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일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영화 <바비>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배우 마고 로비가 퇴장하며 인사하고 있다.
이정민
영화 <바비>의 슬로건인 '바비 이즈 에브리띵(Barbie is everything)', 즉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바비는 이미 지나간 세기의 담론이다. 처음 영화 <바비>의 메인 트레일러가 공개됐을 때 대통령 바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바비, 대법관 바비 사이에서 '그냥 켄'에 불과한 그의 미미한 존재감과 부족한 능력은 웃음거리가 됐다. 얼핏 보면 켄을 향한 조롱처럼 보이는 '그냥 켄(Just Ken)'은 사실 남성 권력의 핵심을 상징한다.
바비가 주인공인 바비랜드에서도 켄은 무엇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고 능력을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켄이 좌절하는 유일한 대목은 바비에게 사랑받지 못하다는 것뿐이다. 그는 현실 세계의 여성처럼 부당하게 차별당거나 핍박받지 않는다. 반면에 바비랜드의 주류인 바비는 그토록 완벽한 외모에 뛰어난 사회성과 능력까지 겸비하고도 끊임없이 무엇이 되어야 한다(바비는 패션모델로 데뷔해서 의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우주인으로 전직을 거듭했다).
지난 세기 동안 여성은 열등하지 않음을 증명하고자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그리고 깨달았다, 여성이 열등하다는 편견 때문에 차별당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또 대부분의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능력을 가졌고 일부는 남성보다 더 뛰어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런데도 여성이 차별당하고 착취와 폭력의 타깃이 되는 건 순전히 여성이라는 성 때문이다. 이는 여성은 물론이고 남자들도 알고 있는 진실이다.
잠깐 동안 진실이 위안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곧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 만약 여성이 열등한 탓에 차별당한다면 우리가 처한 비참한 현실을 설명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반대의 진실이 밝혀지고도 여성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는 거대한 부조리로부터 탈출할 방법이 우리 여성들에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행히 그레타 거윅은 방법을 제시했다. 여성 집단의 연대가 여성 개개인의 능력 향상보다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페미니스트 바비들은 가부장제에 세뇌된 바비를 켄과 분리시키고 그들을 각성시켜 깨어나게 한다. 그리고 켄을 분열하게 만들어 전쟁을 유도한다.
그런데 이 힘겨운 투쟁의 종착지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다. 게다가 가부장제를 퍼트리고 바비랜드의 헌법 질서를 어지럽힌 켄은 끝내 처벌받지 않는다. 도리어 켄은 바비의 도움으로 자아를 얻고 새로 태어난다. 이로써 여성은 잘못을 용서하는 존재, 또 남성에게 입은 피해를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는 존재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다.
할 수 없이 바비가 인형에서 인간이 되기를 선택한 결말에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또 그동안 세상의 기준에 맞추고자, 능력을 증명하고자 행했던 노력과 시도, 그 숱한 실패를 부끄러워 말자는 메시지에 위로받았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결국 누구를 위한 페미니즘도 아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바비'의 한계는 가볍고 무해한 밈이 되어 현실에 스며든다. '바비'와 콜라보한 100여 개의 기업이 내놓은 상품이 세상을 온통 핑크로 물들였다. 또 완전히 죽은 줄 알았던 바비코어룩(선명한 핑크 컬러에 1980년대의 레트로하고 페미닌한 스타일)이 부활했고 셀카를 올리면 바비의 얼굴로 바꿔주는 필터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쯤에서 알고 싶다. 돌아온 바비가 세상을 점령한 동안 정작 '바비'의 페미니즘적인 메시지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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