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라인 : 멈춰진 시간>의 한 장면. 아델라인은 벼락을 맞고 영원히 늙지 않게 됐다. 그러나 그건 축복이 아닌 저주였다.

<아델라인 : 멈춰진 시간>의 한 장면. 아델라인은 벼락을 맞고 영원히 늙지 않게 됐다. 그러나 그건 축복이 아닌 저주였다. ⓒ (주)쇼박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소설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절대 죽지 않는 남자 레몽 포스카의 이야기다. 그는 다스리던 도시가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부하가 가져온 불멸의 약을 삼키고 죽지 않게 된 인물. 소설은 이후 700년의 세월을 관통하며 그가 이룩하고 또 잃어버려야 했던 수많은 사람과 사건들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레몽은 특권처럼 생각했던 불멸의 운명이 저주임을 깨닫고 절망하지만, 영원한 삶으로부터 그를 구원할 죽음은 언제나 그를 외면한다. 죽지 않음으로 영원하고 영원하므로 모든 것이 하찮게 되어버리는 역설. 소설은 무한한 삶이기에 어느 것도 가치가 없게 느끼는 레몽과 그를 만나 자신의 짧고 하찮은 삶에 절망하는 레진의 모습을 보여주며 인간은 과연 어디서 가치를 찾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2013년 겨울 개봉한 리처드 커티스의 <어바웃 타임>은 또 어떤가? 벽장에 들어가 두 손을 꼭 쥐기만 하면 자신이 원하는 과거 어느 곳으로든 시간 여행이 가능한 주인공을 등장시킨 골 때리는 영화가 아니던가. 로맨틱 코미디의 귀재라고까지 불리는 감독 리처드 커티스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란 설정을 통해 도리어 일상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일깨우는 마술을 선보였더랬다.

마음만 먹으면 불가능한 게 없을 정도로 커다란 능력을 손에 넣은 주인공 팀이 영화의 끝에서 마침내 도달한 곳이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이었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어바웃 타임>의 교훈은 명백하다. 초월적 능력보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낫다는 것. 너무도 많이 쓰여 이제는 진부하게까지 여겨지는 시간 초월의 설정 가운데서 보통의 귀착지란 바로 일상의 행복을 재발견하는 것일 테다.

진부한 설정을 흥미롭게 풀어내다

 영화 <아델라인>은 남녀의 관계가 깊어지는 과정 자체에 초점을 맞춘 멜로물과 다르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마주해 주인공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가 초점이기 때문이다.

영화 <아델라인>은 남녀의 관계가 깊어지는 과정 자체에 초점을 맞춘 멜로물과 다르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마주해 주인공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가 초점이기 때문이다. ⓒ (주)쇼박스


지난 10월 개봉한 <아델라인 : 멈춰진 시간>은 바로 이 같은 생각에서 출발한 영화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주인공 아델라인은 <모든 인간은 죽는다>의 레몽이 그랬던 것처럼 불멸의 운명을 저주로 받아들이고, <어바웃 타임>의 팀이 그러했듯 일상을 회복하고서야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부제인 '멈춰진 시간'은 영화가 이야기하려는 게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늙지 않고 영원히 살아가게 된 아델라인에게 사고 이후의 삶은 멈춰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

안데르센 동화집에서나 나올 법한 구성의 영화는 자동차 사고로 시작해 역시 자동차 사고로 끝난다. 첫 사고 이후 벼락을 맞아 늙지 않게 된 그녀가 거의 80년에 이르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사고를 당하고 전기충격을 입기까지가 영화의 줄거리라 할 수 있다. 그 사이 아델라인은 늙지 않는 외모 탓에 정보기관의 추적을 받는 도망자 신세로 전락하고 10년 마다 신분과 지역을 바꾸는 떠돌이로 살아간다.

가족과 함께 살 수 없음은 물론 이렇다 할 친구도 없는 외로운 삶. 영화는 그녀의 외로움에서 출발해 그녀가 마침내 자신의 삶과 마주해 다시 시간의 흐름 속으로 들어오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수많은 동화와 같이 진정한 사랑을 통해, 그녀가 자신의 삶과 대면하며 이루어진다. 마치 <미녀와 야수>의 야수가 그러했던 것처럼.

영화는 일반적인 멜로물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다. 남녀의 관계가 깊어지는 과정 자체에 초점을 맞춘 멜로물과 달리 사랑이라는 감정과 마주해 주인공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가 초점이기 때문이다. 아델라인은 송년파티에서 엘리스라는 남성을 만나 이내 사랑에 빠지지만, 그의 집에 인사드리러 가서는 그의 아버지가 과거 자신이 깊이 사랑했던 윌리엄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영화가 그려내는 이들의 관계는 기묘하고 특별하다. 왜 아니겠는가. 윌리엄이 결혼해 아들을 낳고 다시 노년이 되기까지 그가 사랑했던 여인은 그때 모습 그대로니 말이다. 아버지는 아델라인을 여전히 사랑하지만, 아들인 엘리스 역시도 사랑하기에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못한다. 아델라인은 또 어떤가. 그토록 사랑했던 남자가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고 자신이 그의 아들과 다시 사랑에 빠지기까지 스스로는 스물아홉의 멈춰진 삶을 살고 있다는 게 절대 편치 않았을 것이다.

이쯤 되면 사랑으로부터 도피한 아델라인의 선택도 이해가 된다. 레몽이 그러했듯, 또 영화 <그녀>의 주인공이 그러했듯, 존재의 방식이 다른 개체는 마음껏 사랑할 수조차 없으니. 다분히 동화적이었던 영화는 그 결말에 이르러 아델라인에게 걸린 저주를 풀어주었지만, 존재의 방식이 다른 수많은 사람은 또 어떻게 사랑하고 사랑받을지 눈앞이 아득하다. 영원을 사는 여인만이 존재의 방식이 다른 건 아닐 테니.

<아델라인 : 멈춰진 시간> 포스터 영화 <아델라인>은 시간과 불멸,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얘기한다.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이지만, 이 영화에서 표현되는 사랑은 특별하다.

▲ <아델라인 : 멈춰진 시간> 포스터 영화 <아델라인>은 시간과 불멸,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얘기한다.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이지만, 이 영화에서 표현되는 사랑은 특별하다. ⓒ (주)쇼박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빅 이슈>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아델라인: 멈춰진 시간 (주)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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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적어봐야 알아듣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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