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16 11:22최종 업데이트 23.09.1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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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A 경기를 보면서 캐서린 매키넌의 문장을 떠올렸다. ⓒ 양민영


"여성은 언제쯤 인간이 될까? 도대체 언제쯤이면?"

세계적인 여성학 석학이자 작가인 캐서린 매키넌이 쓴 에세이의 한 구절이다. 금요일 저녁, 종합격투기(MMA) 경기장 관람석에서 이 구절을 떠올렸다.


경기는 내가 좋아하는 그래플링('얽혀서 싸운다'는 뜻으로 주짓수, 레슬링, 유도, 이종격투기를 포함한다)이 아니라 타격 위주로 흘러갔지만 그래도 싸움 구경은 재미있었다. 이른바 라운드걸이라고 불리는 여성들이 눈에 들어와 흥이 깨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케이지 안의 남자들은 싸우는 능력이나 쇼맨십을 보여주지만 여성의 몸은 MMA와 상관없이 눈요기로 전시된다. 아무런 맥락 없이 신체를 노출하고 구경거리가 된 사람은 자연히 위축되고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여성들은 케이지 아래로 내려가면 커다란 티셔츠를 펼쳐서 몸을 가렸다.

근래 이보다 더 완벽하게 여성이 물화되고 대상화되는 현장을 가까이서 목격한 일이 없었다. 만약 링 위에 품종견과 같은 동물을 전시했다면 어땠을까? 분명 동물권 운동가들이 나서서 동물 학대라고 비난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여성의 몸이 뜬금없이 전시돼도 누구 하나 그것을 여성 학대라고 하지 않는다. 자의가 없는 동물과 달리 여성은 자의로 그 일을 선택했고 그에 따른 보수도 받으니까. 신체를 노출하고 보수를 받는, 남성이 절대 하지 않는 일을 여성이 도맡아 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그 원인이 여성혐오라고 지적하면 비웃음만 돌아올 게 뻔하다.

유감스럽게도

서두에서 소개한 문장을 자주 떠올리게 하는 장소가 한 군데 더 있다. 바로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기방어를 교육하는 현장이다.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는 여성폭력이 갈수록 심각해짐에 따라 2020년 무렵부터 청소년, 2030세대, 중년 등 다양한 연령의 여성들이 안전과 성폭력 예방에 관해 배우고 실습해 보는 수업이다.

현장에서 나는 자기방어 전문가라고 소개되는데 그때마다 속으로 반문한다. '내가 정말 전문가인가?' 상당한 실력의 무술 유단자가 아니고 범죄 전문가도 아니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나서보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여성을 대상으로 자기방어를 쉽게 알려줄 여성 강사가 아직은 드물다는 점, 또 하나는 여성폭력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페미니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확신이 있어서다.

국제연합(UN)은 여성폭력을 '남성과 여성의 권력 차이에서 비롯하는 젠더 기반 폭력'으로 정의한다. 여성폭력을 유발하는 원인이 남성과 여성 간 권력 차이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일컫는 권력은 개인이 소유한 권력을 넘어 사회·경제·문화적으로 성별화된 지위의 개념을 포괄한다. 이러한 구조적인 권력 차이에서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물화하거나 대상화하는 경향성이 생겨나고 이는 여성폭력이 발생하는 데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여성폭력의 원인이 사회의 구조적 차별에서 기인한다면, 해결 방법 역시 구조적인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전 세계 여성폭력 범죄 대응을 위해서 구성된 UN 스포트라이트 이니셔티브가 성평등 구현이 여성폭력 대응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고 재원을 쏟아붓는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동향과 동떨어져 있다. 여성폭력이 심각하다는 사실에는 어느 정도 동의해도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나 그에 따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여성혐오주의자들은 폭력에 대항하려는 여성의 노력을 조롱한다.

지난 6월 <한겨레>의 젠더 이슈 전문 플랫폼인 슬랩에서 기획한, 자기방어를 주제로 한 콘텐츠 제작에 참여한 일이 있었다. 유튜브에 영상이 공개되자 '그렇게 해서 방어가 되느냐'는 요지의 댓글이 달렸다.

자기방어에는 정해진 답이 없으니 누군가에게는 엉성하고 부족한 기술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악플러들이 겨냥한 건 기술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루가 멀다고 혐오살인, 교제폭력, 가정폭력으로 사망하는 여성의 처지를 비웃으며 악의적인 조롱을 끼얹고 싶어 했다. 그래도 되는 권력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무기력에 길들어
 

여성이 어느 정도쯤 남성을 두려워하는 게 그들이 감각하는 ‘정상적인 세상’이다. ⓒ 양민영

 
여성을 향한 밑도 끝도 없는 악의. 이 악의에는 한계가 없고 이것이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목격한, 이 사회의 우울한 풍경이다. 대부분의 남성은, 심지어 자신이 선량하다고 믿는 이들도 여성이 언제까지나 혐오, 차별, 폭력의 피해자로 머무르길 바라는 듯하다. 그들은 최소한 여성이 어느 정도쯤 남성을 두려워하는 게 옳다고 믿는다. 그게 그들이 감각하는 '정상적인 세상'이다.

이들은 자신을 지키려는 여성의 노력을 비웃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가스라이팅도 시도한다. 실제 우리 사회는 여성이 자력으로 안전을 지킬 수 없다고 믿고 남성이 가하는 폭력에 불안해하도록 오랜 시간 여성을 세뇌했다. 그 결과로 자기방어 수업을 진행하면서 참가자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수업에서 배운 기술을 집에 가서 해봤는데 하나도 안 되더라'는 거다.

수업을 2회로 진행할 때 참가자들 가운데 1회에서 배운 기술을 남편, 남동생, 남자친구 등을 대상으로 복습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 다음에 하는 말이, '수업 중에 여성 파트너와 연습할 때 통했던 기술이 남성 파트너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는 거다. 남성 파트너에게 기술이 통하지 않는 주된 이유는 몇 번 연습하는 걸로는 기술이 몸에 익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연습 파트너가 된 남성이 자기방어를 배우려고 온 아내, 또는 여자친구에게 절대 자기방어 따위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려고 있는 대로 힘을 쓰는 이유도 있다. 그들은 남자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또 그런 기술이 실전에서 얼마나 허망하게 실패하는지를 확인시키고 여성이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우리의 신체가 아무런 능력이 없다고 지속적으로 가스라이팅 당한 여성들은 자기방어를 배우러 와서도 좀처럼 자신의 몸을 믿지 못한다. 여성도 훈련하면 남성의 폭력에 대항할 수 있다는 자기방어의 전제를 끊임없이 의심한다. 그들은 신장과 체격이 큰 남성도 방어할 수 있는지, 평균 이상으로 힘이 센 남성에게 어떻게 대항하는지 쉬지 않고 반문한다.

만약 투자 전문가의 강연이라고 가정하면 참가자 중 누구도 '투자해서 돈을 잃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지 않을 것이다. 보통 강연회에 참석할 정도로 투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투자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자기방어 수업으로 내가 확인한 바는 여성이 절망적일 정도로 자신의 신체를 신뢰하지 못하고 무기력에 길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다시 캐서린 매키넌의 문장을 떠올린다. 여성의 몸은 너무나 쉽게 물화되고 대상화되면서 정작 몸의 주인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신뢰와 주도권은 갖지 못한다. 우리는 언제쯤이면 인간으로서 온전하게 살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도 게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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