 장군은 정원과 보직이 정해져 있는데, 해병대는 한 자리인 중장이 사령관을 맡고, 그 밑에 소장 네 자리를 두고 있다. 이들은 해병대 1사단장, 2사단장, 부사령관, 합동참모본부 전비태세검열단장을 맡는다.
그런데 소장 중 한 명인 임성근 1사단장이 '정책연수'를 발령받으면서 인사가 꼬였다. 소장 정원이 네 명이고 보직도 네 개인데 느닷없이 한 사람이 연수를 떠나면서 보직을 채울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지난해 말부터 해병대 부사령관은 준장이 맡고 있다.
임성근 소장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당시 사단장으로 부대를 지휘했다. 부하들을 압박해 무리한 수색을 초래했다는 의혹에 따라 업무상과실치사죄로 입건된 피의자 신분이기도 하다. 원래 임 소장은 전비태세검열단장으로 발령받을 예정이었는데, 본인이 보직을 고사하고 정책연수를 희망했다고 한다. 무죄 입증에 주력하겠다는 것이 연수를 원하는 이유였다.
군 안팎에선 고개를 갸우뚱 하는 이들이 많았다. 공무원이 자기 신상 문제 해결을 위해 휴직이나 면직을 택하지 않고 임명권자가 주는 보직을 거절하며 사실상 '무보직' 상태나 다름 없는 연수생 신분을 희망하는 것도 이상하고, 그런 희망 사항을 그대로 수용한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처사도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국방부가 대통령 눈치를 보며 발 벗고 나서 임 소장이 생계 걱정 없이 수사 대비에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갖춰주고, 월급도 받아 갈 수 있도록 정책연수라는 이상한 인사 발령을 낸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오갔다.
연수지도 소속에 맞는 해군사관학교가 아니라 육군사관학교 산하의 화랑대연구소로 지정되었다. 해사는 진해에 있고, 육사는 서울에 있으니 이 역시 특혜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조치였다.
멀다는 이유로 다른 군부대 출근?
그런데 지난 1월말 임성근 소장은 서울 노원구에 있는 화랑대연구소가 아닌 영등포구에 있는 해군 관사 '바다마을아파트'에 거주하며 인접한 해군 재경근무지원대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덜미가 잡힌 경위는 이렇다. 임성근 소장은 박정훈 대령, 군인권센터, 기자 등에게 자신이 결백하다는 취지의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문서를 내용증명, 등기우편, 이메일 등으로 반복해서 보내고 있다. 등기 봉투에는 발신지가 모두 '화랑대연구소'로 찍혀있으나 배송조회를 해보니 실제 발신지는 모두 화랑대연구소가 아닌 서울신길7동 우편취급국이었다.
임 소장의 서울 관사 인근이다. 발송한 시간도 대부분 일과시간 직전이나 일과 중이었다. 정책연수생 신분의 임 소장은 화랑대연구소에서 연수 중이었던 게 아니었던 것인가?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임 소장은 언론인들에게 이렇게 해명했다고 한다.
"연수 초기에는 육사에서 주로 근무했으나 장거리 출퇴근으로 인한 비효율이 있어 최근엔 해군재경대대에서 주로 근무중입니다. 제 근무장소 중 하나가 해군 재경대대입니다."
대학 산하 연구소에서 연수생 신분으로 연구 중이어야 할 사람이 연구소가 집에서 멀다는 이유로 집 근처에 있는 다른 군부대 사무실에서 연구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군의 정책연수 시스템이 얼마나 엉망으로 규율 없이 운영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적나라한 실태가 아닐 수 없다.
연수도 엄연히 세금으로 월급을 받아 가며 수행하는 공무원의 임무 수행 중 하나다. 등기 봉투 발송지에 해군 재경대대라고 사실대로 적지 못하고 화랑대연구소라 적은 것을 보면 스스로도 떳떳하다고 생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