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12 04:57최종 업데이트 22.08.12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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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제인 오스틴을 설명하는 소개란에 항상 등장하던 문장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 게티이미지


중학생 시절 지겨운 학교와 집 사이 시립도서관을 들락거리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곳에서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빌려 읽었는데 작가를 설명하는 소개란에 항상 등장하던 문장이 있었다. "그는 일생 미혼으로 생을 마쳤다." 그 문장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나는 열 살 무렵부터 '독신주의'(아직 '비혼'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 전이었다)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정도로 조숙했다. 제인 오스틴으로 대표되는 독신 여성에 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으면서도 그들을 동경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경북의 한 소도시는 하드코어 가부장제의 근원지로, 독신 여성은 눈을 씻고 찾아도 흔적조차 없었지만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주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더 신비하고 근사하게 느껴졌다. 성인이 되면 그들처럼 독신 여성으로 살고 싶었다. 독신은 새롭고 낯선 삶이자 도시 그 자체이며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모험이었다.

입만 열면 '독신주의'라는 제목의 노래를 불렀더니 어른들은 하루라도 빨리 이 철모르는 아이를 교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그렇게 말하는 애가 더 빨리 시집간다'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시집'에 근원적인 공포가 있었는데 그 사실을 어른들이 알 리 없었다.

아무리 봐도 '시집'이라는 건 너무 어둡고 수상쩍지 않은가. 일례로 시집은 항상 '보낸다'는 표현과 결합하는데 나는 그게 아주 불길했다. 보낸다니 어디로? 나에게는 의지할 가족이 필요한데 여기서 추방되면 어디에서 어떻게 산단 말인가?

집안에 제사나 차례가 있을 때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를 유추했다. 어두컴컴하고 비좁은 부엌에 모여 앉아 온종일 음식을 장만하는 엄마와 다른 여자 어른들, 이 시집 보내진 사람들이 나의 미래일 게 분명했다. 그들이 힘들게 만든 음식을 목소리 큰 남자 어른들이 전부 먹어 치웠다.

'시집으로 보내지면 시베리아 수용소로 보내지는 전쟁 포로, 또는 착취당하는 소년공이 되는 거구나.' 어떻게든 그것만은 반드시 피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

그로부터 세월이 흘렀고 나의 비혼 라이프는 7년째에 접어들었다. 내 어린 시절의 꿈을 '서울에서 작가로 살면서 독신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요약하면 나는 꿈을 모두 이룬 셈이다. 하지만 바라던 일이 막상 현실이 된다고 해서 둘 사이에 싱크까지 맞아떨어지라는 법은 없다. 

비혼으로 사는 건 만족스러우면서도 곤란한 면이 없지 않다. 특히 40대에 들어서면서 내가 누리던 비혼 라이프의 양상도 달라졌다. 30대 후반까지는 결혼 적령기가 지나도록 결혼을 안 한, 혹은 못 한 올드미스로 패싱됐으나 이제는 정체를 밝혀야 할 때가 왔다. 기혼녀인지, 미혼인지, 이혼녀인지? 사람들의 상상력은 생각 이상으로 한정적이어서 비혼은 선택지에 있지도 않을 때가 많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내가 비혼'이라서가 아니라 '나만 비혼'이라는 데서 비롯된다. 나는 궁금하다. 왜 모두가, 한 명도 예외 없이 결혼하는가? 아직도 제인 오스틴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게 말이나 되는가, 왜 더 나은 본보기가 나타나 주지 않는가? 온 세상을 무대로 천재의 아우라를 떨치던 여성도 결혼하고 거부의 딸도 결혼하고 총리와 여왕도 결혼한다.

절대다수가 결혼하는 와중에 혼자 결혼하지 않고 버티면 사회생활에 지장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사회를 등질 수 없는 노릇이니 어떻게든 결혼주의자들과 소통을 시도한다. 그러나 결혼한 사람과 결혼하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른다.

사는 방식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화합이 불가하다. 한마디로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라도 기혼일 경우에는 그들의 말과 사고방식에서 나는 내 부모를 본다. 반면에 나는 영원히 미성숙한 존재, 세상의 이치를 모르는 철없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일종의 진영논리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나는 결혼주의자에 관한 편견을 감히 발설하지 못하는데 결혼주의자 중 일부는 비혼에 관한 편견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들은 또 예의나 존중을 무시한 채 결혼을 영업하기도 한다.

이들은 보통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연배의 여성인데, 은밀하게 다가와서 충고하고 간다. 마치 지퍼가 내려갔거나 속옷이 보이기라도 한 것처럼, 같은 여자로서 반드시 알려줘야 할 일이 발생했을 때 따로 불러내서 속삭이듯. 아니 그보다 타이름에 더 가깝다. 심지어 페미니스트 선배를 자처하는 여성들조차 이렇게 말한다. "자기야, 그래도 결혼은 해."

부디 행운을 빌어주길
 

<스타워즈> 오리지널 3부작의 주인공 중 한 명인 한 솔로. ⓒ 루카스필름

 
믿을 수 있는가, 비혼을 선택했더니 매 순간 결혼을 의식하게 된다는 게. 소수파가 짊어져야 할 숙명이라기에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내가 지금껏 결혼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며 남편과 아이가 없다는 사실, 즉 '너는 이기적이다'는 무언의 메시지에서 잠시도 자유로울 수 없다니.

그제야 나는 평생 비혼이던 제인 오스틴이 중상류층의 연애와 결혼에 관한 소설만 쓰다가 죽은 이유를 알았다. 비혼으로 살다가 간 그 유명한 여성 화가들이 왜 항상 성모와 천사만 그렸는지도. 당대의 가장 인기 있는 소재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을 꿈꿀 배짱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여성인 그들에게 허락된 가장 이기적이고 거친 모험은 고작 '결혼하지 않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들은 남자처럼 뱃사람, 사냥꾼, 혁명가가 될 수 없었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큰일은 여자가'라는 구호를 외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여성은 여성이라는 세계 안에서만 산다.

고백하자면 언젠가부터 나는 삶이 점점 단조롭고 소심해지는 걸 느꼈다. 자기관리라는 미명 아래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산다. 비혼으로 깎아 먹은 정상성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게다가 내 삶을 글로 쓰는 것도 적지 않게 부담스럽다. 이런 사정은 역설적으로, 새 연재를 시작하려는 이유로 작용했다. 비좁고 소심한 삶에서 탈피해서 어린 시절에 꾸던 꿈의 파편이라도 손에 쥐고 싶다.

'한 솔로'는 우리 시대의 고전 <스타워즈>에서 가장 빠른 우주선을 모는 선장이다. 비행술과 항해술에 뛰어나고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한다. 냉소적이고 건들거리는 모험가. 그의 이름을 빌려서 연재명을 '한 솔로'로 지었다.

비혼을 떼놓고 내 삶을 이야기할 수 없고 지금의 내 삶은 비혼이기에 성립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인극, 혼자, 단독을 의미하는 솔로(solo). 한 솔로는 은하계 최고의 용사인데, 나도 이 구역 최고의 비혼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부디 행운을 빌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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