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사정' 대신 '나누기'를 가르쳐 주세요!" 12세 이하 성교육에 반대하는 프랑스 학부모 단체 SOS Education에서는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SOS Education
프랑스 교육부가 올 하반기부터 현행 초등학교부터 해오던 성교육을 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히면서 학부모들 사이에서 우려와 논란이 나오고 있다.
프랑스에선 2001년 학교 성교육이 법적 의무 사항이 된 이후, 학교 성교육 프로그램이 점진적으로 발전해 왔다. 특히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18년에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정밀하게 설계된 성교육 프로그램이 시행되었고 이를 통해 젠더, 성소수자,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급격히 제고되는 변화를 보이기도 했다.
일례로, 여론조사기관 IFOP가 지난 4월 1천여 명의 성소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6년 전에 비해 직장에서 커밍아웃을 한 성소수자의 비율이 50%에서 60%로 늘어났고, 언어폭력을 당한 경험은 16%에서 9%로 감소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여전히 17%의 청소년들이 한 번도 성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조사 결과(여론조사기관 IFOP, 2022년)가 나왔다. 이에 따라, 정부가 의무화된 학교 성교육 시행을 소홀히 했다며 3개 시민단체가 교육부를 행정법원에 제소하는 일이 지난해에 있었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 정부는 성교육 프로그램을 재정비하는 한편, 금년 9월부턴 유치원에서부터 앞당겨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위 여론조사에서는 프랑스 17세 이상 청소년의 43%가 1회 이상의 성 경험이 있고, 20세 이하 여성의 10%는 성적 공격을 경험한 바 있으며, 2/3의 프랑스인들은 남성이 여성보다 성적 욕망 조절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믿는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이는 학교 성교육이 다뤄야 할 과제들이 많은 상황임을 보여준다.
몸의 즐거움을 받아들여라 : 이론과 실천 사이
"즐거움을 거부하는 동안, 당신 존재의 주름 속엔 오직 욕망만 축적될 뿐. 당신의 몸은 당신의 유산을 알고, 욕구를 알고 있으며, 실망하길 원치 않는다오. 당신의 몸은 영혼의 하프. 그것으로 달콤한 음악을 연주하든 혼란만 가져오든 모든 건 당신에게 달려 있다오." - 칼릴 지브란 <예언자>
2020년 발간된 '교사들을 위한 성교육 가이드북' 서문에 실린 문구다. 자신의 신체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몸의 즐거움을 수용할 것에 기반하고 있는 학교 성교육 프로그램은 크게 3가지 차원으로 구성된다. ▲ 자기 자신을 온전히 알기 ▲ 자신의 몸과 함께 생활하고 성장하기 ▲ 타인을 만나 그들과 관계 속에서 자아를 꽃피우고 그 속에서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살아가기.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시기에 따라 세분화된다.
'유치원'(3~6세)에선 내 몸 알기, 친밀한 관계 이해하기, 비밀이 무엇인지 알기,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을 식별하기, 그들에게 도움 요청하기, 여자와 남자 사이의 평등, 학교에서나 어디서나 자기 자신으로 행동하기 등을 배운다. 구체적으로는 생식기를 포함한 몸 구석구석의 명칭을 부르며, 어디에 무엇이 있고,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같고 다른지 알게 한다.
'초등학교' 초기에는 신체, 감정, 공동체 생활의 규칙에 대한 고려를 바탕으로 애정관계 생활에 대한 교육이 계속되고, 이후 사춘기로 인한 변화를 고려해 자신들이 겪고 있는 변화를 명확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발전시킨다. 이 시기 성교육의 목표는 '자존감을 가지고 성장하고 자신의 은밀한 사생활을 보호'할 줄 알며, 성관계에 있어서 '상호 동의'의 중요성을 아는 것에 있다. 그밖에, 여러 형태의 가족(이성 부모 가정, 동성 부모 가정, 한부모 가정, 입양 가정, 아이 없는 가정 등)이 있음을 가르친다. 또한 소셜네트워크 (SNS)와 게임 플랫폼에서 마주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예방 교육도 진행한다.
'중학교'에서는 사춘기에 이르러 변화하는 신체에 대한 이해, 예술작품, 문학작품 등을 통해 성적 신체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관찰하고 분석한다. SNS상의 청소년 출판물을 분석하여 무엇이 사생활과 공적 생활인지, 무엇이 합법적인지 아닌지를 식별할 것을 제안한다. 섹슈얼리티를 규정하는 다양한 주제, 즉, 생식, 아이를 갖고자 하는 욕망, 즐거움, 사랑 등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고등학교'에서는 SNS 시대의 성생활을 중점적 테마로 다룬다.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연애 장면을 분석해 수줍음, 기쁨, 유혹, 정숙함, 두려움, 실패의 고통 등 연애 과정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감정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법률에 근거해 괴롭힘, 사이버 폭력, 성차별, 성폭력, 강간, 명예훼손 등이 어떻게 규정되는지에 대해 배우기도 한다.
프랑스 학교 성교육은 과거, 성관계로 인한 질병의 예방,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하기 위한 피임 교육에 국한되어 있던 데서 보다 정밀하게 진화한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까지만 보면 딱히 어디에 논란의 실마리가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론과 실천 사이엔 적지 않은 괴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