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27 06:56최종 업데이트 24.05.27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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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사정' 대신 '나누기'를 가르쳐 주세요!" 12세 이하 성교육에 반대하는 프랑스 학부모 단체 SOS Education에서는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SOS Education
 
프랑스 교육부가 올 하반기부터 현행 초등학교부터 해오던 성교육을 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히면서 학부모들 사이에서 우려와 논란이 나오고 있다.

프랑스에선 2001년 학교 성교육이 법적 의무 사항이 된 이후, 학교 성교육 프로그램이 점진적으로 발전해 왔다. 특히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18년에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정밀하게 설계된 성교육 프로그램이 시행되었고 이를 통해 젠더, 성소수자,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급격히 제고되는 변화를 보이기도 했다.


일례로, 여론조사기관 IFOP가 지난 4월 1천여 명의 성소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6년 전에 비해 직장에서 커밍아웃을 한 성소수자의 비율이 50%에서 60%로 늘어났고, 언어폭력을 당한 경험은 16%에서 9%로 감소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여전히 17%의 청소년들이 한 번도 성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조사 결과(여론조사기관 IFOP, 2022년)가 나왔다. 이에 따라, 정부가 의무화된 학교 성교육 시행을 소홀히 했다며 3개 시민단체가 교육부를 행정법원에 제소하는 일이 지난해에 있었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 정부는 성교육 프로그램을 재정비하는 한편, 금년 9월부턴 유치원에서부터 앞당겨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위 여론조사에서는 프랑스 17세 이상 청소년의 43%가 1회 이상의 성 경험이 있고, 20세 이하 여성의 10%는 성적 공격을 경험한 바 있으며, 2/3의 프랑스인들은 남성이 여성보다 성적 욕망 조절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믿는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이는 학교 성교육이 다뤄야 할 과제들이 많은 상황임을 보여준다.

몸의 즐거움을 받아들여라 : 이론과 실천 사이
 
"즐거움을 거부하는 동안, 당신 존재의 주름 속엔 오직 욕망만 축적될 뿐. 당신의 몸은 당신의 유산을 알고, 욕구를 알고 있으며, 실망하길 원치 않는다오. 당신의 몸은 영혼의 하프. 그것으로 달콤한 음악을 연주하든 혼란만 가져오든 모든 건 당신에게 달려 있다오." - 칼릴 지브란 <예언자>
 
2020년 발간된 '교사들을 위한 성교육 가이드북' 서문에 실린 문구다. 자신의 신체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몸의 즐거움을 수용할 것에 기반하고 있는 학교 성교육 프로그램은 크게 3가지 차원으로 구성된다. ▲ 자기 자신을 온전히 알기 ▲ 자신의 몸과 함께 생활하고 성장하기 ▲ 타인을 만나 그들과 관계 속에서 자아를 꽃피우고 그 속에서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살아가기.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시기에 따라 세분화된다.

'유치원'(3~6세)에선 내 몸 알기, 친밀한 관계 이해하기, 비밀이 무엇인지 알기,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을 식별하기, 그들에게 도움 요청하기, 여자와 남자 사이의 평등, 학교에서나 어디서나 자기 자신으로 행동하기 등을 배운다. 구체적으로는 생식기를 포함한 몸 구석구석의 명칭을 부르며, 어디에 무엇이 있고,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같고 다른지 알게 한다. 

'초등학교' 초기에는 신체, 감정, 공동체 생활의 규칙에 대한 고려를 바탕으로 애정관계 생활에 대한 교육이 계속되고, 이후 사춘기로 인한 변화를 고려해 자신들이 겪고 있는 변화를 명확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발전시킨다. 이 시기 성교육의 목표는 '자존감을 가지고 성장하고 자신의 은밀한 사생활을 보호'할 줄 알며, 성관계에 있어서 '상호 동의'의 중요성을 아는 것에 있다. 그밖에, 여러 형태의 가족(이성 부모 가정, 동성 부모 가정, 한부모 가정, 입양 가정, 아이 없는 가정 등)이 있음을 가르친다. 또한 소셜네트워크 (SNS)와 게임 플랫폼에서 마주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예방 교육도 진행한다.

'중학교'에서는 사춘기에 이르러 변화하는 신체에 대한 이해, 예술작품, 문학작품 등을 통해 성적 신체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관찰하고 분석한다. SNS상의 청소년 출판물을 분석하여 무엇이 사생활과 공적 생활인지, 무엇이 합법적인지 아닌지를 식별할 것을 제안한다. 섹슈얼리티를 규정하는 다양한 주제, 즉, 생식, 아이를 갖고자 하는 욕망, 즐거움, 사랑 등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고등학교'에서는 SNS 시대의 성생활을 중점적 테마로 다룬다.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연애 장면을 분석해 수줍음, 기쁨, 유혹, 정숙함, 두려움, 실패의 고통 등 연애 과정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감정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법률에 근거해 괴롭힘, 사이버 폭력, 성차별, 성폭력, 강간, 명예훼손 등이 어떻게 규정되는지에 대해 배우기도 한다.

프랑스 학교 성교육은 과거, 성관계로 인한 질병의 예방,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하기 위한 피임 교육에 국한되어 있던 데서 보다 정밀하게 진화한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까지만 보면 딱히 어디에 논란의 실마리가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론과 실천 사이엔 적지 않은 괴리가 있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연합뉴스
 
"어떤 아이들에겐 제도적 폭력이 될 수 있다"

2001년 프랑스 공교육의 부실화를 지적하며 설립돼, 기초실력 향상 제고에 주력해왔던 학부모·교원단체인 '교육 SOS'(SOS Éducation, 회원 수 10만여 명)가 마크롱 정부의 성교육에 제동을 걸고 나선 단체 중 하나다. 이들은 최근 프랑스 공교육의 질적 수준이 (PISA에서의 낮은 평가에 근거) 떨어지고 있음을 지적함과 동시에, 마크롱 정부가 과도하게 성교육에 매달리고 현실을 비판하며, 특히 12세 이하 아이들에 대한 성교육 반대 운동에 나섰다.

교육 SOS는 거의 매일 학교 성교육이 초래하는 문제들을 성토하는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증언이 접수되고 있다며 학교 성교육이 아이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건강한 성관념을 심어주기 보다 혼란과 무거운 트라우마를 안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음은 그들 단체가 공개한 몇 가지 사례다.
 
"여자는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 남자의 **를 *으로 * 수 있다." "반대로 남자는 여성의 *을 ** 수 있다." "항문을 통해서도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 - 10세 아동 대상 성교육, 간호사가 설명한 내용

이 수업을 들은 아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충격을 받았고 그 자리에서 울거나 귀를 막기도 했다. 수업 내용을 전해 들은 학부모 가운데 일부가 교장을 만나 수업 내용이 아이들 연령에 비해 부적절했다는 의견을 전했지만, 학교는 그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고, 해당 간호사는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같은 내용의 수업을 다른 교실에서 진행했다.

"(여성과 남성의 나체 그림을 보여주며) 사춘기를 맞아 신체가 성숙하게 되면, 여성의 질에선 매달 붉은 피가 나오고, 남성은 정액이라 부르는 흰색 액체를 배출하게 된다. 남성의 정액은 여성과 성관계를 가질 때에 주로 배출되며 그것으로 여자는 아이를 갖게 되고, 남자가 그것을 계속 문지르면 부풀어 올라 정액이 배출되기도 한다." - 9세 아동 대상 성교육, 담임교사가 설명한 내용

교사는 아이들에게 사춘기, 정액, 수정, 성관계 등의 단어와 그에 부합하는 설명을 줄로 그어 연결시키도록 했다. 일부 아이들은 당황하거나 충격을 받아 교실 밖으로 나갔고 교실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했다. 일부 학부모들이 아이들 연령대에 비해 지나치게 적나라한 성교육이었음을 환기시켰으나, 해당 교사는 그나마 프로그램을 축소해 설명한 것이라고 했다.

- 보고서 일부 요약(일부 블라인드 처리-편집자)
 
유사한 성교육에 대한 경험을 가진 7세 자녀를 둔 지인은 학교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지만, 연령별로 섬세히 조율된 설계가 필요하다며, 고민을 토로하기도 한다.

교육 SOS는 정신과 전문의, 교육 전문가 등의 의견과 그들에게 접수되어 온 피해 사례들을 바탕으로, 정부가 초등학생들에게 해온 성교육의 폐해를 지적하는 200 페이지짜리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제도권 교육기관에서 성인의 성행위에 대한 구체적 현실을 아동에게 여과 없이 접하게 하는 것은 성생활과 거리가 먼 연령대의 아이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제도적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으로, 유치원 생은 물론 초등학교에서 이뤄지는 현행 성교육에 대해 반대한다.

모든 학부모들이 학교 성교육에 대해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좌파 성향의 학부모 단체 FCPE의 대표는 "각 연령대에 적합한 성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학교에서의 성교육은 필수적"이라며, "학교는 아이들이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성경험과 관련하여 적절한 방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이해해야 하며, 그 역할을 학교가 맡는 건 자연스럽다"는 긍정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편, 2024년 2월 설문조사기관 IFOP이 가톨릭 계열의 학부모단체 '가족조합'(Syndicat de la Famille) 의뢰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63%의 프랑스 학부모들은 13세 이전의 아이들에게 섹슈얼리티에 관한 교육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여기며, 49%의 학부모들은 초등학교 1학년(만6세)에게 학교에서 성교육을 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63%의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학교에서 받는 성교육의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어떤 내용이 전해지고 있는지에 대해선, 아이들이 부모에게 문제를 토로할 때에만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학교 성교육은 책으로 된 교재 없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계보건기구의 유럽 성교육 가이드라인

프랑스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성교육 방침은 마크롱 정부의 독단적 판단 결과는 아니다. 이는 교사용 가이드북에서 밝히고 있듯,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따른 결과다. WHO는 2010년 발간한 '유럽 성교육 가이드라인'을 통해 0세부터 19세에 이르기까지 제도 교육이 제공할 수 있는 성교육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자신의 몸을 만지는 것과 관련된 즐거움과 만족감, 유아기 자위행위, 자신의 신체와 성기에 대한 발견, 신체 접촉을 통한 즐거움은 모든 사람의 정상적인 삶의 일부이며 이러한 신체 접촉은 사랑과 애정의 표현으로 행해진다. 따라서 0세에서 4세에 이르는 아이들이 예를 들어 병원 놀이를 하면서,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몸에서 느끼는 유쾌하거나 불쾌한 감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의 필요, 욕구 및 한계를 표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 0~4세 아이들에게 WHO가 제시하는 성교육 가이드라인
 
세계보건기구가 발간한 유럽 아동 청소년 대상 '성교육 가이드라인'세계보건기구
 
이에 따라 벨기에는 유럽 국가 중 가장 먼저 2012년부터 5~18세 아이들에게 '애정과 성생활 교육'(EVRAS)을 실시해 왔고, 작년에 관련 법률까지 통과시켰다. 그러나, Evras 교육을 의무교육화 하는 해당 법령이 채택된 후, 8개의 학교가 반대 진영 학부모들로 인해 파손되거나 방화가 저질러지는 극렬한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를 의식한 듯, 프랑스 정부는 언론과 방송 매체를 통해 EVRAS 교육이 프랑스에 상륙하지 않았으며, 수업내용도 그들과 다를 것임을 국민들에게 설득하려 애쓰는 한편, 반대 진영을 일부 극우 성향의 동성애/트랜스젠더 혐오 집단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양한 성행위 동작까지 가르치는 어린이 성교육, 특히 이러한 교육을 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정부 결정에 우려를 표하는 학부모가 모두 극우 성향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공산당 소속의 동성애자 시장이 10년째 집권하고 있는 파리 외곽 도시에 살고 있는 필자의 경우, 대부분이 좌파인 이곳 학부모들 역시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음을 충분히 목격할 수 있었다. 

WHO의 성교육 가이드라인에 따라 유럽 여러 나라에서 차례대로 성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한국사회도 조만간 비슷한 고민에 봉착하게 되는 순간이 올지 모르겠다. 무지 속에 방치하는 것보다 정면으로 마주하고 제대로 아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적절한 수위, 현명한 접근법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아보인다. 우리 사회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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