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K한국교직원공제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 2차 탐방단은 지난 9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동안 상하이, 자싱, 항저우, 난징 등을 방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피난처, 윤봉길 의사 의거현장, 난징대학살기념관, 리지샹위안소 등을 돌아봤다. 사진은 '난징대학살 기념관' 내부에 있는 전시물로, 학살된 30만명을 명확하게 숫자로 보여주는 조형물이다. 이 조형물이 있는 대형홀 벽에는 수도 없이 많은 당시 난징 주민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오마이뉴스 장재완
항저우를 출발해 난징으로 가는 4시간여. 생각 깊은 길잡이가 준비한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 전문을 어린 학생들의 목소리로 돌아가며 낭독하는 걸 듣는다. 선생의 소원은 얼마나 제대로 실현되었을까, 또 나는 어떤 역할을 해 왔을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역시 선생을 뵐 낯이 없다. 앞으로는 좀 다를까? 선생의 정신과 소원이 이들의 가슴과 혈관으로 뜨겁게 이어지기를 소원한다.
첫 일정으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3기'가 훈련했다는 선사묘를 찾았다. 1932년 의열단 단장 김원봉 선생이 독립운동 군사 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중국 국민당 장개석의 지원을 받아 설립했다는 군사학교. 일본의 감시를 피해 각 기마다 교육을 받은 장소가 달랐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제3기가 훈련을 했다.
독립 운동가였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던 이육사 시인이 의열단원이었다는 것을 듣고 시와 빈틈없이 일치한 이육사 시인의 삶에 숙연해진다. 탐방에 참가한 두 사람의 목소리로 이육사 시인의 시를 낭송하고, 만주 탈환과 조선 환국을 꿈꾸었던 임들의 염원을 생각하며 독립군가를 불렀다. 이곳을 먼저 찾은 이들이 남기고 간 마음들이 폐허 곳곳에 남아 발길을 돌리는 우리를 배웅한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난징(남경) 대학살 기념관. 1937년 상하이와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은 상하이에서 격렬한 저항에 부딪쳐 피해를 입자 그에 대한 보복으로 불과 6주만에 난징 시내의 민간인과 포로 30만 명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고 한다. 12초에 한 명씩 살해당했던 그 때의 참상을 기억하자는 의미로 기념관 벽 한 쪽에서는 12초에 한 방울씩 물방울이 떨어진다.
일본이 집단 학살을 자행했던 13곳 가운데, 하루만에 1만여 명이 살해당한 참혹한 자리에 지은 기념관이 바로 이 난징대학살 기념관이다. 일본의 만행을 뼛속 깊이 기억하고 고발하겠다는 의지의 표상일 것이다. <난징 대학살>이라는 책을 써서 세상에 일본의 만행을 고발한 중국계 미국인 작가 아이리스 장은 일본의 살해 위협에 시달리다 36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가해자의 후안무치가 이러하다. 지금까지도 사죄는커녕 자신들의 죄과를 인정조차 않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자신들이 인류에 기여했다 억지를 부리는 일본이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난징으로 옮긴 김구 선생이 뱃사공 주애보와 함께 '고물쟁이' 행세를 하며 잠시 머물러 살았다는 마을의 회청교 주변, 선생을 따라온 임시정부 요원들이 거주했을 것이라는 건물과 다리 위를 걸으며 임들을 추억하고, 부자묘의 야경에 잠시 몸을 부리다 숙소로 향했다. 김구 선생이 장개석과의 회담을 위해 묵었다는 중앙반점에서 마지막 밤을 묵게 되어 감개무량이다.
일행과 함께 로비며 식당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혹시나 선생이 이곳을 지나셨을까, 이 의자에 앉아계시진 않았을까, 장개석과의 회담을 앞두고 무슨 생각으로 밤을 보내셨을까 얘기를 나누고 사진에 담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이제 내일이면 탐방 일정을 끝내고 인천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11월 14일 일정의 마지막 날이 밝다
숙소를 떠나 아시아 최대 규모의 위안부 유적지 '리지샹 위안부 유적 진열관'을 찾았다. 건물 앞에 세운 동상 속 만삭의 여인은 박영심 할머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이 위안소 19번 방에서 3년 동안 온갖 만행을 겪어야만 했던 박영심 할머니가 2003년 이 곳을 찾아 현장 증언을 한 결과, 중국 정부에 의해 유적 진열관이 건립됐다.
일본이 패퇴하고 나서도 평생 동안 그 때의 상처로 눈물을 흘리다가 실명을 하고 눈을 뜰 수 없게 되었다는 어느 중국 할머니의 기구한 사연에 눈시울이 뜨겁다. 악마들에 의해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당한 그 절망을 무엇으로 보상하고 위로할 수 있을 것인가. 진정한 사죄를 요구하자 무역보복으로 맞서며 배상은 다 끝났다고 억지 부리는 일본, 자신의 조국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아니 어쩌면 다 알면서도 인정할 수가 없어 혐한으로 일관하는 무지한 일본 국민들을 보며 우리는 과연 역사 앞에서 당당한지 돌아볼 수밖에 없다. 기념관을 나서며 바라본 가을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높아서 더 슬프다.
이른 점심을 먹고 난징 공항에 도착했다. 3박 4일의 일정이 이렇게 마무리되는구나. 이륙이 늦어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내처 중경까지 가보았으면…' 생각하는데 탑승을 알린다. 아쉬움을 남긴 채 비행기에 올라 창 쪽에 자리를 잡았다. 어느덧 어둠에 잠겨가는 대한민국의 영해를 바라보다 인천이 가까워지자 점점이 차오르는 불빛에 마음이 울컥한다, 피와 눈물로 되찾아 주신 이 대한민국이 과연 임께서 꿈꾸시던 그 나라인지를 또 생각한다. '너는 이 나라의 주인 된 자로서 마땅히 잘 살고 있느냐?' 준엄한 목소리를 들은 듯하다.
대한민국의 주인으로서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 이 아픈 고민을 심어주려고,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이 뜻깊은 탐방 프로그램을 기획했나 보다. 여기까지 우리를 길잡이 하느라 애쓰신 한국교직원공제와 <오마이뉴스>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드린다, 몸도 벅차고 마음도 벅찼던 이 일정에서 생각하고 느낀 점들을 두고두고 곱씹으면서 이제부터는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살겠다는 다짐도 함께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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