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릭 하트의 <세 군인>. 이 작품은 전쟁 기념물에 대한 당시의 전형을 보여준다.
Marvin Lynchard, DOD
결국 공모전 추진위원회는 린의 원안을 해치지 않되, 후보작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작이었던 프레데릭 하트(Frederick Hart)의 <세 군인(The Three Soldiers)>을 근방에 함께 세우는 것으로 최종 결정지었다. 하트는 백악관, 국회의사당, 미 연방대법원 등 주요 정부 건물의 외벽 장식을 책임져 온 조각가였다. 그가 사실적으로 묘사한 세 군인의 형상은 린의 작품이 설치된 지 2년 후인 1984년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 초입에서 방문객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실상 당대가 이해한 전쟁기념물의 형태는 린의 추상적 형태보다 하트의 구상적 표현에 가까웠다.
1982년 11월 13일,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건립에 성공한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는 많은 우려와 달리 공개 즉시 모든 논란을 종식시켰다. 잃어버린 가족과 친구의 이름을 찾는 방문객들의 모습이 반짝반짝 갈고 닦아 거울처럼 윤이 나는 기념비의 표면에 그대로 반사되었다. 떠난 이와 남은 이가 공존하는 시공간. 린이 의도한 추모와 힐링의 공간은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는 베트남전을 두고 두 쪽으로 갈라졌던 미국을 봉합하는 역할을 했다.
워싱턴-링컨과 연결된 베트남전 참전용사들
베트남전은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뼈아픈 상처다. 냉전체제 속에서 남베트남과 주변국의 공산화를 막겠다고 시작한 명분 없는 군사 개입은 미국 사회를 분열시켰다. 베트남전을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이 행정부와 시민사회 내부에서 대립했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일어난 반전운동은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는 승산 없는 싸움을 고집하다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후에야 패배를 시인하고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은 이 불명예스러운 전쟁에 대한 사후 수습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인 1979년 베트남 참전용사 얀 스크럭스가 기념비 제작을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 전쟁 기념비라면 승전을 자축하기 위해 세워져야 할 터인데, 당시는 완벽한 패전을 기념해야 할 판이었다. 기념비 사업 자체가 논쟁거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불 밝힌 저녁 무렵의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 저 멀리 워싱턴 기념탑이 보인다.
Academy of Achievement
이런 상황에서 마야 린은 무엇을 기리고 조명했을까. 그는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를 워싱턴기념탑과 링컨기념관을 향해 양팔을 벌린 듯한 병풍 구조로 만들었다. 워싱턴기념탑과 링컨기념관은 내셔널 몰의 핵심 랜드마크로 미국의 정신을 상징한다. 린은 이 두 공간에서 소실선을 그어 교차하는 지점을 기념비의 중심축으로 잡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중심축에서 양갈래로 뻗어나가는 두 개의 벽면을 만들고, 그 위에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의 이름을 음각해 넣은 것이었다. 이로써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에 새겨진 이름들은 미국이 자랑하는 역대 최고의 두 대통령과 동일 선상에 놓이게 됐다.
또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는 지면을 삼각도로 파낸 것처럼 중심축으로 갈수록 서서히 깊어졌다가 바깥쪽으로 나오면서 다시 얕아지는 모양을 한다. 기념비 벽면을 따라 걷다보면 사람들은 마치 전쟁의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름들의 수에 압도되었다가 서서히 그 이름들이 크게 하나의 상실과 고통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베트남전이라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전쟁 속으로 사라진 보통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린은 승자의 기록에 가까웠던 전쟁기념비를 기억과 참회의 공간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한 참배객이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를 어루만지며 지나가고 있다.
Marvin Lynchard DOD
많은 이들이 아시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어린 나이의 여성은 전쟁을 알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야 린은 전쟁의 참상이 TV를 통해 여과 없이 생중계되고, 베트남전이 남긴 폐해와 상처를 다룬 영화 <디어 헌터(Dear Hunter)>(1978)가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1971)이 전 세계로 울려퍼지던 시절을 경험했다. 미국 미술계에서도 크리스 버든(Chris Burden)처럼 자신의 팔을 향해 실제로 총을 쏘는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전쟁이 만드는 지옥을 직감하게 하는 등 전쟁을 다룬 작품들이 선보였다.
반면 린은 폭력과 파괴의 생생한 묘사 대신 전쟁이 낳은 비극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시공간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전쟁기념물의 역사를 새롭게 써내렸다. 그리고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는 오늘날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후 린은 미국 시민권 운동의 진원지인 알라바마의 주도 몽고메리에 <민권 기념비(Civil Rights Memorial)>(1989)와 예일대에서 교육받은 수많은 여성들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여성의 탁자>(1993) 등의 공공조형물을 세우며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시각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 5월 28일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를 앞두고 한 어린이가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에서 희생자의 이름을 읽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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