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공무원으로 일하다 6년 전 은퇴한 실비는 기공, 도자기 공예, 무료 급식소 봉사 활동 등으로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목수정
65세에 은퇴한 실비는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노년을 누리고 있다. 18세부터 다양한 알바를 했고 우편배달, 연극배우 등을 거쳐 교육부 산하 청년 재교육시설에서 일했다. 바칼로레아(프랑스의 대학 입학 자격)를 취득하지 못하고 직업을 얻을 준비가 안 된 청년(18~25세)들에게 제2의 기회를 주는 일이다.
6~12개월 동안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재교육하고, 일정한 봉급을 받으며 일해 경험을 쌓도록 돕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소년원에서 출소한 아이,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 등 척박한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이 대부분이기에 수월한 과정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사회로 다가갈 기회를 주는 의미 충만한 일이었다.
62세 때 은퇴할 수 있었으나, 그땐 당장 일을 놓고 싶지 않았다. 기쁜 마음으로 바쁘게 일하고 있었기에 일을 놓았을 때 닥칠 공허가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65세가 되자 피로가 누적되었다는 느낌이 확연해졌고 자연스럽게 은퇴를 결심했다.
요즘은 매일 아침 마을 공원에서 이웃들과 기공을 하고, 오후엔 요가를 하거나 도자기 공예를 하며, 주말엔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른다. 일주일에 한 번은 시민단체 '마음의 레스토랑'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다. 영화나 연극을 보러 다니고 남편과 함께 여행도 자주 간다. 매년 베트남에서 한 달간 지내며 그곳 보육 시설에서 자원봉사 하는 것도 은퇴 후 지속해 온 활동 중 하나다.
은퇴를 결정할 무렵, 직장에서 제공하는 은퇴 준비를 심리적으로 돕는 강연을 들었다. 이틀간 이어진 프로그램은 은퇴 후의 삶을 구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젊었을 때 연극을 했기 때문에 영화·공연예술인·언론인공제조합 '오디언스'로부터도 작은 액수의 연금을 받는데, 특히 그곳에서 제공하는 양질의 서비스를 누린다.
오디언스에서도 사흘간 은퇴자를 위한 연수 프로그램을 제공했는데, 심리학자 마리 드 에네젤(<늙는다는 모험> 저자)이 연사로 와서 심리적으로 은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획하고 즐겨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은퇴 전엔 늘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활기를 얻었는데, 지금은 만나는 사람이 제한된다는 게 은퇴 이후 조금 아쉬운 점이다. 그 부분은 은퇴 이후 맺은 새로운 관계 속에서 서서히 채워지고 있지만, 문제는 '의미'다. 지금의 시간을 채우는 것은 흥미로운 여가생활이지만, 일이 주던 의미를 충족시켜 주진 못한다. '마음의 레스토랑'에서 하는 봉사 활동이 어느 정도 채워주지만 앞으로 더 채워가야 할 대목이다.
마크롱 정부의 연금 개혁에 대해선, 특히 소통 없는 개혁의 일방적 방식에 대해 반대한다. 모든 직업이 같은 노동강도를 갖고 있진 않고, 이전의 연금법은 그러한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하는 미덕을 가졌다. 그것을 일원화하여, 직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본다. 자신은 만족스런 제도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두 자식은 그렇지 못할까 봐 걱정이다.
[사례 2] 베아트리스(Béatrice, 69)

▲베아트리스는 조각가로 2년 전부터 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목수정
조각가인 베아트리스는 2년 전 연금 생활자 대열에 들어섰다. 10년간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예술학교에 다녔고, 서른이 다 되어서야 작가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예술인의 집'을 통해 사회보장제도에 편입되었고, 그곳에 예술가로서 소득을 신고하고 연금 분담금을 납부해왔다.
부모님은 22세 이후 재정지원을 일절 안 해 주셨기 때문에, 학생 시절에도 여러 알바를 했다. 오전엔 시장에서 장사하고 오후에 수업을 들으러 오는 모습을 본 학교 측에서 야간에 성인들 수업을 맡겼는데, 그때 받은 것이 첫 번째 공식 월급이었고 첫 번째 연금 분담금이기도 했다.
67세부터 연금을 타기 시작(67세는 연금 분담금을 낼 수 있는 마지노선)했다. 40년을 부어야 채우는데, 그에 크게 못 미치니 연금이 700유로(99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전에 없던 연금이 정기적으로 나오니 삶이 훨씬 안정적이다. 일상은 은퇴 전과 다를 바 없다. 예술가는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 예술작업을 해야 하니 여전히 그림도 그리고 조각도 한다.
집이 넓은 편이어서 방 두 개를 예술대학 학생들에게 빌려주고 그 집세로 부족한 연금을 보충한다. 예술가로서의 작업은 멈추지 않았으나 요즘은 일 년에 한 작품 정도 팔린다. 얼마 전에 팔린 작품에서 6000달러(790만 원)를 벌었다. 갤러리에서 절반은 가져갔으니 산 사람은 1만 2000달러(1580만 원)를 냈을 것이다.
조각가로 일하는 중에 일주일에 10시간 정도 학교에서 강의도 했다. 늘 시간제 강사였지만 그 시간이 연금을 차곡차곡 내는 데 큰 도움이 됐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보람도 컸다. 남편도 예술가다. 남편은 도미니크 공화국 출신인데 그쪽 나라에서 작품을 많이 판다. 연금은 나보다 적지만 아직 작품을 팔 수 있어서 그의 삶도 쪼들리진 않는다.
[사례 3] 크리스틴(Christine, 64)

▲투씨재활용센터 대표 크리스틴
목수정
부르고뉴 지역의 투시라는 작은 마을에 '라 칼리포니'라는 재활용 공동체가 있다. '투씨 서로돕기', '투씨재활용센터', '봉쥬르 카스카드', 이 세 시민단체가 함께 라 칼리포니를 이룬다. 은퇴한 노인들이 주축이 된 이 공동체는 5년 전 생겨났고 무섭게 확장(!)하는 중이다.
크리스틴은 이 흥미진진한 프로젝트의 중심인물이다. 그녀는 파리의 한 병원에서 행정직으로 일하다가 조금 이른 나이인 58세에 일을 그만두었다. 연금을 받을 수 있는 62세가 될 때까지는 실업 수당을 받다가, 2년 전부터 연금을 수령하기 시작했다.
부르고뉴 지역에 주말 별장을 둔 까닭에 자주 드나들다가, 투씨에 10년째 비어 있는 창고 부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주변 지인들과 함께 협회를 결성하고 투씨재활용센터를 열었다. 지자체는 적극 찬동하진 않았지만, 협회가 그 공간을 재활용센터로 쓰는 것을 허락했다.
400제곱미터에 달하는 넓은 창고는 가구, 생활용품, 책, 가전제품 등 다양한 물건들이 들어오고, 맞은편에 있는 사무실 공간은 지역 노인들이 꾸려온 또 다른 시민단체 '투씨 서로돕기'가 의류, 침구류, 신발 등을 기증받아 저렴하게 판매한다.
매장의 수익은 지역 저소득층에 식료품 가방(매달 5000개)을 전하는 데 사용한다. 인근 대형 슈퍼마켓과 제휴해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품을 무상으로 제공받고 일부는 수익으로 구입한다. 수년 전 이곳에 정착한 시리아 난민이나 지난해 피난 온 우크라이나인들도 수혜자들이다.
크리스틴은 투씨재활용센터 대표다. 창설 멤버이자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다 2년 전 대표로 선출되었다. 일주일에 나흘을 이곳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고, 1년 전부턴 은퇴한 남편까지 가세해 함께 일하지만, 부부는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마찬가지로 한 푼도 받지 않는다. 부부에겐 4000유로(568만 원)의 연금 수입이 있기에 금전적 보상은 필요하지 않다.
크리스틴은 자원봉사자 25명의 일을 조직하고, 기증되는 물건을 정리하며, 매장에서 물건도 판매한다. 거의 모든 자원봉사자가 은퇴한 노인들이다. 은퇴 이후, 유유자적 여가를 즐기는 대신 재활용 센터에서 혼신을 다해 일하는 이유를 물었다.
"버려지는 물건에 제2의 삶을 준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죠.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기쁨도 크고요"라고 답한다. 버려진 공간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설립자의 마음은 새 생명을 세상에 내놓은 어머니의 마음이기도 하다.
그는 이제 걸음마를 떼고 속도를 내어 걷기 시작한 이 공간이 더욱 커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3년째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이 일에 정성을 쏟는다. 공간이 확장되고, 드나드는 사람과 물건이 늘어나면서 작년부턴 지역 청년 2명을 정규직원으로 고용할 수 있었다.
지난해 시작해 올해 완성된 확장 공사도 자원봉사자들이 한 것이다. 시간은 더뎠지만, 은퇴 노인들에게 가장 넉넉한 자산이 시간이기에 문제 될 건 없었다. 공간이 확장된 덕에 전엔 사양해야 했던 덩치 큰 물건들도 이젠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사례 4] 베르나데트(Bernadette, 69)

▲투씨재활용센터 자원봉사자인 베르나데트는 합창과 봉사활동을 병행하며 바쁜 노년을 보내고 있다.
목수정
투씨재활용센터의 또 다른 자원봉사자 베르나데트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4년 전 은퇴해 연금을 받기 시작했다. 평생 여러 직업을 가졌는데 주로 사람을 돌보는 일이었다. 탁아소에서도 일했고, 마지막으로 했던 일은 노인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은퇴는 했지만 여전히 일주일에 이틀간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는 일을 하며 돈을 번다.
나머지 날 중 이틀은 재활용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나머지 이틀은 합창단에서 노래 부르며 간사로 활동한다. 그녀의 일주일은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인터뷰했던 날도 재활용센터 일을 마치고 뒷마당에서 저녁에 열리는 록 페스티벌(세 번째 단체인 봉쥬르 카스카드는 이곳에서 문화 행사를 한다)에서 입장권 판매를 맡았다. 이렇게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이 활력 있는 노년의 비결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재활용센터에서 자원봉사 하는 이유를 물으니 "물건들이 누리는 제2의 삶을 보는 게 재미있어요. 다양한 계층의 많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구요. 나이 들수록 노인에게 필요한 건 사람들과의 접촉이거든요. 여기 사람들은 계층과 세대를 막론하고 모두 행복한 얼굴이라 그것도 맘에 들죠. 특히 자원봉사 하는 사람들과의 팀워크가 너무 좋아요. 그렇지 않다면 여기 오지 않겠죠"라고 한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경제활동을 부분적으로 하고 있지만 봉사활동과 여가 활동도 빠짐없이 누리며 알찬 노년을 보내고 있다.
설립부터 운영까지 여성 노인들이 앞장서고 있는 이곳에서 남성 노인들은 주로 뒤에서 돕고 있다. 가전제품을 수리하거나, 공사에 힘을 보태고, 무거운 물건을 기증하러 온 사람들을 도와주고, 때론 덩치 큰 물건들을 배달해 주기도 한다.
버려지는 물건에 제2의 삶을 제공하는 재활용센터는 노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제공하는 듯하다. 쓸모를 잃고 버려질 운명에 놓은 물건들이 새로운 삶을 찾는 재생 센터에서 노인들은 자신들의 삶이 재생되는 기쁨을 간접적으로 누리는 것이다. 그들이 말한대로 이곳에선 모두가 행복한 얼굴이다.
6개의 와인잔 세트와 6개의 크리스털 디저트 그릇 세트를 각각 2유로(2800원)에 장만한 나도, 두꺼운 양장본 렘브란트 화집과 매그넘 사진집을 각각 1유로(1400원)에 구입한 남편도 만족감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풍요의 땅 투씨재활용센터의 성공은 가히 폭발적이다. 주말이면, 먼 곳에서까지 찾아온 승용차들로 한적한 시골길이 주차장이 되곤 한다. 자원봉사자들이 기증한 물건을 깨끗이 손봐서 가지런히 전시해 놓는 탓에 방문자들은 정갈하고도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한두 사람에게 이익이 집중되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누구에게도 이익이 집중되진 않지만 모두가 자잘한 기쁨을 누리는 공간을 통해 멋지게 무력화시키는 지역 공동체의 재생 경제가 노인들의 노력으로 만발하는 중이었다. 이들은 집회에 참석해 냄비 뚜껑을 두드리며 저항도 하지만,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커다란 산을 조용히 들어 올리고 있었다.
▲메이데이 연금개혁 반대집회에 나선 노인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대국민 방송이 진행되던 날 저녁, 시민들은 소통을 거부하는 대통령의 말은 듣지 않겠다는 의미로 냄비 뚜껑을 두드리는 저항을 시작하면서 메이데이 집회에도 냄비가 대거 등장했다.
목수정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