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0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부동산 조세정책에는 문재인 정부 정책의 허점을 파고들어 그 문제점을 해소하려는 내용이 일부 담겨 있다. 대통령이 허술한 언행을 보인다고 해서 경제관료들까지 허술해지는 것은 아님을 확인하는 대목이다.
주택 수 기준의 차등과세를 가액 기준 일률 과세로 전환한다든지, 1주택자 주택 수 판정 기준을 개선해 일시적 2주택자나 상속 주택 소유자가 상대적으로 과중한 종부세를 부담하지 않도록 한다든지, 고령자나 장기 보유자를 대상으로 납부 유예 제도를 시행한다든지 하는 것들은 합리적인 범주에 속하는 정책들이다.
문제는 정책의 기조다. 윤석열 정부는 종부세와 관련해서 이명박 정부의 뒤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과세 기준을 상향해 과세 대상자를 축소하고, 주택분 종부세 세율을 인하하고,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낮춰서 과표 금액을 줄이고, 다주택자에게 적용되는 세 부담 상한을 인하하는 등 종부세 부담과 관련된 모든 요소를 다 건드리며 전방위적 완화를 도모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가운데 법률 개정이 필요 없는 공정시장가액 비율 인하는 국무회의를 통과해 이미 시행에 들어갔고, 나머지 사항도 밀어붙일 기세다. 윤석열 정부의 의도대로 종부세법이 개정된다면, 과세 대상자와 세수가 격감했던 2009년의 상황이 재현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될 경우, 앞으로 언젠가 2016년 이후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보유세 실효세율 통계의 유효성
보유세 정책과 관련하여 한 가지 '팩트 체크'할 사항이 있다. 국민의힘은 대선 공약집에서 부동산 세제를 '정상화'하겠다면서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동산 관련 세금 징수액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최상위권"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부동산 시장만능주의자들이 보유세 강화정책을 흠집 내기 위해 오래전부터 동원해온 수법으로서 매우 고약한 통계 활용 방식이다. 보유세액을 사용해야 하는 자리에 '부동산 관련 세금'을 넣어 계산함으로써 현실을 호도했으니 하는 말이다.
부동산 관련 세금에는 보유세뿐만 아니라 거래세도 포함된다. 한국에서 거래세액이 큰 이유는 부동산 거래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빈번하기 때문이다. 보유세액을 넣어서 계산하면 한국의 GDP 대비 보유세 비율은 OECD 국가 중에서 최상위권이 아니라 평균 수준이다. 향후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이 비율은 다시 OECD 평균 수준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부동산 가격이 월등하게 높은 한국의 경우, GDP 대비로 보유세 부담을 계산하면 과대평가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보유세 부담은 실효세율(보유세액/부동산가액)로 따져야 정확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보유세는 재산세이므로 분모에 부동산 가액을 넣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하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부동산 시가 총액의 추정 방법에 국가별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세계 어디에서도 쓰지 않고 국제비교도 할 수 없는 엉터리 통계'라고 실효세율 통계를 폄훼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 통계를 활용한 분석은 이미 여러 건 나왔고 또 각국의 부동산 시가 총액은 OECD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추계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무 근거도 없는 무책임한 비난이라고 해야 한다.
보유세 실효세율을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은 0.17%(2020년 기준)로 관련 통계를 보고한 OECD 15개국 평균 0.27%에 미달한다. 15개국에 포함되지 않은 미국(1.1%)과 비교하면 한국의 보유세 부담은 1/6~1/7 수준이다. GDP 대비 '부동산 관련 세금'의 비율이 높다는 이유로 보유세 강화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는 일말의 근거도 없는 셈이다.
이명박 정부가 종부세를 무력화하려고 할 때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결연한 자세로 막아섰다. 처음에 아예 세목 자체를 없애려고 했던 이명박 정부는 나중에 뒤로 물러섰는데, 여기에는 이용섭 양승조 등 민주당 의원들의 활약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민주당의 자세가 그때와는 크게 달라서 걱정이다. 이미 민주당 주도로 1주택자의 과세 기준을 9억 원에서 11억 원으로 올려서 과세 대상자를 축소했고,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부동산세 완화 공약으로 부동산 소유자의 환심을 사려는 자세를 노골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알아서 물꼬를 터주는 해괴한 짓을 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종부세를 둘러싸고 민주당이 보여온 자세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지켜보자니, 오래전 헨리 조지가 <사회문제의 경제학>에 남긴 무거운 경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정치문제의 저변에는 부의 분배와 관련된 사회문제가 존재한다. 우리 국민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돌팔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 돌팔이들은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증상을 고치겠다는 약속만 내뱉는다. '투표로 좋은 사람을 뽑자.' 돌팔이들의 말이다. 좋다. 새 꼬리에 소금을 뿌려서 새를 잡자!"(35쪽)
"대중은 개혁을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람이나 정당을 바꾸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정치에는 어린아이에 불과한 대중은 실제로는 깊고도 일반적인 원인이 있는 사회현상을 나쁜 사람들이나 악한 정당 탓으로 돌린다. 미국의 양대 정당은 다른 정당과 싸워 정권을 유지하거나 빼앗는 것 말고는 주장할 수 있는 일이 사실상 없다."(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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