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1일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들이 서울 중구 MBN 스튜디오에서 열린 당 대표 후보 토론회에 앞서 방송 준비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준석, 주호영, 조경태, 홍문표, 나경원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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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기성세대가 포착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자신들만의 서사를 만들어 나갔고, 기존의 사회적 관념이 변화한 세상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온라인 공간에서 어떤 식으로 집단 간 투쟁을 이끌어야 하는지 방법론을 학습했다. 요컨대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위한 훈련장이 된 온라인에서 시작된 흐름이 정치적 영역으로 옮겨붙은 것이 이준석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준석은 당대표 선거 토론회에 나왔을 때 마치 인터넷 방송의 방송인과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인터넷 방송은 팬덤 정체성의 형성과 그에 입각한 집단행동과 투쟁이 작동하는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 영역이다.
토론회 시청자들은 이준석이 나경원, 주호영 등 기성 정치인에게 '한 방 먹였을 때' 채팅창에 번개와 같은 채팅을 쏟아내면서 집단적 쾌감을 경험했고, 인상적인 하이라이트를 자발적으로 편집하여 밈으로 만들고 커뮤니티에 확산시켰다.
이같은 확산 과정 또한 인터넷 방송의 문법과 완전히 일치한다. 익숙한 방법론을 정치라는 새로운 영역에 적용하며 많은 청년 남성층은 이준석이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해주는 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준석을 지지하는 자신들의 그룹, 즉 팬덤 또한 자신의 중요한 정체성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이준석이 기성 정치권에서 별다른 기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력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런 팬덤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팬덤이 순식간에 형성되어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요인은, 대중문화 영역에서 이미 청년층이 집단행동을 훈련하면서 역량을 축적해왔기 때문이다. 그 힘을 정치로 투사할 수 있는 통로만 열어주면 되었던 것이고, 이준석은 그 통로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 이후에 이준석 현상은 빠르게 동력을 상실했다. 핵심적인 문제는 양당의 산업화와 민주화 세계관이 시효를 다한 상황에서 이준석이나 그 지지층이 새롭고 대안적인 세계관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는 많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이슈에 대응하고 당장의 감정을 푸는 수준에 그쳤다.
새로운 세계관과 그에 입각한 일관된 대안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단순히 기존의 세계관을 폐기처분하고 세대교체를 이루자는 그의 구호는 추가적인 동력을 만들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들을 향한 이준석의 적대적 태도를 인식한 기성 정치인들의 반감만을 샀을 따름이다.
이러한 반감은 성상납 논란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갈등으로 이어졌다. 정권이 교체된 상황에서 안티테제로는 동력을 만들어내기가 점차 어려워졌고, 자연스럽게 이준석의 정치적 패배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의 지지층에서도 이준석에게 새로운 문제의식을 만들어낼 자원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대선 같은 거대한 정치적 변곡점이 사라진 시점에서는 확장성을 가질 수도 없었다.
따라서 이준석, 혹은 '이준석 이후'를 꿈꾸는 다른 누군가가 있다면, 현재 한국, 나아가 세계가 거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음을 먼저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산업화나 민주화는 20세기 중후반의 시대적 맥락에서 등장한 세계관이었다. 2022년에도 그 세계관이 계속 문제없이 작동한다면 그게 신기한 일일 것이다. 이준석을 향한 열렬한 지지는 이제 더는 산업화나 민주화가 아니라, 지금의 시대에 맞는 지금의 서사와 대안을 갖고 오라는 강력한 요청이었다.
기성 정치인들 시대변화 외면

▲지난 9월 28일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헌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 사건 심문을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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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남성층이 이 움직임의 중심이 되었던 이유는, 그들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된 좌우 세계관의 정치적 파산을 통해 깊은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준석은 그들의 강한 감정적 힘을 그들에게 익숙한 온라인 엔터테인먼트의 문법을 통해 풀어줄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물론 그는 앞서 이야기하였듯 새로운 시대를 위한 종합적 서사와 세계관을 지닌 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선 국면에서 세대교체에 걸맞은 이미지라도 만들어낸 정치인은 이준석 단 하나였다.
이 사실은 한국 정치의 다른 나머지 행위자들의 상황은 더욱 볼 것이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 대체로 그들은 현재 사회적으로 어떤 불만들이 공유되고 있는지 관심 자체가 없으며, 사회의 실제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 자신들이 성장해왔던 어제가 오늘도 그대로 반복될 것이며, 오늘의 모습이 내일에도 똑같이 펼쳐질 것을 막연히 생각하면서 행동할 따름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점의 변화나 대안을 얘기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 된다. 시대의 변화에 촉각을 기울이는 것을 쓸데없는 일이라 치부했던 시간이 누적되자 현재의 사회적 갈등과 불만은 그 어느 때보다 커져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대안은 단순한 염증이나 분노의 감정만으로 도출되지 않는다. 지금의 시대는 어떤 시대인지, 사람들을 갈라놓는 갈등의 전선은 어디에 그어져 있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만 하고, 공격할 대상과 협력할 대상을 지정해야 하며, 새로운 목표와 비전을 통해 무엇을 건설할 것인지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기성 정치인들이 실패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산업화나 민주화를 미완의 과제로 여기며 그에 따라 그것들이 '새롭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이준석과 그 지지층의 실패는 기존 세계관의 부정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지 못한 데 있다. 따라서 핵심은 세계관이다.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따라서 분명한 것은 이 질문을 회피하는 정치적 행위자들은 누구나 더욱 심화될 위기에 대응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 스스로가 그에 따른 혼란을 지금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임명묵 / 작가
임명묵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임명묵은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석사 과정 학생입니다. 서아시아 현대사를 공부하고 있지만 동시에 21세기 이후의 사회 및 문화 변동과 새로운 청년 문화에 많은 관심을 두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K를 생각한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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