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2023년도 정책방향 연두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교육을 하나의 서비스와 용역이라고 보고, 수요자와 공급자가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복합위기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에게는 어떤 교육 철학이 필요할까?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매우 적극적으로 자신의 교육관을 피력해왔다. 취임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그는 "교육부의 첫 번째 의무는 산업인재 공급"이며, 교육부는 "스스로를 경제부처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과 협의해 이전 교육부와는 다른 기준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해에 들어서면서 그의 "다른 기준", 즉 시장 중심적 교육관은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교육부 신년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례적으로 긴 모두발언을 통해 윤 대통령이 강조한 것은 시장의 자유,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교육 시장의 자유였다. 그는 "교육을 하나의 서비스와 용역이라고 보고, 수요자와 공급자가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거리낌 없이 말했다.
이런 세계관 속에서 학생들은 상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무한경쟁을 뚫고 기업이라는 수요자의 선택을 받으려면 학생들은 "쓸모 있는" 상품이어야 한다. "잘 팔리는" 전공을 선택하고 스스로의 경쟁력을 키워 인재 시장에서 적자생존 하는 것이 바로 학생들에게 주어진 시장의 자유다.
윤석열 정부는 교육 현장에서 시장의 원칙을 충실히 구현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교육을 위한 최선이라고 믿고 있다. 자연히 시장 경쟁에 유리하고 경제적 수요가 많은 분야가 교과과정에서 더 우선시된다. 윤 대통령에 따르면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과 같은 분야가 그것이다. 그는 "디지털 인재를 많이 양산해서 산업계에 공급하는 것이 교육의 책임"이라며,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교육의 방향은 자유주의"라고 한마디로 정리해버렸다.
실제로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학교 서비스 시장화, 자유 경쟁을 통한 산업인재 양성, 대학 규제 철폐와 경쟁에 기반한 적자생존, 기업 및 산업 수요(특히 디지털 기술)에 최적화된 교과과정, 디지털교육기획관 신설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2024년부터 대학들은 총입학정원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자유롭게 학과를 개편할 수 있다. 따라서 학과의 신설·통합·폐지도 자유로워진다. 예컨대 가장 쉽게 떠오르는 시나리오는 인문계열(특히 문학·사학·철학) 정원을 축소하고 공학계열 정원을 늘리는 것이다. 역시나 교육부는 자율화 정책 덕분에 "4차 산업혁명과 같은 산업구조 재편에 적합한 학과 개편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학마저 각자도생 시장 될 것
물론 사회 변화에 조응하는 유연한 교육 현장을 설계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소위 4차 산업혁명이 시대의 변화를 모두 반영하는 것은 아니며, 시장이 우리 사회의 전부도 아니고, 교육의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단순 환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학생들이 시장에 호응하는 발 빠른 산업 인재가 되어야 할까? 그저 "돈 되는 전공"을 우선시하는 시장친화적 대학 환경에서 복합위기의 시대를 살아갈 역량을 기를 수 있을까?
이미 교육 현장은 많은 면에서 시장화되어 있다. 그러나 현 정부의 정책은 "자유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의 시장화를 가속화하고, 대학 내의 삶마저 각자도생과 적자생존으로 바꿔버릴 것이다.
학생들은 기초학문을 공부하고 싶어도 자원과 선택지가 없어 취직이 잘 되는 학과를 택해야 할 것이고, 동시에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학점 관리에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경제적 성취를 최고의 성공으로 간주하는 교육 관료들의 정책 비전 속에서, 열린 탐색과 깊은 모색을 할 기회는 사라지고 학생들은 오직 스스로의 상품성을 기준으로 달리게 된다.
시장화된 학교는 학생들의 삶, 건강, 그리고 학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자유 경쟁 시장"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이들은 누구이며, 가장 먼저 낙오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능력주의와 비장애중심주의(ableism)를 당연하게 내세우는 정책 기조 앞에서 경쟁의 문턱조차 밟지 못하는 학생들은 없을까.
혹시 학생들은 이미 지쳐서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우리가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지난달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이태원 참사 생존자를 우리는 구하지 못했으니까.
지금의 10대와 20대는 우리 모두에게 큰 상처를 입힌 사회적 참사를 직접적으로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장기화된 재난이라고 할 수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본질적으로 달라진 학습 환경을 갑작스럽게 받아들여야 했다.
이것은 그저 온라인 수업을 위해 디지털 기술을 잘 활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 학번"이라고 불리는 20대들 사이에서 실제로 정신질환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대한 주의 깊은 관심과 대처가 시급하다.
2021년도 20대 우울장애 환자는 17만 8867명, 공황장애 환자는 3만 2471명, 양극성장애 환자는 2만 8089명,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환자는 3347명으로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특히 모두가 정신과를 방문해 진단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때 통계에 잡히지 않은 이들도 많을 것이다.
불행히도 한국의 대학은 정신적 위기에 처한 학생들을 위한 배려와 돌봄의 체계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다. 교육 현장의 유연성은 바로 이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