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째 이 학교에서 기숙하는 루커스 베스턴(Lucas Bastin) 학생. 핸드볼 선수를 꿈꾸지만 동시에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단다.
오연호
한국에서 온 기자와 교장이 이야기 나누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남학생 루커스 베스턴(Lucas Bastin)군은 10개월째 이 학교에 기숙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핸드볼을 좋아해서"왔다고 합니다. 가능하면 프로선수로도 성장하고 싶다는군요.
- 가장 좋은 점은?
"좋아하는 것이 비슷한 다른 학생들과 매일 같이 어울릴 수 있어 정말 좋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비슷하니까 훨씬 빨리 친해지더라고요."
- 방에서 3명이 함께 지내니까 다툴 때도 있을텐데요.
"뭐 그럴 때도 가끔 있지만 함께 사는 법을 매우 빨리 배웠습니다. 작은 가족 같아 재미있을 때가 많아요."
- 10개월 동안 여기 있었는데, 스스로 생각하기에 좀 성장한 거 같나요?
"예, 많이 성장한 거 같아요."
- 가장 어려웠던 점은?
"내 껍데기를 벗고 나오는 거였어요. 처음엔 매우 수줍었습니다. 다른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두려웠지요. 그러나 곧 어울렸어요. 선생님들이 수업이나 활동에서 우리가 잘 어울리도록 다양하게 도와줬습니다."
이 학생과 교장선생님과 함께 학교를 한바퀴 돌아보았습니다. 식당은 깨끗한 편인데 전문 영양사들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조를 짜서 조리를 돕는다고 하네요. 기타, 드럼 등 악기가 마련된 공연장도 잘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1년에 서너번 학부모를 초청해서 축제도 한다고 합니다.
건물 1층 한켠에는 컴퓨터 20여 대가 놓인 교실이 있었는데 대여섯명의 학생들이 우리가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역시나 게임중이었습니다. 한국에서처럼 여기 학생들도 인터넷게임에 중독된 경우가 많을까요? 루커스 베스턴 학생은 고개를 젓습니다.
"저도 인터넷게임을 합니다. 그러나 중독되진 않습니다. 밖에 나가서 핸드볼 게임하는 것을 더 좋아하니까요."
핸드볼을 하면서 심리학을 공부한다?
학교를 둘러보고 헤어지기 직전 베스턴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 그래서 '인생계획'은 잘 짜고 있나요?
"여기를 졸업하면 고등학교에 진학할 겁니다. 그후에 코펜하겐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할 예정입니다."
궁금해졌습니다. 핸드볼을 좋아하는 그가, 핸드볼 프로선수를 꿈꾸는 그가 왜 대학에서 하필 심리학을 공부한다고 할까요?
"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좋아요.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파악해서 그를 도와주고 싶습니다."
-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과 핸드볼 선수가 되고자 노력하는 것, 둘 다 잘 할 수 있다고 보나요?
"그렇습니다. 두 개는 아주 관련성이 높으니까요. 제겐 핸드볼, 축구 게임을 하는 것이 곧 심리학 공부이기도 합니다. 어떤 한 선수가 운동장에서 플레이를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고,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지 않나요?"
이 10학년 학생 참 대견하지요? 한국 나이로 50세인 저는 우리 교회팀에서 매주 축구를 하지만 경기를 하면서 심리학을 공부해볼 생각은 못했습니다(덴마크에서는 프로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학생을 교육할 때 반드시 일반공부도 함께 시킨다고 합니다. 스포츠 세계에서 프로선수로 성공할 가능성은 1%미만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향하되 그것이 안 되어도 자존감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한다는군요).
이 학생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중3 졸업생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요?
'아이야,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단다. 너는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이냐? 고등학교 들어가는 것 급하지 않다. 그 답을 찾아서 1년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아라.'
이것이 한 부모의 결단이 아니라 사회 문화로, 국가 시스템으로 가능한 곳이 행복지수 1위의 나라 덴마크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애프터 스쿨'이 필요하다

▲더불어 사는 법 배운다 덴마크에는 250여 애프터스쿨이 있는데 대부분 기숙형이다. 이 애프터스쿨에서는 학생 3명이 한 방을 쓰고 있다.
오연호
바슬로브 교장은 말합니다. 애프터 스쿨은 고등학교 입학 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요.
"덴마크는 그런 인생플랜 학교가 10학년 때 말고도 또 있습니다. 대학 들어가기 전에도 있습니다. 저는 대학 들어가기 전에 20세에서 25세까지의 청년들이 인생을 설계하는 기숙학교에 1년간 다녔습니다. 그리고 덴마크에는 직장을 그만두고 2모작, 3모작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성인 공립학교도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덴마크인들은 '나의 인생설계'를 그야말로 '평생교육'을 통해 짜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다음 해에 대학에 가는 비율이 20%정도로 낮은 것도 '여유를 가지고 나의 인생 설계'를 하기 때문입니다. 직장을 다니다가 실직해도 바로 다음달 다른 직장을 찾아나서지 않아도 되는 것은 기존 월급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실업수당이 '사실상 4년'간 지급되고 정부가 '당신이 다음 인생을 위해 선택하고 싶은 직업이 뭐냐'를 상담한 후 그에 맞는 무상교육을 해주고 나아가 직장을 알선해 주기 때문입니다.
덴마크가 부럽지요? 좋은 사회, 좋은 국가가 어떻게 나의 행복에 영향을 주는지를 덴마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 행복지수 41위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코펜하겐에서 서울로 10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서 저는 두 가지를 메모하고 있었습니다. 1) 더 좋은 사회, 더 좋은 국가를 만들기 위해 '각자 위치에서 더불어 함께' 최선을 다하자 2) 지금의 사회, 지금의 국가가 내 인생의 업그레이드를 도와주지 못할 형편이라면 나 개인부터, 우리 회사부터 선도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서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그 시작은 자신에게 이걸 묻는 것이겠지요.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그걸 찾기 위해 지금 내게 필요한 '애프터 스쿨'은 무엇인가?
▲오연호 대표 기자가 연재했던 <'행복사회의 리더십'-'행복지수 1위 덴마크 비결을 찾아서'>가 2014년 9월1일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마이북)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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