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킨지사의 고객 그룹맥킨지사가 2020년 11월 프랑스 보건부에 보낸 자신들의 주요 고객들 리스트. 2022년 3월16일 발표된 프랑스 상원 보고서 262p에 수록된 자료.
프랑스 상원
맥킨지는 미국의 질병청 CDC, 독일 연방 정부의 보건부, 영국의 보건국(NHS) 등의 정부 기구와 화이자·머크·사노피·GSK 등 대형 제약회사, 세계보건기구(WHO)·유니세프·세계백신면역연합(GAVI)·빌앤멜린다 게이츠 재단 등의 국제기구와 단체들에 컨설팅을 해오고 있었다. 맥킨지의 고객들이 마크롱 정부처럼 그들의 전략을 전폭 신뢰하고 따라주었다면, 그들은 선거 한 번 치르지 않고 자신들의 뜻에 따라 "시대를 관통하는 사고"를 조율하고 전파하며, 세상을 멋대로 주무를 수 있을 법도 하다.
프랑스의 컨설팅업계 전문지 <컨설터>(Consultor)가 2021년 5월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제약업계는 컨설팅사에 최고의 고객이며 2021년에만 업계 시장 규모는 50% 성장했다. 26개 대형 제약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판매·마케팅·조직구성·인수·합병 능력을 기준으로 평가한 바에 따르면, 맥킨지는 제약회사들이 꼽은 최고의 컨설팅 업체였다.
이를 입증하기라도 하듯 맥킨지에 자사의 컨설팅을 맡겨온 화이자는 2021년 8월 아예 맥킨지 출신의 아미르 말릭(Aamir Malik)을 부사장 겸 사업혁신 책임자로 앉히기도 했다.
약을 최대한 많이 팔아야 하는 제약회사,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을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하는 정부를 모두 고객으로 둔 기업은 양쪽의 이해가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할까? 우린 그들이 했던 치명적이고 비극적인 선택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
맥킨지, 50만 명 사망 사태의 숨은 주역
2021년 11월 5일 자 <뉴욕타임스>는 맥킨지가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로 인한 사망 사태에 대한 소송을 매듭짓기 위해 약 6억 달러를 지불하는데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맥킨지는 미국에서만 약 50만 명(미 질병통제예방센터 추산)을 사망으로 이끈 오피오이드제 '옥시콘틴'의 판매 촉진 전략을 이끈 혐의를 받고 있었다. 매사추세츠 주 법무장관은 "수천 건의 문서와 이메일이 공개된 뒤에야" 맥킨지가 자신들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고 이번 합의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2009년 맥킨지는 퍼듀 파마(Purdue Pharma)에 연간 4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게 하기 위해 옥시콘틴이 "스트레스를 줄이고" 환자를 "더 낙천적이고 덜 고립되게" 만든다는 마케팅 전략을 제안했다. 그들의 전략은 적중해 퍼듀 파마사는 큰 돈을 벌었다. 그러나 이 약에는 마약 성분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과다 복용으로 죽거나 중독에 빠졌다.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 앵거스 디턴(Angus Deaton)에 따르면 미국은 전 세계 마약성 진통제 시장의 80%를 점유한다. 이토록 위험한 약이 큰 호황을 누리며 판매되는 것은 제약 규제 당국의 느슨한 통제와 제약회사의 공격적 마케팅, 의회를 향한 공격적 로비 탓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포브스>는 2019년 맥킨지의 매출이 약 100억 달러라고 전했다. 맥킨지가 50만 명의 미국인을 죽음으로, 수백만 명을 마약 중독으로 이끈 대가로 치러야 하는 죗값은 12년이 지난 뒤 매출액의 6% 정도를 지불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렇다면 맥킨지가 같은 행위를 반복하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고객의 이윤을 극대화하는데 기여한다는 목적에 충실할 뿐 그것이 시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판단할 줄 모르는, 로봇처럼 작동하는 기업이 지휘한 백신 접종 전략을 소위 선진국들이 맹목적으로 따랐고, 그들의 발걸음을 많은 나라들이 뒤쫓아 갔다.
마크롱-맥킨지, 오랜 인연의 끝
대선을 목전에 두고 터진 악재는 마크롱의 재선을 가로막을 것인가? 전반적 분위기는 전체 언론이 똘똘 뭉쳐 마크롱을 미는 듯했던 5년 전과 딴판이다.
2월엔 시사주간지 <옵스>(l'Obs)의 두 언론인 마티유 아론(Matthieu Aron)과 카롤린 미셸-아귀르(Caroline Michel-Aguirre)가 맥킨지와 마크롱 정부의 유착 관계를 상세히 폭로한 책 <침입자들: 어떻게 컨설팅사는 정부를 통제하게 됐나?>(Les Infiltrés - Comment les cabinets de conseil ont pris le contrôle de l'État)를 내놓았다. 이 책은 장막 뒤의 숨은 권력, 맥킨지와 마크롱 정부 간의 문제를 상원보다 한 달 앞서 터뜨려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기도 했다.
<르몽드>도 2007년부터 이어져온 맥킨지-마크롱의 끈끈한 유착 관계를 파헤쳐 기사화하고, 맥킨지 관련 마크롱의 변명이 지닌 허점을 조목조목 폭로하는 등 종전의 훈훈했던 관계를 접고 선을 긋는 듯한 모습이다.
<르몽드>에 따르면 마크롱은 2007년 사르코지 정부가 출범했을 때 사르코지로부터 경제개혁과제 개발의 임무를 부여받은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의 '아탈리 위원회'에서 처음 맥킨지사와 만났다. 이후 2016년 마크롱이 대선에 출마할 당시 신당 창당에서부터 대선 공약 개발까지 10여 명의 맥킨지 직원들이 긴밀이 협력하며 마크롱 정권 창출의 핵심 역할을 했다. 컨설팅 업체 중심의 국정 운영이라는 마크로니즘의 DNA가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특별정상회의에서 언론회의를 마친 후 단상을 나서고 있다. 2022.2.25
AP=연합뉴스
지난 지방의회 선거와 지자체장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거둔 처참한 성적은 마크롱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실망을 잘 반영한다. 여론조사업체들이 내놓는 20%를 웃도는 마크롱 지지율에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품는 이유다.
강력한 방역독재는 의회활동 뿐 아니라 정치·사회 전반의 활력을 틀어막으며 활발한 정치 논쟁의 분위기를 억제해왔다. 3월에 들어서야 뒤늦게 대선 출마 선언을 하는 대통령의 행보 또한 선거 분위기를 최대한 축소하는 데 한몫했다. 이런 현실은 다른 대선 주자들이 정치적 대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제한해 사실상 마크롱을 위협할 강력한 적수는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다. 현재로선 마크롱이 지지율 1위, 극우 후보 르펜(Le Pen)이 2위, 극좌 후보 멜랑숑(Melenchon)이 3위를 달리고 있다
분명한 한 가지는 그의 두 번째 대선 전략은 전혀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크롱은 토론 불참을 공식 선언한 상황에서 3분짜리 광고 영상만을 4편째 내보내고 있으나 조회수도 댓글도 찬바람만 날리고 있다. 사회가 긴 세월 쌓아온 가치와 시스템을 배반하고, 컨설팅 업체들과 함께 국정을 운영해온 마크롱의 위험한 실험은 고객의 이윤만 알 뿐 공동체의 가치는 알지 못하는 맥킨지와 함께 종말을 맞을 듯하다. 그가 재선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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