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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을 잊은 까망꼬망 무대 작업 현장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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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3일, 새벽 3시. 홍익대학교 조치원 캠퍼스 A동 시청각실은 망치 두들기는 소리로 요란하다. 열댓 명의 청년들은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을 헤치고 자기 몸보다 큰 판자와 망치를 든 채 시청각실 앞쪽으로 향한다. 허전하게 비어 있던 공간은 청년들의 손길이 닿자 환상의 연극 무대로 탈바꿈한다.

연극 공연을 위해 밤을 꼬박 새우며 작업을 하는 이들은 홍익대학교 극예술 연구회 <까망꼬망>. 공연 공동 연출을 맡은 정태영(26), 이윤식(26)은 긴장된 모습으로 25일 막이 오를 공연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일 모레가 저희가 한 학기 동안 준비한 연극 <도덕적 도둑>을 선보이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밤을 새며 무대 작업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윤식)

뚝딱뚝딱 망치 소리가 밤을 수놓는다. 제작비를 아끼려, 소품 하나하나를 직접 제작하고 만들어내는 이들은 마치 꿈의 공장 직원마냥 못 만드는 것이 없어 보인다. 연기 연습만 하기도 바쁜데 온갖 궂은 일을 맡아가며 연극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열정은 정말이지 대단해 보인다.

까망꼬망의 <도덕적 도둑>, 현 세태를 맵고 쓰게 풍자하다

청년들이 밤을 새우며 만들고자 하는 연극은 <도덕적 도둑>이란 작품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다리오 포의 동명 원작을 우리식으로 각색했다. 11월 25일부터 28일까지 공연된 이 작품을 통해 <까망꼬망>은 우리 사회의 세태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연습 중인 까망꼬망 극예술 연구회 젊은이들
 연습 중인 까망꼬망 극예술 연구회 젊은이들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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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덕적 인간 군상을 그린 이 작품에는 최연소 국회의원 권동섭(20), 그와 내연의 관계인 이혜인(21), 또 재벌 아들 진수창(20), 국회의원 권동섭의 아내지만 진수창과 내연의 관계인 이은희(20) 등 서로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인물들이 등장한다. 또 그들을 쫓는 형사 이호윤(21)으로 인해 무대는 시끌벅적하다.

<도덕적도둑>의 국회의원 권동섭, 극 중, 우스꽝스런 그의 모습은 마치 현실의 어느 정치인에 대한 풍자처럼 느껴진다.
 <도덕적도둑>의 국회의원 권동섭, 극 중, 우스꽝스런 그의 모습은 마치 현실의 어느 정치인에 대한 풍자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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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대의 중심에서 극을 이끄는 양심적 도둑 한경준(25)과 그의 철없는 아내 이수린이 있다. (등장 인물들의 이름은 이해하기 쉽게 배우들의 본명을 딴 것이 특징이다.)

연극을 보고 있으면 비도덕적인 우리 정치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익숙한 거짓말과 함께 "그건, 오해야"라는 대사를 반복하는 연극 속 국회의원 동섭의 모습은 현실 속 사안마다 사과를 반복하는 우리 정치의 어느 높으신 분을 연상하게 만든다.

이렇게 농도 짙은 '블랙 코미디' 연극에 도전하는 청년들의 모습에서는 긴장감이 역력하다. 남은 시간은 하루. 한 학기 동안 성심껏 준비해 왔지만 걱정과 두려움이 몰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24일 새벽, 리허설을 진행하는 배우들 표정에는 긴장감이 역력하다. 특히 극에서 2가지 역을 맡은 이수린과 권동섭의 표정은 더욱 상기되어 보였다. 큰 배역을 맡았기에 부담이 되는 모양이었다.

"원래 전 미술 디자인을 하려고 극예술 연구회에 들어왔는데 갑작스레 연기를 하게 됐어요. 배역도 크고 부모님이 오신다고 하는데 걱정이에요." (이수린)

"저는 이번에 두 번째 무대에 오르는 것인데, 여전히 많이 떨리네요." (권동섭)

이번 연극은 주인공인 도덕적 도둑 '한경준'과 형사 역의 '이호윤'을 뺀 출연자 5명이 모두 대학교 1학년 신입생들이다. 그렇기에 연출자의 고민은 더욱 컸다. 그래도 무대에 서는 선배 경준과 호윤이 있다는 것은 어린 후배들에게 위안이 되는 일이었다.

공연을 앞둔 까망꼬망 극예술연구회 젊은이들, 긴장된 모습이다.
 공연을 앞둔 까망꼬망 극예술연구회 젊은이들, 긴장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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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공연 하루 전이다. 모두 힘내자!"
"네, 알겠습니다."

서로 격려하는 따뜻한 울림이 연습 현장에서 터져 나온다. 남은 시간은 단 하루. 연습은 새벽 늦게까지 계속됐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청년들은 조급해하지 않고 차분히 연습을 이어갔다. 밤을 잊은 젊은이들의 열정이 뜨거웠다.

최고의 공연을 향해

공연 당일인 25일 수요일 오후 1시, 까망꼬망 청년들은 일찍부터 무대에 나와 마지막 리허설을 진행했다. 연기자들은 완벽하게 분장을 마치고, 그럴듯하게 구성된 무대에 올라 연기를 시작한다. 발성을 위해 저녁 식사를 하지 않은 상태라 배우들은 허기져 있지만 연기를 위해 그 고통쯤은 흔쾌히 감수해 낸다.

공연을 앞두고 무대 분장에 열중하는 젊은이들
 공연을 앞두고 무대 분장에 열중하는 젊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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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40분, "현재 저희 배우들은 저녁을 먹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음식물을 섭취하신다면 달려들지 모릅니다"라는 재치있는 말로 관객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 장민지(23)의 무대 인사와 함께 연극은 막이 올랐다. 뒤이어 '도덕적 도둑'의 주연, 한경준이 무대에 올라 연기를 시작하자 관객들은 호기심 어린 표정이다.

공연장에는 많은 학우들이 몰렸다. 더러는 친구, 또 더러는 아는 사람. 하지만 태반은 연극에 호기심을 갖고 관람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대학생들 공연임에도 연극에는 힘이 있고 그 연극의 힘을 믿는 관객들이 찾아와 연극을 지켜봤다. 그런 바람과 기대가 통했는지 연극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국회의원 역을 맡은 권동섭의 능글맞고 코믹한 연기에 관객석은 웃음 바다가 됐다. 또 그의 내연녀 역할을 맡은 혜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관객들은 뜨거운 호응으로 답했다.

막이 오른 까망꼬망의 연극 <도둑적 도둑>
 막이 오른 까망꼬망의 연극 <도둑적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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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망꼬망의 <도덕적도둑> 마지막날 공연 현장
 까망꼬망의 <도덕적도둑> 마지막날 공연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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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또 다른 도둑이 국회의원 집을 털러 오지만 다른 연기자들에 둘러싸여 "이건 오해라고" 외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극은 "평택에서의 전쟁 잘 봤지?" "언론을 잘만 이용하면 된다"는 몇 가지 시사적인, 그래서 굵직한 대사를 관객들 마음에 아로새긴 채 끝났다.

대학생의 시선으로 바라본, 현 세태에 대한 뜨거운 일갈이었다. 첫째 날 공연이 끝나자, 관객석에선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하지만 연출자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잘된 점보다 잘못된 점에 눈이 가는 것은 어쩌면 모든 연출자의 공통된 특징일지도 모른다. 극이 끝나고 잘못된 부분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오늘 아쉬운 부분이 왜 그렇게 많았니? 앞으로 좀 더 잘하자."

다음날 더 좋은 공연을 위한 처방전인 셈이다. 그런 처방을 달게 받은 연기자들은 3일 동안의 공연을 거치면서 한층 더 발전해 나갔다. 어느덧 어려웠던 부분의 연기도 능숙하게 해내는 실력파 연기자가 된 듯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루, 마지막 날 공연이었다.

환상적인 마지막 날 공연! 후회는 없다

▲ <도덕적 도둑> 연극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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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끝난 뒤에 큰 박수를 받고 있는 <까망고망>
 연극이 끝난 뒤에 큰 박수를 받고 있는 <까망고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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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 동안 연극만을 위해 달려온 연기자들에게 남은 것은, 마지막 날 공연이었다. 모든 공연이 다 중요하겠지만, 마지막 날 공연은 <까망꼬망> 연기자들에게는 더욱 특별했다. 왜냐하면 <까망꼬망> 극예술 연구회의 1기 대선배부터 연기자들의 가족들이 관람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연기자들 표정은 들떠 있었다. 28일, 토요일에 열린 마지막 날 공연에 평소보다 많은 관객들이 몰렸다는 점도 까망꼬망 젊은이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런 부푼 기대를 안고 연극은 진행됐고, 다행히 연기자들은 후회없는 연기로 기분 좋은 끝맺음을 할 수 있었다. 대선배들과 가족들, 그리고 관객들의 박수 세례 속에 까망꼬망 연기자와 스태프가 얻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한 연기자의 부모는 "대학생들의 연극이라고 해서 부족한 부분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각본도 규모가 있고 준비도 많이 했다. 아이의 젊은 꿈. 추억에 남을 공연이었다. 여기까지 온 게 헛되지 않았다"며 자랑스러워 했다. 

연출을 맡은 정태영(26)씨는 "졸업을 앞둔 4학년에 맡은 연출이기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함께 공동 연출을 맡은 동기가 있어 든든했고 믿고 따라와준 후배들이 있었기에 행복했다"며 연극을 마친 소감을 밝혔다. 

한 학기 동안 준비한 연극을 완벽하게 끝맺음한 <까망꼬망>. 이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과정이었다. 다음 학기 더 멋진 연극을 준비하겠다는 젊은이들의 열정이 빛나고 있었다.


태그:#까망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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