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익수 전 공군 법무실장의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지난해 7월 29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고 이예람 공군 중사 어머니 박순정씨가 기자회견 중 이 씨의 사진을 들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번 선고의 주된 쟁점은 '직무유기'의 성립 여부였다. 이 중사가 소속 부대의 소홀한 보호 조치로 2차 가해에 지속 노출되고, 군 수사기관이 사실상 이를 방치하고 수사를 지연시킨 가운데 사망했기 때문에, 소속 대대장과 담당 군검사의 직무유기에 대한 판단은 이 중사 사망 책임을 가리는 일에 있어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공무원의 직무유기 성립에 대한 오래된 판례를 그대로 수용했다. 대법원은 공무원의 직무에 대해 '법령의 근거 또는 특별한 지시, 명령에 의하여 맡은 일을 제 때에 집행하지 아니함으로써 그 집행의 실효를 거둘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있는 때의 구체적 업무'라고 규정하고 있다(대법원 2007. 7. 12. 선고 2006도 1391 판결 등).
그런데 직무유기는 '법령, 내규에 따른 추상적 성실의무를 게을리하는 일체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의 무단이탈, 직무의 의식적인 포기 등과 같이 국가 기능을 저해하고 국민의 피해를 야기할 구체적인 가능성이 있는 경우만을 가리킨다'고 좁게 해석한다(대법원 1983. 3. 22. 선고 82도3065판결 등).
판례에 따르면 공무원이 법령, 규정, 지시로 명확하게 정해진 직무를 근무지 무단이탈, 의식적인 포기 등으로 이행하지 않을 때만 직무유기가 성립되고, 직무를 이행하지 않아 피해자가 사망하는 등의 부적절한 결과를 도출해도 '고의'로 직무를 포기한 것이 입증되지 않으면 형사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대대장, 군검사 등은 바로 이 '고의'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 선고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대대장 A씨는 이 중사가 강제추행을 당하고 다음 날인 2021년 3월 3일 밤 9시 50분경 이 중사의 직속상관인 반장 노모 준위로부터 피해사실을 신고받았다. 이때 A씨는 노 준위가 강제추행 사건을 신고 받았음에도 12시간 동안 보고하지 않았으며, 이 중사와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며 회유하다가 이 중사 고모의 항의를 받고 난 뒤에 뒤늦게 보고하였음을 인지하였다. A씨는 피해사실을 군사경찰대대에 신고하기는 했으나, 신고가 늦어진 경위 등 노 준위의 행동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았다. 노 준위는 이때 이 중사를 회유한 죄 등으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신고 이후 A씨는 비행단장, 군사경찰대대장, 성고충상담관 등으로부터 피-가해자 분리를 철저히 하고 2차 가해를 방지하라는 당부를 여러 차례 받았다. 하지만 A씨는 이 중사가 청원휴가 중이라 출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가해자가 분리된 것으로 판단하고 가해자에 대한 인사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당시 이 중사는 부대 안 관사에서 머물고 있었고, 가해자도 이 중사 관사 인근 관사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 접촉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가해자를 타 부대에 파견하기 위한 절차는 성고충상담관이 A씨에게 문제를 제기한 뒤에야 이루어졌다.
그런데 돌연 A씨는 상부에 가해자의 조사예정일 이후로 파견 일정을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특검 공소사실에 의히면 A씨는 군사경찰대대가 조사를 위해 파견을 미뤄달라고 요청을 했다는 식으로 상부에 보고한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군사경찰대대는 그런 요청을 한 적이 없었고, 조사일정 변경은 20비의 공식 입장도 아니었다.
결국 A씨의 파견 연기 요청으로 가해자는 사건 발생일로부터 보름이 지난 3월 19일이 되어서야 타 부대로 전출을 갔다. 그 사이 가해자는 부대 안에 이 중사를 비방하는 소문을 내고 다녔다. 가해자는 허위사실로 피해자를 비방하고 다니며 2차 가해를 한 죄로 지난해 징역 1년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이처럼 2차 가해를 한 사람들이 줄줄이 법원에서 유죄를 받았음에도 이를 막기위해 책임을 다해야 했던 지휘관인 A씨는 '고의'로 직무를 유기한 것이 아니란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다. 여러 정황에 비추어 볼 때 직무유기가 고의가 아니란 점도 의심스럽지만, 백번 양보해 고의가 아니라 치더라도 2차 가해로 피해자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책무를 다하지 않은 지휘관이 단지 판례를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공무원이 직무를 정상 수행하지 않아 인명피해 등의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해도 법으로 다스리기 어렵다.
군검사 C씨도 마찬가지다. C씨가 2차 가해 상황을 인지하고도 이 중사에 대한 소환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에 대해서도 고의가 인정되지 않아 직무유기가 성립되지 않았다. 군검사가 이 중사를 죽게 만들 고의를 갖고 수사를 지연시키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군검사의 그릇된 행동이 영향을 미쳐 결국 피해자가 사망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판례로 인해 C씨는 처벌받지 않았다.
직무유기 혐의, 결과의 중대성을 보고 판단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