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트로서 이영지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그의 ‘팬심’이다.
차린건쥐뿔도없지만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의 재재가 '이런 것까지 어떻게 알지?'라는 치밀한 준비성으로 게스트에게 감동을 줬다면, 호스트로서 이영지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그의 '팬심'이다.
Mnet <고등래퍼3>와 <쇼미더머니11>에서 둘 다 여성 최초로 우승한 래퍼이지만 이영지의 스펙트럼은 힙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내게 이영지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것은 지난해 1월 그가 올렸던 <으르렁> 커버 영상이었다.
춤을 좋아하는 이영지는 <스트리트 걸즈 파이터>에 나오는 고등학생 여자 댄서들을 섭외해 <으르렁> 2022 걸스 버전을 업로드했다. 평소에는 그저 목소리 크고 예능감 있는 MZ세대 정도로 생각했는데 웃음기 쫙 빼고 진지한 모습으로 엑소의 춤을 재해석해서 <으르렁> 춤을 추는데 정말 멋져서 몇 번이나 돌려봤다.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기획자로서의 이영지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콘텐츠였다.
하루의 절반을 인터넷과 함께 하는 '도파민 중독자' 이영지는 웬만한 K-POP 댄스는 다 출 줄 알고 다른 아이돌의 버블(아이돌과 메시지로 소통할 수 있는 유료 구독 서비스)을 구독한다고 해서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뮤지션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이영지는 취중진담을 한다. 세븐틴 호시에게는 유년 시절부터 세븐틴의 음악을 들으면서 힘을 얻었다고 말하면서 본인을 채찍질하는 타입인데 버겁지 않냐고 넌지시 묻고, 다른 멤버들보다 자신의 역량이 부족한 것 같았다고 말하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투바투) 수빈에게는 "(수빈의) 직캠을 많이 봤는데 진짜 잘한다"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블랙핑크 지수에게는 다른 멤버들이 먼저 솔로로 나왔을 때 부담이 크지 않았는지 묻고, 트와이스 나연에게는 연예계 선배로서 악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
대중문화의 팬이자 자신도 음악을 하는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이영지가 건네는 말에 게스트들은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다. 투바투 수빈은 "방송이면 어느 정도 경계를 하면서 하는데 내 얘기를 하는데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영지는 팬들이 뮤지션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 어쩌면 뮤지션인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을 게스트들에게 들려준다. 당신들은 지금 그 자체로도 충분히 멋지고 앞으로도 계속 음악을 하며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tvN <뿅뿅 지구 오락실>에 함께 출연하는 아이브 안유진이 나왔을 때 이영지는 "나는 네가 30살 돼서도 50살 돼서도 아이돌 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안유진이 "누가 봐줄까?"라고 말하자 이영지는 곧바로 대답한다. "나!"
그런 의미에서 에스파 카리나 편을 둘러싼 '얼평(얼굴 평가)' 논란은 안타까운 면이 있다. 방송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 이영지의 카리나의 외모에 대한 언급은 평가라기보다는 추앙에 가깝다. 아이돌에 대한 팬심은 외모에 대한 선호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이영지는 팬들이 그런 것처럼 카리나의 얼굴이 좋고, 카리나의 모든 게 매력적이라고 진심을 다해 말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영지가 자신의 외모를 비하하면서 카리나의 외모를 지나치게 부각시킨다고 불편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팬심 충만한 방송의 양날이다.
규정할 수 없는 '난년'

▲이영지는 팬들이 뮤지션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 어쩌면 뮤지션인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을 게스트들에게 들려준다.
차린건쥐뿔도없지만
<차쥐뿔>에서 이영지의 말이 더욱 진정성을 얻는 것은 그 또한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매번 고민하고 번뇌하는 청춘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쇼미더머니11>에 출연 당시 이영지는 '다른 래퍼들의 기회를 빼앗는다'라는 비판을 받았다.
인지도가 높은 만큼 매 경연마다 과한 관심과 혹독한 평가를 받아야 했고, 결국 우승을 했지만 이번에는 '인기 투표'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쇼미더머니>에서 발표한 곡인 'HUG'에서 이영지는 "이걸 듣는 너는 날 안 싫어해도 돼, 어차피 내가 날 제일 싫어하니까"라고 말한다.
내가 솔직한 가사를 쓰고 싶었던 건 솔직하지 못한 내가 너무 싫어서. 또 내 목소리도 싫어서. 누가 지적할 때면 외면하고 싶어서 괜히 핏대를 세워. 연습해 볼게. 살아가는 법을. 딱 한 번만 나를 꽉 안아준다면. 너의 위로는 나의 두 번째 어깨가 돼. - 이영지 'HUG' 중에서
뮤지션과 예능인 사이, 래퍼와 아이돌 사이. 다재다능하지만 그만큼 역설적으로 애매한 위치에 있는 이영지는 자신을 채찍질하고 미워하면서도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이영지가 자기 혐오와 연민에만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영지 최고의 무대라고 생각하는 <쇼미더머니> 세미 파이널 곡 'Witch'에서 이영지는 '마녀'라는 콘셉트를 끌어와서 '아무리 불을 질러봐라, 나는 그 불길 속에서 춤을 춘다'라는 내용을 담는다.
너나 잘 해 네 단도리. 날 찌르면 빨간 액체 대신 흘러 철면피.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다 불 붙여봐. But I'm non-flammable.불길 위에서 dance. I'm a WITCH. - 이영지 'Witch' 중에서
유재석이 보낸 문자에 일주일 만에 답장을 보내고, 나영석에게 '영석이 형'이라면서 거침없이 장난을 치고, 래퍼라는데 K-POP 댄스를 추고, 자존감 낮은 모습을 보이다가도 "욕심 많은 난년"(<차쥐뿔> 안유진 편)으로서의 야망을 드러내고. MZ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납작하게 묶을 수 없듯 종잡을 수 없고 규정할 수 없음은 이영지만의 매력이다. 무엇보다 이영지는 이제 고작 스물 둘이다(새로 바뀐 만 나이에 따르면 스무 살). 앞으로 보여줄 것이 무궁무진하다.
<차쥐뿔>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팬심과 '망나니 정신'만으로 방송을 이어가기에는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영지는 이영지답게, 영리하고 당돌하게 돌파해 나갈 것이다. 이영지에 대한 팬심에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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