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27 05:16최종 업데이트 23.04.27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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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세계 각국의 노년층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노년의 삶이 축복인지 재앙인지, 각국의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노인의 경험을 사회가 잘 활용하고 있는지 <오마이뉴스>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소식을 보내오는 시민기자들과 함께 전 세계 노년의 삶을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말]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거리를 시민들이 걷고 있다. 2020.6.9 ⓒ 연합뉴스

 
재외 한국인이 된 지 오래된 나는 주로 지인들과 매체를 통해 한국의 사회 현안을 접하게 된다. 가끔 스캔들처럼 터지는 사건들을 제외하면 지난 몇 년간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단골 주제들은 부동산 가격이나 줄어드는 출생률, 30년 뒤에 고갈된다는 연금 같은 것들이다. 이 주제들은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머리를 쥐어짜는 문제라고 말하면 놀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지난 십여 년간 나는 일본을 시작해 독일,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 몇 나라에서 몇 해씩 살았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나라들이 인류 공통의 문제를 함께 끌어안고 있지만 해결 방식이 다를 때가 더러 있다는 것이었다. 각국이 가진 자원이 조금씩 다른 것 외에도 사고 방식과 접근 방식이 다른 데서 오는 것이라 그 차이를 들여다보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재미있다. 물론 배울 점도 많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오스트리아 빈은 한국 매체에서 부동산 문제를 다룰 때 종종 언급하는 도시다. 이곳에는 일정 지분을 사면 평생 아주 저렴한 월세로 살 수 있는 공공주택이 많이 보급되어 있다. 그렇지 않은 주택들도 상한선을 두어 시장 변동이 심할 경우에도 월세 변동이 크지 않도록 정부가 개입한다. 국민 전반의 주거 안정을 꾀할 뿐 아니라 특히, 취약 계층이 최소한의 주거 환경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취지다. 

2021년 스타티스타(Statista)의 통계를 보면 가구가 구비된 원룸 아파트의 임대료는 빈의 경우 평균 월 1088유로(약 156만 원) 선으로 내가 전에 살던 바르셀로나의 1250유로(약 180만 원)보다 훨씬 낮다. 같은 해 평균 연봉이 오스트리아가 5만 8139유로(약 8400만 원), 스페인이 3만 9480유로(약 5700만 원)이니 월급 대비 월세 차이는 더 크다.

오스트리아 월세의 또 다른 특징은 영구 임대(unbefristet vermieten)나 10년, 20년, 30년씩의 장기 임대 계약이 흔하다는 것이다. 첫 계약을 할 때 5년으로 시작해 갱신할 경우 10년이나 그 이상 장기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계약 기간 중에 집주인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거주자의 권리가 강력하게 보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장기 계약은 거주자에게 주거 안정을 보장하기도 하지만, 계약 중 월세가 임의로 오르기 어렵게 보호되어 있다는 점에서 저렴한 선택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2021년 오스트리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영구 임대 주택의 제곱미터(㎡)당 평균 가격은 5.4유로(약 7800원)였다. 그렇지 않은 주택의 경우에는 8.6유로(약 1만 2000원)였다.

사회 취약층 적극 보호

같은 취지의 정책들은 사회 전반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연금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세계경제포럼 웹사이트에 2022년 11월 30일 게재된 '이들이 은퇴하기 가장 좋은 나라들이다'라는 제목의 기사는 한 보고서를 인용해 이른바 '세계 은퇴 지수(Global retirement index)'를 다뤘다. 지수는 전 세계 44개국을 대상으로 건강, 삶의 질, 물질적 행복, 노후 재정 등 18개 카테고리를 바탕으로 측정되었다. 이에 따르면 오스트리아의 은퇴 지수는 14위에 해당한다. 참고로 1위는 노르웨이, 한국은 17위다.

이것만 놓고 보면 오스트리아는 은퇴한 사람들이 살기 괜찮은 나라, 한국도 괜찮은 축,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데 다른 통계 자료들을 들여다보면 이 둘의 차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눈에 보는 연금' 2021년 자료를 보면, 노인 인구 중 중위 소득의 50% 이하인 사람의 비율, 즉, 노인빈곤율은 오스트리아의 경우 10%, 한국은 43% 선이다. OECD 평균은 13.1%이다.

슬픈 이야기인데, 최근 논의되는 한국의 연금 개혁에 노인빈곤율 개혁을 위한 정책이 적극 반영되어야 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내가 살면서 느끼는 오스트리아의 여러 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 취약층을 적극적으로 보호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러시아의 대유럽 가스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겨울 난방비가 얼마나 치솟을 것인가, 난방을 못 하는 가정이 생기지 않게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를 두고 논의가 뜨겁던 때, 동료 중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정신에 큰 문제가 있지 않은 한은 노숙자가 되기 어려워. 사회의 보호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그렇지. 정부가 방치하는 죽음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분위기가 있어. 이번 겨울 얼어 죽는 사람이 나온다면 사회에서 큰 문제가 될 거야."

그간 내가 보고 느껴온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데어슈탄다드>(Der Standard)지의 2020년 8월 18일 자 '오스트리아의 연금은 얼마나 되나'에 나온 예를 보자면, 1963년 12월 2일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남성의 경우 65세, 여성은 60세에 퇴직을 하게 된다. 물론, 실제 퇴직 연령은 연차나 그간 월급 대비 내온 연금의 총액, 계약 조건 등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2019년 평균 퇴직연령은 남성이 61.3세, 여성이 59.5세였다. 

이렇게 되니 당연히 퇴직자들이 받는 연금은 각자 일한 햇수와 그간 받았던 월급 총액에 따라 크게 달라지게 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출산·육아 휴가나 군 복무, 실업 등도 국민연금 가입 기간으로 계산에 포함이 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계산되어 실제 받는 연금 최고액은 세전 월 3566.53유로(약 514만 원)였다.
 

오스트리아의 평균 연금은 퇴직 이전에 받던 평균 월급 대비 87% 선이다. 이는 OECD 평균 62%와 유럽연합 27개국 평균 68%를 훨씬 웃돈다. 이 자료에서 한국은 35%선으로 나온다. ⓒ OECD


참고로 오스트리아의 평균 연금은 퇴직 이전에 받던 평균 월급 대비 87% 선이다. 이는 OECD 평균 62%와 유럽연합 27개국 평균 68%를 훨씬 웃돈다. 물론 오스트리아 월급 분포에도 낮은 금액이 있기 마련이다. 퇴직 전 월급이 낮았거나 평생 일한 기간이 짧았던 사람들의 연금은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런 경우에는 정부가 보전해 준다. 기준액 966.65유로(약 139만 원)보다 연금이 낮은 사람들은 정부 보전을 받아 모두 기준액을 받게 된다. 2019년의 경우 이렇게 보전을 받아 기준액을 받은 사람들은 20만여 명이었다. 같은 해 오스트리아의 65세 이상 인구는 167만여 명이었다.

여성 노인은 더 가난하다

오스트리아의 연금 정책이 꽃길만 걷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곳의 매체들이 종종 다루는 사안이기도 한데, 예를 들어 노인을 여성과 남성으로 나누어 비교하면 그 차이는 의외로 크다. 앞서 언급한 OECD의 통계에서 여성 노인빈곤율은 12.1%, 남성 노인빈곤율은 7.4%이다.

과거 여성들이 육아에 전념하는 동안 경력 단절되는 일이 흔했던 점, 일을 하더라도 같은 수준의 일을 하는 남성보다 현저히 낮은 임금을 받아 왔던 점, 남성보다 은퇴 연령이 낮았던 점 등이 그 이유로 꼽힌다.

이 같은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출산 휴가나 보육을 위한 시설이나 제도적 보장 등이 과거보다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과 남성 간의 월급 차이는 여전히 크다. 오스트리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오스트리아의 남녀 월급 차이는 18.8%로 유럽연합 27개국 평균인 12.7%보다 훨씬 크다. 남성들의 일급으로 환산해 "10월 25일부터 여성들은 68일간 무급으로 일한다"는 구호가 탄생하기도 했다. 이렇게 기울어진 월급 체계에서 일하면 여성들은 평생 남성보다 평균 50만 유로 더 적게 벌게 된다고도 한다. 

그 외에도 오스트리아의 연금 체계는 지금 세계 모든 선진국들이 마주한 문제에 함께 직면하고 있다. 노인들은 늘어나고 젊은이들은 줄어드는 문제 말이다. OECD에 따르면 2050년 세계는 전체 인구 중 30%가 65세 이상인 상황에 진입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상황을 보면, 1997년 노인 1명당 경제활동 인구가 4명이던 것이 점점 줄어 2037년에는 1명당 2.2명 꼴이 될 거라는 전망이 나왔다.
 

아젠다 오스트리아(Agenda Austria)의 자료. 1997년 노인 1명당 경제활동 인구가 4명이던 것이 2037년에는 2.2명 꼴로 줄어든다고 예측했다. ⓒ Agenda Austria

 
그렇다 보니 지금 일하고 있는 세대는 걱정이 크다. 당장 내 세대를 말하는 것인데, 우리는 70이 넘어 퇴직하게 될 거라거나 퇴직하더라도 모두 기준액에 가까운 금액만 받게 될 것이라거나 하는 비관의 목소리가 있다. 그러니 투자도 하고 노후자금을 잘 마련해 두어야 한다는 생각도 흔하다. 

공평에 대한 담론이 단골인 만큼 아이를 기른 수에 비례해 연금이 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아이를 기르는 사람들은 아이를 위해 쓴 만큼 저축을 못했으니 이를 감안해야 한다는 취지다.

분배와 공평에 대한 가치 공유

다만 미래가 비관적이라고 해서 고려장을 한다는 식의 말을 들어본 일은 아직 없다. 딱히 이 책임을 노인들에게 돌리는 식의 발언도 들어보지 않았다. 예를 들어 미국 예일대학의 나리타 유스케 교수의 "노인 집단 자살 또는 집단 할복" 발언이 논란이 되었을 때도 이에 동조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데어슈탄다드>지의 도쿄 특파원은 2월 28일 기사 '양로원으로 가는 길에 일본의 번영이 무너지고 있다'에서, 일본 인구의 노령화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두드러지지만 이 노인들 두 명 중 한 명 꼴로 여전히 일을 하고 있어 젊은 경제활동인구에 다른 나라보다 더 큰 부담을 준다고 볼 수 없고, 일본의 노인들은 다른 나라의 노인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훨씬 건강해 의료 부담도 더 크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도 대체로 인구 노령화 문제는 세대 간의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공평성에 대한 문제라는 점을 지적했다. 노인이라고 모두 부자고 젊다고 모두 가난한 것이 아니잖느냐는 것이었다. 극단의 목소리가 여기라고 없지는 않겠지만, 그걸 부각하는 스피커가 없는 것은 사회 전반에 깔린 '분배와 공평'에 대한 가치와 경험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 인플레이션과 함께 연금도 올리자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미 두 자리 숫자를 찍어버린 인플레이션율에 대한 대응으로 현재 제안된 5.8% 인상이 옳은가를 두고 공방이 이어진다.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SPÖ)은 인상률이 더 높아야 한다고, 오스트리아 국민당(ÖVP)은 모두가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는 마당에 이미 높은 연금을 받는 이들을 포함해 일괄 인상은 공평치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지난 몇 해 동안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우경화되는 경향을 보였고, 그런 정당을 배경으로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복지를 줄이기 위한 목소리를 내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구 구조와 노동과 생산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이 시점에 연금 개혁은 어디에서도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됐다. 기금 조성과 배분의 문제를 두고 서로 다른 시각들이 마찰을 빚고 있지만, 결정의 순간은 다가오고 있다. 베이비 부머들이 노인이 되니 노인 인구가 많아지고, 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지니 노인 인구는 더 많아진다. 여기에 낮은 출생률로 젊은 경제활동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일하는 노인들이 많아지는 일은 막을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의학의 발달은 수명을 길게만 한 것이 아니라 노화를 늦춰주기도 했으니까, 젊은 노인들 중에는 기꺼이 일하고 싶은 이들이 꽤 있기도 할 것이다. 다만, 그런 선택을 할 수 없는 취약층부터 보호하는 개혁 방향을 오스트리아 정부는 취하게 될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관찰한 바로는 말이다. 그리고 또 어떤 개혁 정책들이 등장할까. 열심히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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