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프랑스 전역 200여개 도시에서 극우세력의 저지와 신인민전선(Nouvequ Front Populaire)약진을 응원하는 집회가 열렸다. 사진은 17일 파리 몽트뢰유 집회 장면.
AFP/연합뉴스
국회 해산 후, 다음 조기 총선을 위한 후보 등록에 주어진 시간은 단 일주일. 어쩌면 바로 그 점이 마크롱의 노림수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추측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사분오열 해온 좌파 정당들이 연합 정당을 꾸릴 수도, 국민을 설득할 만한 공약에 합의할 수도 없을 것으로 마크롱은 예측한 것이다.
또다시 집권당과 극우정당이 결선투표에서 만날 것이고, 극우세력에 나라를 맡길 수 없는 국민들은 울며겨자먹기로 또다시 마크롱 정당에 표를 던질 것이니, 좀 더 안정적인 집권 기반을 얻을 수 있다는 게 마크롱의 계산일 것이다.
그러나 틀렸다. 간만에 두 자릿수의 지지(14%)를 회복하며 기사회생한 사회당을 중심으로 굴종하지 않는 프랑스당(LFI), 유럽 녹색당, 공산당, 반자본주의신당 등 12개의 범좌파 계열 정당들이 하나의 우산 아래 모였다. 이들은 16일 한자리에 모여 기자회견을 갖고, 그들의 공약을 발표했다.
1936년 범좌파 정당 연합이 인민전선(Front National)이란 이름으로 연합, 정권을 거머쥔 이후, 초유의 일이다. 그때의 역사적 승리를 재현하려는 듯, 이들은 신인민전선(Nouveau Front Populaire) 이라고 자신들의 이름을 명명했다. 지난 주말엔 이들의 출범을 지지하고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극우 집권을 막으려는 시민들의 대규모 집회가 전국에 걸쳐 펼쳐졌고, 프랑스 최대 노조 연합 CGT도 신인민전선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표하며 집회를 함께 가졌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도 신인민전선에 투표할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18일 발표된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 IFOP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33%를 지지율을 얻고 있는 국민연합이 선두를 달렸고, 그 뒤를 이제 막 출범한 좌파연합 '신인민전선'이 28%로 추격하고 있었다. 집권당에 대한 지지는 18%에 머물렀다.
몰락 자초한 마크롱
스스로 밝혔듯, 마크롱의 추락과 극우 정당 부상의 중심에는 유럽연합이 있다. 프랑스 국민들은 2005년 유럽헌법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NON'(아니오)에 투표하면서(부결시켰다), 이미 공식적으로 유럽연합이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적 유럽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한 바 있다.
수세기 동안 주구장창 전쟁을 거듭해 왔던 유럽의 작은 나라들이 국경을 지우고 서로 화합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한편, 달러화에 대적할 수 있는 강력한 통화를 구축해서 미국 중심의 패권에 맞선다는 것이 유럽연합에 대한 이상적 구상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론 국경도, 국익도, 자국의 정체성 보호도 져버리고, 다국적 기업들의 이권 앞에 모든 것을 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갔다.
그러한 설계도가 고스란히 유럽연합의 헌법 속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를 강제하는 유럽연합에 반대한 국민투표의 결과는 없었던 일처럼 치부되고, 유럽연합의 플랜은 착착 진행되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에, 화이자사와 관련한 부정의 정황이 포착되어 현재 벨기에에서 형사 재판(2024.5.17 첫 공판 시작)[1]을 받고 있는 유럽연합집행위 위원장 폰데어라이엔을 비롯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유럽연합집행위의 권력 남용, 비민주적인 시스템도 오랜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유럽연합 체제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모순을 향해 극우는 물론 극좌 진영도 줄곧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왔다. 하지만 유럽연합 체제에 대한 비판은 줄곧 사회적 금기처럼 언론에서 다뤄졌고, 유럽연합 탈퇴를 말하는 것은 반사회적 행위처럼 치부되어 왔다.
마크롱 역시 우리가 가야 할 엘도라도가 거기에 있다는 듯, 유럽연합의 모든 요구에 충직한 신하처럼 굴어왔다. 로스차일드 은행원 출신인 마크롱은 처음부터 초국적 자본가들의 힘으로 정가에 들어와 권력을 얻었고, 이후 그가 보인 행보들은 여전히 그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기에 충분했다.
2018~2019년 노란 조끼의 봉기(유류세 인상 철회 등을 요구한)를 무자비한 폭력으로 진압하는 모습, 불법 체류자 단속을 강화하고, 국경 통제를 강화하는 등의 강도 높은 반이민자 정책은 프랑스 국민들이 걱정하던 극우 정당의 행보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평가도 받게 했다. 또한 온 나라가 반대하던 연금법 개정을 우격다짐으로 통과시키면서, 민심이반은 돌이킬 수 없어졌다.
극우 부상의 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