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5.02 18:44최종 업데이트 19.06.10 17:01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행복사회는 무엇으로 가능한가? 그 답을 찾아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가 행복지수 1위의 나라 덴마크를 심층취재했습니다.  이 연재는 2014년 9월 초 단행본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마이북)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공부를 못한 학생도 칭찬을 받습니다. 산만한 학생도 칭찬을 받습니다. 왕따요? 학교폭력이요? 전혀 없습니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있는 발뷰 초등학교의 마르그레테(62) 교장 선생님을 약 1시간 30분 동안 인터뷰하고 나서 기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행복지수 1위의 나라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인생은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 그 기반이 다져지는구나.



0학년(학습준비학년)부터 9학년(우리의 중학과정 포함)까지 6백여 명의 학생들이 다니는 이 공립초등학교는 오래된 공장을 개조한 것으로 매우 소박했다. 운동장도 없고 이렇다 할 조경도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어느 초등학교에서나 다 볼 수 있는, 큼지막한 교훈도 교문이나 건물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교사경력 16년, 교장경력 18년인 여성교장 마르그레테씨가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가를 설명할 때 이 학교는 아주 특별나게 다가왔다.



3~9년간 같은 담임, "교사는 부모"



초등학교 6년 내내 같은 반 학생들에 같은 담임선생님이라면? 게다가 초등학교에 이어 중학교 3년까지도 그것이 이어진다면?



우리에게는 상상이 잘 안 되는 '9년 내내 같은 학생, 같은 담임'이 덴마크에서는 오랜 전통이 되어 왔다. 요즘은 3~6년마다 교체되는 곳도 늘어나고 있지만 '한 번 만나면 수년간 계속 간다'는 시스템은 그대로이다. 한 반이 23명 정도인 발뷰 초등학교는 0학년부터 5학년까지, 그리고 6학년부터 9학년까지 한 번 같은 반이면 계속 같은 반이 된다. 담임선생님도 마찬가지다.



마르그레테 교장은 "저학년 때는 안정감을 주는 걸 중점으로 하고 고학년 때는 학문적인 도전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두 단계로 나눴고 거기에 맞게 담임선생님들도 배치하고 있다"고 했다.



수년간 같은 담임선생님인데 만약 어떤 학생이나 학부모가 그 담임선생님을 싫어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마르그레테 교장은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말한다.



"글쎄요, 1년에 1명 정도나 될까요? 그런 일이 있는 경우는 부모와 학생이 함께 담임선생님과 계속 대화를 나눠요. 교장으로서는 담임선생님과 학생 간에 무슨 오해가 있는지 살펴보지요. 대개의 경우 이 과정에서 오해가 풀리는데 정 안되면 다른 반으로 바꿔주기도 합니다."



6백여 명의 학생 중에 1년에 1명 정도만 담임선생님 교체를 원한다면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덴마크에서 선생님은 엄마 아빠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느낄 정도로 관심과 사랑을 가져주기 때문에 그만큼 학생과 학부모들이 만족을 해요. 이 학교에서 우리가 제일 중시하는 것은 담임선생님이 학생, 부모와 자주 대화를 해서 아이들 개개인의 특성과 장단점을 모두 파악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학생의 특이한 취향은 물론 가정배경까지 알게 되지요. 그걸 바탕으로 그 아이를 위한 학습방법을 만들어줍니다. 그렇게 학생 한 명 한 명을 위한 교육을 합니다. 그러니 아이들과 선생님이 아주 가깝고 친밀감이 있어서 정말 엄마 아빠처럼 느낍니다."



이렇게 선생님이 부모처럼 된다는 것은 수년간 같은 학생을 한 선생님이 담임하는 덴마크의 독특한 전통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학생의 특성을 잘 아는 만큼 '어떤 사랑'으로 그 학생을 대할지를 더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대부분의 학교가 그러하듯이, 이 학교도 1년에 두 차례씩 담임선생님이 학부모를 심층면담 한다.



"한 번 면담에 약 30분 정도 합니다. 이때 그 학생의 학문적 발전에 대한 이야기를 기본으로 하고 가정환경이나 특이사항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부모들은 자기 아이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니까 전원 다 이 미팅에 옵니다."



이 밖에도 부모들은 1년에 3번씩 각 반별로 모여서 담임선생님과 함께 그 반의 전체적인 학습 분위기 등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등수가 없다, 왕따가 없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있는 발뷰 공립초등학교. 0학년(학습준비학년)부터 9학년(우리의 중학과정 포함)까지 6백여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김민지
이 학교에서는 7학년까지 시험이 없다. 점수를 매기는 시험은 8학년에 가서야 있는데 그것도 등수는 매기지 않는다. 9학년에 치르는 졸업시험 때도 등수가 없다. 단지 학생들의 진로를 조언하는데 참고만 한다. 마르그레테 교장은 "경쟁보다는 협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덴마크의 전통적인 교육방법은 기본적으로 아이들끼리 경쟁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8학년부터 시험을 보지만 점수를 매겨도 등수는 내지 않습니다. 성적이 좋다고 상 주는 것도 없습니다. 물론 학생들끼리는 서로 점수를 알 수 있으니까 누가 잘하고 못하는지를 압니다. 그러나 담임선생님이나 학교가 공부 잘하는 학생을 공개적으로 추켜세워 주거나 특별히 대접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의 경쟁은 일어나지 않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애정은 학생들에게 골고루 나뉜다. 마르그레테 교장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더 잘하도록 개별적 칭찬을 해주지만, 공부를 못하는 애들도 칭찬을 해준다"고 했다. 공부 못하는 아이는 어떻게 칭찬을 해줄까?



"물론 공부를 못하는 아이에게 잘한다고 거짓말로 칭찬할 수는 없지요. 그런 아이들에게는 작은 목표를 세워줍니다. 만약 20개의 문제를 맞춰야 만점인데 어떤 아이가 절반밖에 못 맞추면, 다음번에는 1개만 더 맞춰도 그걸 아주 크게 칭찬해줍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점점 자신감을 갖도록 하지요."



골고루 칭찬의 효과는 상당히 크다고 한다.



"이렇게 분위기를 만드는 이유는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에게도 자신감과 안정감을 줘서 학교 오는 것을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산만한 학생도 칭찬받을 기회 준다



마르그레테 교장은 "주의력이 산만한 아이도 칭찬받을 기회를 준다"고 했다.



"어떤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잖아요. 그런 애들은 짧은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있게 하는 목표를 정해줘요. 너는 10분만 한 번 조용히 앉아 있어 봐라. 그래서 타이머를 써서 10분 동안 잘 앉아 있으면 아주 많은 칭찬을 해줘요."



그래도 선생님으로서 참기 힘든, 문제아라고 할만한 아이도 있을 터인데 그때는 어떻게 할까?



"그들도 이해해주고 포용해줘야지요. 그 아이들도 다닐 수 있는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덴마크의 교육은 학생들은 매우 다양하다, 그들을 다 포용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소수의 장난꾸러기, 문제아들도 용서를 해줍니다. 아이는 용서해주고 대신 부모를 탓합니다."



부모를 탓한다? 그 탓은 다름 아니라 대화였다.



"그런 경우 부모와 자주 아주 솔직한 대화를 나눕니다. 아이가 이런 문제가 있으니 이런 점은 힘을 합쳐서 고쳐보자고. 만약 부모가 협력할 형편이 아니면 학교가 더욱 그 아이를 위해 신경을 써줍니다. 부모가 챙겨주지 않은 아이를 학교에서도 챙겨주지 않으면 그 아이의 인생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아이일수록 학교가 오고 싶은 마음이 드는, 집에서는 불안했더라도 학교에 오면 마음이 놓이는 곳이 되어야지요."



마르그레테 교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덴마크의 선생님들은 참 인내심이 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덴마크에서는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일제히 선생님의 말씀을 조용히 듣고 있는 풍경은 보기 힘들다던데, 그러니까 우리 눈에는 문란하게 보일 정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수업을 한다는데 사실일까?



"그건 아닙니다(웃음). 여기에서도 당연히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조용하라고 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비돼요. 완전히 자유롭게 마음대로 하게는 하지 않아요. 하지만 조용히 하지 않는다고 선생님이 자기 권세를 부려서 애들을 처벌하는 것은 전혀 없어요. 보통 조용히 하라고 하면 다들 말을 듣는데, 소수가 그렇지 않으면 그냥 내버려둡니다. 그것까지 포용해야지요."



반장 없이 평등문화 속에서 자란다


 
발뷰 초등학교의 복도에서 만난 학생들. 덴마크의 아이들은 골고루 사랑을 받고, 평등한 문화 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자기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김민지
덴마크의 학생들은 이렇게 선생님으로부터도 골고루 사랑을 나눠 받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도 너와 나는 모두 소중하다는 평등문화 속에서 자란다. 마르그레테 교장은 "덴마크의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반장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말한다.



"반에서 학생들이 투표를 해서 대표를 뽑는 반장이 있냐고요? 없습니다. 반에서는 무슨 활동을 하든지 평등하게 하기 때문에 반장이 있을 필요가 없어요. 단지 반 아이들의 의사를 대변해서 학생회에 파견 나가는 아이는 있습니다. 이 학생은 내가 반을 이끌어간다든지, 내가 대장이라든지 하는 생각이 전혀 없어요. 단지 우리 반 아이들의 의견을 대변한다는 정도이지요."



그렇다면 이른바 왕따 문제도 없는 것일까?



"왕따 문제는 거의 없습니다. 사실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교육시키는 게 '어떻게 함께 잘 놀 것인가'입니다.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 어떻게 같이 놀아야 하는지를 미리 교육합니다. 한두 번 소외당한 것을 가지고 왕따라고 크게 피해의식을 가질 수 있으니까 이런 교육도 합니다. '놀다 보면 이런 애도 있고 저런 애도 있을 수 있다. 사회생활도 마찬가지다. 친구들 사이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모두가 같은 정도로 다 사랑할 수는 없다.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마르그레테 교장은 "그런 교육이 이뤄지기 때문에 왕따 등 학생들 간의 문제로 자살한다거나 폭력이 발생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 학교만이 아니라 덴마크 전체적으로 볼 때 학교에서 주는 스트레스로 아이들이 자살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극소수가 정신병을 앓고 있다든지 하기 때문에 자살시도 같은 것을 할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매우 드물지요. 학교 안에서의 폭력도 전혀 없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서로 위하는 교육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없지요."



학생들 스스로 선택하게 도와준다



덴마크의 아이들은 이렇게 골고루 사랑을 받고, 평등한 문화 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자기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미래를 선택해간다.



마르그레테 교장은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고민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7학년부터는 진로담당 선생님과 면담을 할 수 있습니다. 진로담당 선생님은 그 분야에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일주일에 이틀씩 학교에 상주해서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을 상담해줍니다. 이때 학생은 자신의 장단점을 충분히 점검하고 사회에서 어떤 직업을 선택할지도 도움을 받습니다. 그래서 9학년 졸업할 때 직업학교로 갈 것인지 인문계 고등학교로 갈 것인지를 학생들이 정하는 거지요. 진로결정은 전적으로 학생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학교나 선생님은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아요. 단지 우리는 그 학생의 선택이 실패가 되지 않도록 도와줄 뿐이죠."



덴마크에는 10학년제라는 독특한 과정이 있다. 인생설계를 준비하는 학년이라고나 할까?



"상담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상담할 때는 학습수준만 체크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도도 점검합니다. (내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성숙도가 충분하지 않다고 보면 9학년을 졸업하고 바로 고등학교로 가도록 지도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에 가기 전에 1년간 10학년 과정을 거치도록 추천합니다. 10학년의 목표는 학습이 아니라 성숙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10학년을 보낼 것인가에도 선택지는 다양하다.



"10학년은 자기가 다니던 학교에서 계속 다녀도 되고, 별도로 10학년들을 위해 마련한, 1년간의 유료 기숙형 학교인 '에프터스쿨'에서 다녀도 됩니다. 물론 9학년 마치고 바로 고등학교로 직행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학생의 자유인데 덴마크에서는 상당수의 아이들이 10학년 과정을 거칩니다."



학생도 학교이사회에 정식 멤버로 참여


 
덴마크 코펜하겐 시청 근처의 광장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거리공연을 보며 주말을 즐기고 있다. 김민지
덴마크의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민주적 참여에 대한 훈련을 한다. 마르그레테 교장은 학생회 활동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학생회는 각 반에서 1명씩 파견해서 구성되는데 활동이 매우 활발합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데 여기에서 민주주의적 참여에 대한 훈련을 하는 거지요. 최근에는 학생회에서 제안해서 학생들의 의자를 전부 새것으로 교체했어요. 학생회에서는 학교행정의 최고 결정기관인 학교이사회에 두 명의 학생대표를 파견합니다. 누구를 파견할지는 자기들끼리 논의해서 결정하지요."



학생이 학교이사회의 정식 멤버가 된다? 이 공립학교의 이사회는 모두 11명인데 학부모가 7명이고 교직원 2명, 학생 2명이다. 이 이사회를 통해 교장의 교육방안을 승인하기도 하고 새로운 제안을 하기도 한다. 학부모가 이사회의 과반을 차지한 것도 이채롭지만 학생이 이사회에 포함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르그라테 교장과 인터뷰를 마치고 나와서 다시 한번 학교를 둘러보았다. 기사에 써먹으려고 특별한 시설이 있나 아무리 다시 살펴보아도 여전히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학교를 뒤로하고 걸으면서 인터뷰 내용을 곱씹어 보았다. 학생들에게 선생님의 애정을 골고루 나눠주는 학교, 그래서 학생 개개인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학교, 학생이 여유를 가지고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게 도와 하는 학교, 학생이 주인의식과 평등의식을 갖게 하는 학교. 덴마크 곳곳에서 이런 학교들이 행복지수 세계 1위의 나라를 만드는 덴마크 시민들을 배출해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학교의 다른 이름은 행복초등학교였다.


 
오연호 대표 기자가 연재했던 <'행복사회의 리더십'-'행복지수 1위 덴마크 비결을 찾아서'>가 2014년 9월1일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마이북)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됐다.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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