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17 04:58최종 업데이트 23.04.17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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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국방 개혁 기본 계획인 '국방개혁 2.0'에 따라 총병력을 2018년 기준 59만 9천여 명에서 2022년 기준 50만여 명으로 감축했다. 예정된 인구 감소에 대비하여 병력 규모를 선제적으로 줄인 결과다. 감축된 병력의 대부분은 육군 병사다. 국방부는 병사 수를 줄이는 대신 부사관 정원을 늘려 전투력을 보강하고, 비전투 임무는 민간 인력에 맡기고 군인들은 전투·작전 임무에 투입하여 병력 감소에 따른 애로 사항을 해결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계획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군 구조 개편 계획에 따라 병사 수는 감축을 완료했고, 비전투 임무를 수행할 군무원 수도 대폭 늘었다. 그런데 병사 감축에 따른 간부 보강에는 애로사항이 많다. 병사 복무 기간 감축에 맞물려 간부 지원율이 대폭 하락한 결과다. 2016년 2만 9천여 명이었던 민간 모집 부사관 지원 인원은 2020년 기준 1만 9천여 명으로 대폭 줄었다.


그러나 간부 지원율이 줄어드는 근본적 이유는 병사 복무 기간 감축이 아니다. 복무기간 감축은 피상적으로 드러난 요인 중 하나일 뿐이다. 진짜 문제는 군인이 구직자에게 더이상 매력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곰팡이가 잔뜩 핀 낡은 간부 관사 사진이 공론화된 일이 있었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전방 지역에 집을 산 부사관이 갑자기 후방으로 인사 발령을 받아 겪게 된 애로사항도 공론화된 바 있다.

임금이 많은 것도 아닌데, 주거가 불안정하며,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야 하고, 일반 공무원과는 달리 정년이 보장되지 않아 직업 안정성도 떨어진다. 그뿐인가. 간부가 피해자인 인권 침해와 성폭력 사건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2021년 기준으로 군인 자살자의 60% 이상이 간부다. 나라와 시민을 지킨다는 자부심과 보람만으로는 상쇄할 수 없는 박탈감과 고충이 더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군무원에게 간부들의 일 전가

필요한 만큼의 간부 충원이 안 되니 당장 일선 부대의 인력이 부족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국방부가 인력 부족 문제의 대안으로 군인 간부가 하던 임무를 군무원에게 수행하게 하려는 움직임이 계속 포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연일 군무원에게 간부들의 일을 전가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군무원은 특정직 공무원으로 군인과 함께 근무하지만 군인과는 신분이 구별된다. 비전투 분야에서 행정, 사무, 정책, 각종 기술직 등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무를 수행한다. 당초 군은 비전투 임무를 수행하던 군인의 수를 줄이고, 이를 대체할 인력으로 민간인인 군무원의 수를 증원했다. 2017년 기준 2만 6000여 명이었던 군무원 정원은 2022년엔 4만 4000여 명을 넘겼다. 50%가 순증한 셈이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 사진공동취재단

 
그런데 국방부는 군인들을 본연의 전투, 작전 임무에 집중하게 하려고 군무원을 많이 뽑아놓곤, 군인의 수가 모자라니 정작 군인들이 해야 할 일을 군무원에게 맡기려고 한다. 초급 간부가 원하는 만큼 뽑히지 않으니 다른 일 시키려고 뽑아둔 군무원을 땜빵으로 갖다 쓰려는 것이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황당한 정책 방향이 아닐 수 없다.

군무원들도 불만이다. 취업 사기라는 표현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비전투 인력인 군무원에게 총기 사격 훈련을 시키는 부대가 있는가 하면, 당직사령이나 당직사관 임무를 맡기는 부대가 부지기수라 한다.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부대가 이미 군무원을 당직 근무에 투입하고 있다. 심지어 위병소 근무에까지 투입하는 부대도 있다고 한다. 당연히 군무원이 할 일도 아니고, 법령상 군무원이 할 수 있는 일들도 아니다. 사실상 엄연히 신분과 임무가 다른 군무원과 군인을 임의로 혼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면 누가 군무원 하려고 할까

문제가 불거지니 국방부는 아예 군무원에게 공식적으로 군인 간부들의 업무를 나눠 맡길 법령 제도를 구비할 심산으로 보인다. 간부가 모자라면 간부를 충원할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간부가 모자라니 간부의 일을 떠넘길 궁리부터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누가 군무원을 하려고 하겠는가. 결과적으로 간부도, 군무원도 모두 충원하지 못하는 총체적 인력난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2018년 기준 279명이었던 연간 군무원 의원면직자의 수는 2021년 기준 984명까지 늘어났다. 이 중 75%가 입직 3년 차 이하다. 정원은 늘려 뽑아두었는데 일에 숙련도가 생길 때쯤 이탈하는 숫자도 그만큼 늘어나 버린 것이다.

우리 군은 여전히 의무로 모든 걸 강제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직업군인도, 군무원도 억지로 군에 남아 있을 까닭이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들에게 군은 국토 방위의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직장이기도 하다. 군대를 유지하고 싶으면 이런 식으론 안된다. 주먹구구식으로 인력을 운용하는 조직에 사람이 남을 리 없다는 자명한 진실을 깨우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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