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13 07:06최종 업데이트 23.11.13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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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중인 지난 10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도 연천군 육군 제25사단의 한 소초에서 근무 중인 장병들을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윤석열 정부의 2024년도 정부 예산안 심사가 한창인 가운데 국방부 예산안이 도마 위에 올랐다. 병사 월급 인상을 명분 삼아 병사 대상 복지 사업 예산 중 전액 삭감되거나 감액된 항목이 여럿 있다는 이유였다. 월급 인상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뒤로는 복지 예산을 깎는 모습에 '조삼모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병사 월급 200만 원 인상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81만 7천 원이었던 월급을 즉시 200만 원으로 인상하겠다던 공약은 취임 이후 재정 부담을 이유로 2025년까지 순차적으로 200만 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계획으로 변경되었다. 2024년도 병사 월급은 병장 기준 165만 원으로 책정되어 있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2년간 병사 월급이 2배 가까이 인상된 것이다.


병사 복지 예산 삭감은 국세 수입이 16% 감소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예산 지출을 과감히 줄이라는 대통령과 정부의 지침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병사 월급 인상은 대통령 공약이니 계획대로 추진하되, 그 외 복지 예산을 조정하여 월급 인상에 따른 재정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여보려는 고육지책일 것이다.

군인 복지 예산 칼질, 무엇이 문제일까
 

21대 마지막 국감이 시작된 지난 10월 10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참석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그러나 월급 인상으로 인한 재정 부담을 의무복무 중인 병사들이 누리던 혜택을 깎는 방식으로만 해소해야만 할까? 예산 구조조정이란 불필요하거나 부당한 지출을 줄이는 데서 시작되어야 하는데, 일단 병사가 월급을 예전보다 많이 받으니 혜택을 줄여 세수 부족을 해결하자는 식의 단선적인 사고방식으로 예산안을 칼질하는 행태가 문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국회 국방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의 '2024년도 국방부 소관 예산안 검토보고'에 나타난 비판적 시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방부는 2024년 예산안에서 '국방·군사시설기준'에 따라 독립중대급 이상 부대에 설치하게 되어있는 '풋살 경기장' 설치 사업 예산을 2023년 예산액 32억 5000여만 원 대비 전액 삭감해 버렸다. 기준에 따라 전국에 설치되어야 하는 풋살 경기장은 1754개인데 204개가 미설치 상태다. 원래 국방부는 2024년 예산안을 짤 때 97개를 추가 설치하는 60억 3800만 원을 일반예산에 넣었으나 정부 예산안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모두 삭감했다고 한다.

한편, 국방부가 관리하는 기금 중 군인복지기금 예산을 보면 체육시설 확보, 보수를 위한 2024년도 예산은 86억 5100만 원인데 전액 군 골프장 및 골프연습장 노후 시설 개선 사업에 투입한다. 원래 풋살 경기장 설치 사업도 일반회계가 아닌 군인복지기금 체육시설 사업에 잡혀있었다. 그런데 국방부는 2024년 예산안에서 이 사업을 일반회계로 옮겼다가 그마저도 다 없앴다.

군인복지기금의 수입원 중 37%에 달하는 1708억 원은 병사들이 많이 쓰는 국군복지단 군 마트 수입이다. 병사들이 마트에서 쓴 돈으로 예비역 장성들이 애용하는 군 골프장 시설을 개선하면서 정작 병사 복지시설 설치 비용은 예산 절감을 이유로 기금에서도, 일반회계에서도 모두 삭감한 것이다.

이런 식의 예산 삭감은 병사 월급 인상으로 인한 재정 부담 이슈와는 당연히 아무 상관이 없다. 한정된 예산 내에서 국방부가 중요하게 여기는 예산 항목과,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긴 항목에 대한 시각이 반영된 것뿐이다.

또, 국방부는 병사들에 대한 축구화 보급 예산 29억 5천만 원을 전액 삭감했다. 병사 자기계발 교육비도 359억여 원에서 179억여 원으로 50%나 삭감했다. 축구화 보급 사업은 2022년까지 1인 당 1족 씩 현물 보급하는 방식을 취했으나, 모두 축구화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고, 축구화 디자인이나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 차이도 발생하여 2023년부터 현금 1만 3070원을 인당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물론 모든 병사들에게 축구화 구매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은 비효율적일 수 있다. 국방부 스스로 밝힌 것처럼 그 돈으로 축구화를 살 수도 없기 때문에 필요한 사람에게 몰아서 지원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그런데 국방부는 아예 해당 예산을 다 깎아버렸다. '검토보고서'는 보급 방식을 바꾼 지 한 해밖에 되지 않았는데 사업 평가도 제대로 해보지 않고 아예 예산 항목을 삭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윤석열 정부의 '관점'이 담겨 있는 예산안
 

서울역에 서 있는 군인 (자료사진) ⓒ 연합뉴스

 
병사 자기계발 예산도 마찬가지다. 이 예산은 학습용품 구매, 강의료 지원, 자격시험 응시료 등에 쓰일 수 있는데, 사용 항목별로 자기 부담금 20%를 제하고 증빙서류를 제출하면 1인당 연간 12만 원 한도 내에서 쓸 수 있다. 2021년부터는 이 돈으로 운동기구나 운동화 등의 운동용품을 구매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러다 보니 부대마다 공용 운동기구를 사는데 이 돈을 모아서 사용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부대에 할당되는 관련 예산만으로는 장병들의 수요가 있는 운동기구를 구매할 수 없어 만들어진 고육책이다.

그런데 국방부는 자기계발 예산이 운동기구 구매로 쓰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는지 2024년도 예산안에서 다시 운동용품 구매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예산액을 반으로 줄였다. 그렇다고 병사들의 체력 증진을 위한 운동용품 구매 예산을 현실화한 것도 아니다. 결국 피해는 병사들만 보게 된 셈이다.

장병들의 생일 케이크 구입 비용이 전액 삭감되고, 경축일 특식을 연 9회 지급에서 3회로 줄이고, 급식 외 증식비 단가를 인당 5742원에서 4000원으로 하향 조정한 것도 문제다. 국방부는 장병 급식비가 올랐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급식비 인상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병사 급식비 문제는 2021년 부실급식 논란으로 촉발되었다. 이로 인해 끼니 당 2930원으로 고등학생 급식 단가보다 적었던 병사들의 급식 단가는 2023년 현재 4300여 원으로 올랐다. 급식 예산 인상은 비정상적으로 낮게 책정된 병사 급식비 단가를 정상화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국방부는 급식비를 올렸으니 그 외 증식비 등은 낮춰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국방부가 국방의 의무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설계 없이 대통령 한마디에 병사 월급을 올리더니, 정작 돈이 부족해지니 병사들에게 돌아가던 혜택부터 없애고 있다. 그러나 월급 정상화도, 복지 혜택도 젊음을 희생하며 국가를 위해 복무하는 병사들의 당연한 권리다. 대통령의 시혜가 아니란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시각은 좀 다른 것 같다.

예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어디서, 어떻게 지출을 줄이고 늘리느냐는 정부의 관심사를 그대로 대변한다. 돈이 부족할 때 먼저 없애는 항목이 당연히 그 조직에서 가장 하찮고 불필요하게 생각하는 항목이다. 이번 국방 예산에서 잘려 나간 것은 병사의 복지와 권익이다. 윤석열 정부와 군이 장병 복지와 권익을 바라보는 관점이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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