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20 19:31최종 업데이트 23.05.20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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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퀸의 <임신한 앨리슨 래퍼>(2005) ⓒ marcquinn

 

영국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는 빈 좌대가 하나 있다. 이곳은 해마다 공모전을 통해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미술 전시장으로 쓰인다. 본래는 기념 동상이 세워질 자리였다. 그러나 자금난으로 인해 약 150년간 방치돼 있던 것을 1998년 런던시가 연례 공공미술 행사로 재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오늘의 모습에 이르렀다.


어떤 작품을 올릴지 결정하는 과정에 시민 참여가 이뤄져 당선작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매우 높고, 그 덕분에 세계적으로도 인지도가 높다. 그중에서 2005년 당선작인 마크 퀸의 <임신한 앨리슨 래퍼>는 특히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민감한 논쟁을 야기해 영국 미술계는 물론 사회 전체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트라팔가 광장에 들어선 '장애인' 조각상

높이 3.5m에 무게가 12톤에 달하는 초대형 규모의 이 작품은 실제 만삭의 장애 여성을 모델로 한 초상 조각이다. 장애인이라면 여느 예술 작품의 재현 방식과 다르지 않게 동정의 대상 또는 선뜻 다가가기 꺼려지는 기괴한 존재로 그려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러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거리를 두었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은 자세로 천하를 호령하듯이 내려다보는 시선 처리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에 가까운 것이었다.

실제로 이 작품은 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초상조각에 사용된 것과 동일한 순백색의 이탈리아 카라라 산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양분되었다. 작품의 모델인 '앨리슨 래퍼'를 '영웅'으로 바라보는 입장과 그녀를 그저 '장애인'으로 대하는 입장이 강하게 충돌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여성에다 장애인인 앨리슨 래퍼가 런던의 심장부인 트라팔가 광장의 상징성에 걸맞은 기념비적인 인물인가라는 '자격'의 문제였던 것이다.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넬슨 제독 동상 ⓒ Beata May

 

분명 앨리슨 래퍼의 전신상은 도심 광장의 흔한 인물상과는 달랐다. 우리에게 익숙한 도심 광장의 풍경은 나라를 위해 자신을 헌신한 민족적 위인의 기념 동상으로 꾸며진 공간이다.

트라팔가 광장도 예외가 아니다. 광장 중앙에 트라팔가 해전을 승리로 이끌며 영제국의 초석을 다진 넬슨 제독의 전신상이 57m 높이의 원기둥 위에 드높이 서 있고, 그 주변으로 무려 아홉 기가 넘는 호국영령들의 기념 동상이 더 늘어서 있다. 이와 비교하면, 앨리슨 래퍼는 남자도, 제복을 입은 군인도, 역대 왕도, 머나먼 역사 속 전설적인 '영웅'도 아니었다.
 

자신의 작품을 보고 있는 앨리슨 래퍼 지난 2006년 4월 28일 방한한 영국 화가 앨리슨 래퍼가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 예술인 마을 전시관에서 열린 앨리슨 래퍼 사진전에 자신의 사진을 보고 있다. ⓒ 연합뉴스

 

앨리슨 래퍼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구족 화가다. 선천적으로 팔이 없고 다리가 짧아 입과 발로 그림을 그린다. 태어나면서 부모에게 버려져 보호시설에서 자랐고, 열아홉 이른 나이에 결혼했지만, 남편의 폭력으로 9개월 만에 이혼하는 등 결코 순탄치 않았던 그녀의 삶은 미술을 만나며 달라졌다.

스물여섯 늦깎이로 입학한 미술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한 뒤 로열 페스티벌 홀, 바비칸 센터, 헤이워드 갤러리 등에서 전시회를 가졌을 만큼 그녀는 예술가로서의 성장을 이뤄냈다. 이러한 그녀의 노력은 자신이 처한 환경을 담대하게 극복한 모범 사례로 인정받아 2003년 영국 왕실로부터 '영 제국 국가 공로 훈장(MBE)'을 받기도 했다. 이는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바가 크고 타의 본보기가 되는 시민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하지만 마크 퀸의 작품을 통해 앨리슨 래퍼가 장애인이고, 임산부인 데다가 이혼 상태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녀를 응원하는 목소리만큼이나 장애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사회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무책임한 처사라는 부정적인 목소리가 크게 터져 나왔다. 또 마크 퀸의 작품은 비장애인 남성 작가가 장애 여성 작가의 몸을 도심 광장에 전시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혹평도 나왔다.

엘긴 마블스와 앨리슨 래퍼... 정상과 비정상

그런데 이러한 논란은 모두 근본적으로 앨리슨 래퍼의 '신체'가 '정상'이 아니라는 시각을 전제로 한다. '신체의 정상성'은 마크 퀸이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주제다. 그는 이미 이를 주제로 다룬 자신의 연작 <완전한 대리석상>(1999-2005)에서 앨리슨 래퍼의 전신상을 제작한 바 있다.

<완전한 대리석상> 연작은 앨리슨 래퍼를 포함해 각기 다양한 사연으로 팔이나 다리가 없는 절단 장애인들을 등신대 크기의 대리석상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작가의 의도는 이들의 조각상과 영국미술관의 대표 유물인 '엘긴 마블스(Elgin marbles)'를 향한 시선의 차이를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왼쪽의 <임신한 앨리슨 래퍼>(MARCQUINN)와 오른쪽 엘긴 마블스(EPA/연합뉴스). 정상과 비정상,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의 모호함을 보여준다. ⓒ EPA/연합뉴스

 
'엘긴 마블스'는 고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장식한 대리석 조각이다. 19세기 초 고대 유물 애호가이자 오스만제국 주재 영국 대사였던 엘긴 경이 영국으로 교묘하게 빼내오면서 지금의 명칭에 이르렀다. 여기저기 부서지고 떨어져 나가 파편적으로만 남아있는 이 고대 유물을 우리는 최고의 이상미를 갖춘 완전한 인체 상으로 바라본다.

대체 무엇이 '엘긴 마블스'와 '신체장애인'의 조각상을 다르게 보게 하는 것일까. 무엇이 완전과 불완전, 정상과 비정상, 보편과 특수, 다수와 소수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 것일까. 마크 퀸은 바로 이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가 앨리슨 래퍼의 전신상을 갤러리를 벗어나 트라팔가 광장에 세우자 대중의 관심이 증폭하면서 장애인, 특히 장애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자연스럽게 공론화될 수 있었다. <임신한 앨리슨 래퍼>는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었다.

뜨거운 논란 속에서도 <임신한 앨리슨 래퍼>는 2007년까지 트라팔가 광장을 지켰고, 마크 퀸은 예술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사이 앨리슨 래퍼는 스스로를 현대판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로 상정한 작업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자서전 <앨리슨 래퍼 이야기>(2005)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출산 후에는 아들과 함께 BBC의 기획 다큐멘터리 시리즈 <우리 시대의 아이(Child of Our Time)>에 출연하며 유례없는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2012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 2012년 8월 29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패럴림픽 개막식 오프닝 공연 모습. '임신한 앨리슨 래퍼' 조각상이 중앙에 서있다. ⓒ EPA/연합뉴스

 
아이러니컬하게도 마크 퀸의 작품으로서의 앨리슨 래퍼는 그렇지 못했다. <임신한 앨리슨 래퍼>는 2012년 런던 패럴림픽의 개회식 무대를 장식하며 '희망과 의지'의 아이콘으로 거듭나는 듯했지만, 이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진행된 마크 퀸의 개인전에서는 다시 한번 잡음이 나왔다. 산 조르조 마조레 교회 앞 광장에 세워진 작품을 두고 베네치아 총대주교구가 불만을 표했던 것이다. 전시의 흥행을 목적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건축물인 산 조르조 마조레 교회를 이용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흥미롭게도 서구사회에서 장애인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그리스도교의 발흥과 궤를 같이한다. 예수 그리스도교의 신성성을 그가 행하는 치유의 기적을 통해 강조하는 동안 역설적이게도 장애는 죄악으로 여겨지게 되었는데, 특히 종교개혁이 일어난 르네상스 시대는 분수령이 되었다.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작품을 통해 공간에 새겨진 역사적 지층을 폭로하고 공론화해 온 마크 퀸이 이러한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이로 인한 갈등을 기대했을 심산이 크다.

미술 작품은 때때로 그것이 놓인 장소에 따라 다른 의미를 생성한다. 특히 공공 공간에서 장소가 갖는 의미는 작품 자체의 의미를 좌지우지할 만큼 강력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마크 퀸의 <임신한 앨리슨 래퍼>는 전시 장소가 달라질 때마다 영웅과 장애인 사이를 진동해 왔다. 이 진동의 폭이 줄어들지 않는 한 이 작품의 역할과 가치는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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