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티키타카가 이어지면서 사투리 특강은 일방적인 정보 전달이 아니라 사투리에 대한 담화로 확장된다.
하말넘많
최근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 출연한 이기광의 어색한 부산 사투리 연기가 논란이 됐다. 강민지는 이에 대해 "많은 배우들이 겪고 있는 문제"라면서 "모든 문장, 모든 단어에 리듬을 넣는데 경상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무뚝뚝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단어, 문장에 멜로디를 붙이지 말고 가볍게 사용을 하려고 해봐"라고 조언했다. 짧고 간결하게 툭툭 던지는 느낌으로 사투리를 하라는 것이다.
강민지는 "사투리는 말맛"이라며 말맛을 살리는 비법을 알려준다. "일본 사람들은 절대 표현을 못 하는 한국 말이 있고 한국 사람들이 발음을 못하는 일본어가 있는 느낌"처럼 경상도 언어 특유의 말맛이 있다는 것. 그러면서 미묘한 쇳소리를 내면서 말을 까뒤집는 법, 'ㅎ'을 비음으로 처리하는 법, 'O'에 악센트를 주는 법 등을 보여준다. 강민지는 "사투리는 아주 효율적인 언어"라면서 "모든 말에 악센트를 주지 않기 때문에 경상도 말이 빠르다고 느낄 수 있는데 얼마나 부드러운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강민지의 맛깔스러운 강의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수강생인 서솔의 리액션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사투리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으로 희화화되어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서솔은 강민지가 알려주는 사투리를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로 배우고 따라 한다. 똑같은 말이 상황에 따라 다양한 뉘앙스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서 "경상도 말은 가성비가 좋다"라고 포인트를 짚어주기도 한다. 타지인 입장에서 사투리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호흡을 쌓아온 두 사람의 티키타카가 이어지면서 사투리 특강은 일방적인 정보 전달이 아니라 사투리에 대한 담화로 확장된다. '사투리 그렇게 쓰는 것 아니다'라면서 호통만 치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어떻게 사투리를 쓰는 것이 실제와 가까운지 알려준다는 점이 <하말넘많> 사투리 특강의 차별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영상과 댓글을 보면서 사투리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사투리가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표적인 것이 '희한하다'였다. 강민지는 "타지 사람들은 '희한하다'를 쓸 때 이상하다, 석연치 않다는 의미로 쓰는데 TK에서는 '좋다'라는 의미로 쓴다"라고 말했다(물론 '이상하다, 석연치 않다'라는 본래의 의미로도 함께 쓰인다-기자 주). 해당 영상에는 아래와 같은 댓글이 달렸다.
"경상도 남자와 결혼한 서울 여자인데 이 강의 듣고 시부모님에 대한 오해가 풀렸어요. 저희 집 오셔서 '희한하네' 하셔서 좋다는 건가 나쁘다는 건가 했는데 좋다는 거였네요."
또 다른 사용자는 "희한하네는 너무 당연하게 칭찬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다른 지역 사람들이 못 알아들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지역 소멸이 심각한데 사투리도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이 올라오는가 하면, 타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투리의 성조, 장음, 단음에 대한 강의 요청도 이어졌다. <하말넘많> 댓글 창은 사투리에 대한 공론장이 되었다.
얼마 전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서 서울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남성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삼 놀랐다. 주위를 둘러보면 똑같은 경상도 출신이라고 해도 남성들은 사투리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여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방송에서도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남성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경상도 사투리 강의를 하는 여성이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회언어학자 백승주는 책 <미끄러지는 말들>에서 언어를 '힘'의 문제로 바라본다. 그는 "비표준형을 사용하는 여성은 통제할 수 없는 야생의 존재, 계몽되지 않은 존재로 취급당한다"라면서 "반면 표준어를 사용하는 여성은 계몽된 존재, 정숙한 여인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말한다.
백승주에 따르면, '첫 번째 혀'인 사투리를 사용했을 때 사회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기 때문에 여성들은 빠르게 사투리를 교정하고 표준어를 구사한다. 힘이 약한 집단에 속해 있는 여성에게는 표준어의 '위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말넘많>의 사투리 특강이 반가웠다. 수많은 여성들이 지우려 하고 숨겨야 했던, 사투리의 풍성한 맥락과 매력을 다름 아닌 여성의 목소리로 유쾌하게 알려줘서.
최근 '맛꿀마', '낄끼하네' 같은 말을 부산 사투리라고 부르는 밈이 SNS에서 유행했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서 이용주가 만들어낸 말이다. 황당한 것은 '맛꿀마'와 '낄끼하네'가 정말로 경상도 사투리인 줄 아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 있지도 않은 말이 사투리로 둔갑할 정도로 지역 방언은 외계어 같은 존재일까. 그나마 경상도 사투리는 미디어에 노출될 기회가 많지만 다른 지역 사투리에 대해서는 정보를 얻기 더 어렵다. 다시 한번, 말은 곧 권력이다.
강민지는 특강 말미에 이렇게 말한다.
"으쌰으쌰해서 이 땅에 표준어 쓰는 것들 몰아냅시다! 우리가 메이저가 되는 그 날까지 강의해 보겠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뿐만 아니라 지역 방언의 고유성과 다양성이 온전히 존중받는 날이 올까. 지역 사람들이 '첫 번째 혀'를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되는 날이. <하말넘많>이 작은 균열을 낸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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