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티 베이비 영화스틸컷 브룩 쉴즈

▲ 프리티 베이비 영화스틸컷 브룩 쉴즈 ⓒ 파라마운트


80년대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던 외국여자배우 트로이카는 소피 마르소, 피비 케이츠, 브룩 쉴즈였다. 그녀들과 함께 시대를 공유했던 영화팬들이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여배우들이다. 이 배우들 중에 이미 소피 마르소, 피비 케이츠는 글로 소개를 했기 때문에 오늘은 마지막으로 브룩 쉴즈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브룩 쉴즈는 데뷔 때부터 유럽이나 북미에서 최고의 미인이란 호칭을 얻었다. 당시 그녀의 미모는 나이를 감안하면 다른 여배우들이 근접할 수 없을 만큼 성숙미를 뽐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나이에 걸맞지 않는 연기력까지 함께 보여주면서 많은 영화팬들에게 미래가 기대되는 여배우로 인정받게 되었다. 특히 그녀가 처음 영화평론가들에게 인정받은 영화 <프리티 베이비>는 앞으로 얼마나 더 큰 배우로 성장할 것인지 기대치를 한껏 높여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결국 예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가 가장 큰 인기를 얻었던 영화들 대부분이 10대 초반에서 20대 초반에 집중되어 있다.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로 승승장구 할 것 같은 그녀였지만 1983년 작 <사하라>를 끝으로 영화에서 그녀를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10대 때 보여준 뛰어난 연기력과 조각 같은 외모를 생각한다면 너무나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브룩 쉴즈는 1965년생이다. 이제 그녀도 소피 마르소, 피비 케이츠와 함께 40대에 들어선 여배우가 되었다. 하지만 다른 두 배우가 80년 이후에도 자신이 원하는 길에서 원만하게 살고 있는 반면, 브룩 쉴즈는 이혼과 재혼 그리고 거인병으로 알려진 말단비대증이 발병하면서 현재 예전의 외모가 변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다른 배우들과 비교했을 때 그녀의 인생은 굴곡이 심했다고 할 수 있다.

한때 세계를 대표했던 전형적인 서구 미인 브룩 쉴즈가 출연한 대표작을 중심으로 그녀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이야기 해보자.

브룩 쉴즈, 세계적인 미인으로 공인받게 한 영화 <프리티 베이비>


프리티 베이비 영화스틸컷 브룩 쉴즈

▲ 프리티 베이비 영화스틸컷 브룩 쉴즈 ⓒ 파라마운트


브룩 쉴즈가 처음 영화평론가 및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작품은 그녀가 12살 때 출연했던 <프리티 베이비>를 통해서였다. 이 작품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거장 루이 말이 연출을 맡아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프리티 베이비>에는 브룩 쉴즈 뿐만 아니라 여전히 현역에서 활동 중인 연기파 배우 수잔 서랜드 또한 출연하고 있다.

이 작품은 당시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킨 영화다. 가장 큰 이유는 브룩 쉴즈가 12살임에도 불구하고 섹스어필한 창녀 바이올렛으로 열연했기 때문이다. 루이 말 감독은 어린 소녀를 창녀로 만들어 당시 비판과 비난에 시달렸다. 극단적인 비판 때문에 영화 흥행 역시 북미에서 578만불로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영화가 개봉된 후 어린 창녀 역으로 열연한 브룩 쉴즈는 단숨에 세계의 이목을 집중 시킨 여배우로 떠오르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영화가 사회적 큰 파문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개봉 후 생각보다 큰 관객들의 비난에 직면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오로지 브룩 쉴즈란 존재 때문이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마릴린 몬로 이후 대중들에게 큰 주목을 받는 서구형 미녀 배우가 없었던 할리우드 영화계에 그녀의 등장은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인 데뷔였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세계적인 미녀란 공식적인 칭호를 붙여준 영화이기도하다.

<프리티 베이비>에서 그녀는 도저히 12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육감적인 몸매와 미모를 뽐내고 있다. 특히 청순하면서도 섹스어필한 매력을 전해주는 그녀의 외모는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모든 단점을 다 덮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서 나이에 맞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었기에 앞으로 어떤 대배우로 성장할 것인지 많은 사람들에 관심을 받게 된다.

그녀가 연기한 바이올렛은 창녀로 생활하는 어머니 밑에서 살아왔다. 12살 때 400달러 경매에 붙여져 그녀의 처녀성은 없어진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런 모든 일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녀가 살아가기 위해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당연한 운명이라고 여겼던 그녀에게 어릴 적부터 그녀를 좋아한 베로그(키스 캐러딘)란 인물은 다른 구원의 손길이 된다. 

자신만의 영화 스타일을 고집한 세계적인 거장 루이 말 감독은 이 작품에서 어린 나이에 남들과 다른 길을 걸었던 그녀가 과연 다른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12살의 나이에 창녀가 된 바이올렛, 그리고 베로그와의 사랑, 다시 그녀의 어머니가 찾아와 하얀 소녀 옷을 입혀 자신이 다시 미성년자인 바이올렛을 키우기 위해 베로그를 찾아왔을 때, 과연 그녀가 소녀 옷을 입는다고 해서 평범한 소녀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우리 모두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프리티 베이비>는 작품성으로 따졌을 때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중에 최고라 할 수 있다. 지금 다시 봐도 그녀의 청순하면서도 섹스어필한 외모와 매력은 이 영화의 모든 비판을 잠재울 수 있을 만큼 대단하다. 브룩 쉴즈에 대해 알고 싶은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청춘스타 이미지를 확고히 해준 <블루 라군>과 <끝없는 사랑>


끝없는 사랑 영화스틸컷 브룩 쉴즈

▲ 끝없는 사랑 영화스틸컷 브룩 쉴즈 ⓒ 유니버셜 스튜디오


1977년 <프리티 베이비>를 통해 확실하게 자신을 알린 브룩 쉴즈. 이 작품만 놓고 본다면 그녀가 단지 단순한 청춘스타로 자신의 전성기를 마치게 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 않았다. 나이에 맞지 않는 연기력과 외모, 섹스어필한 매력까지 갖춘 여배우를 만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 앞으로 앞날이 창창해보였던 그녀였지만 결국 그녀가 가지고 있는 모든 매력을 다 보여주지 못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청춘스타로 가두고 만다.

그녀에게 이런 이미지를 심어준 대표적인 작품이 <블루 라군>(1980년)과 <끝없는 사랑>(1981년)이었다. 이 두 작품은 그녀에게 있어 청춘스타 이미지를 극대화시킨 영화인 동시에 그녀가 몰락하는 단초를 마련해준 작품이기도 하다. <블루 라군>과 <끝없는 사랑>은 그녀에게 행운과 불행을 함께 가져다 준 작품인 것이다.

<블루 라군>은 브룩 쉴즈에게 확실한 청춘스타 이미지를 가져다준 작품이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매력 중에 섹스어필과 미모에 중점을 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별 다른 내용이 없다. 난파된 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소년과 소녀가 무인도에서 성장하면서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내용이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영화완성도면에서 큰 점수를 줄 수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은 북미에서만 5885만 불 흥행수입을 기록하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런 단순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브룩 쉴즈가 가지고 있는 섹스어필한 육감적인 몸매와 미모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은 그녀에게 있어 이후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되는 길을 열어다 준 작품이다. 그녀가 청춘스타로 확고히 자리 잡게 해준 작품인 동시에 이후 나오는 작품마다 비슷한 선택을 해서 그녀에게 독약 같은 작품이 되었다.

<블루 라군>은 이후 피비 케이츠가 주연을 맡은 <파라다이스>가 그대로 내용을 차용해서 만들 정도로 한때 청춘물의 유행이 되기도 하였다.

<블루 라군>에서 브룩 쉴즈가 보여준 섹스어필한 매력은 <끝없는 사랑>에서도 이어진다. 이 작품 역시 특별한 내용 없이 오로지 그녀의 매력에만 기대고 있는 작품이다.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브룩 쉴즈 필모그래피 안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 하면 <블루 라군>과 <끝없는 사랑>을 들 수 있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작품적으로 뛰어나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다.

작품성에서 떨어질지 몰라도 <끝없는 사랑>은 브룩 쉴즈가 가진 청춘스타 이미지를 최대한 극대화 시킨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그녀가 보여준 육감적인 매력은 당시 어떤 청춘스타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왜 대중들이 그녀에게 그렇게 열광하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준 작품이다. 북미에서 흥행역시 3100만불을 넘기면서 괜찮은 성적을 남겼다.

<끝없는 사랑>은 브룩 쉴즈뿐만 아니라 영화 O.S.T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 영문 제목과 동일한 'endless rain'은 라이오넬 리치와 다이애나 로스가 함께 두엣곡으로 불러 당시 빌보드 차트 9주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에도 오랫동안 연인의 사랑을 표현하는 곡으로 사랑 받았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블루 라군>과 <끝없는 사랑>은 작품적으로 뛰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브룩 쉴즈가 가지고 있는 섹스어필한 매력과 미모에만 집중하면서 대중들이 쉽게 그녀가 가지고 있는 매력에 질리게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1977년 <프리티 베이비>에서 보여준 연기력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오로지 청춘스타 이미지만 고집하면서 결국 그녀가 결정적으로 몰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작품이란 점에서 상당히 아쉬움을 남겼다.

브룩 쉴즈 몰락을 알리다! <사하라>


사하라 영화스틸컷 브룩 쉴즈

▲ 사하라 영화스틸컷 브룩 쉴즈 ⓒ MGM


브룩 쉴즈 몰락은 너무도 빠른 시기에 왔다. 비슷한 이미지로 관객들에게 어필했던 <블루 라군>과 <끝없는 사랑>은 대중들이 그녀에게 빨리 식상하게 만든 요소가 되었다. <프리티 베이비>에서 보여준 나이에 맞지 않는 연기 때문에 뛰어난 연기파 배우로 성장할 것 같았던 그녀도 결국에는 자신에게 명성을 안겨다준 작품들 이미지 때문에 한순간에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고 해도 과장된 말이 아닐 것 같다.

브룩 쉴즈가 대중들에게 폭 넓게 사랑받았던 시간은 1980년부터 1983년까지였다. 이 3년 동안 그녀는 가지고 있는 모든 매력을 다 소진하고 말았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깝고 아쉬운 일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마릴린 몬로 뒤를 이을 배우로 인식되었던 그녀의 몰락은 충격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녀의 전성기가 이렇게 짧은 시간에 종언을 고하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녀가 80년대 영화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만든 문제작은 바로 1983년에 나온 B급 어드벤처 영화 <사하라>였다. 이 작품은 엉성한 이야기 전개와 구성 때문에 영화 개봉 전부터 엄청난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비판은 북미 흥행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총 2500만 불 제작비가 투입된 이 작품은 북미에서 단 140만 불 흥행수입을 거두며 말 그대로 흥행참패하고 만다.

더 이상 브룩 쉴즈가 가지고 있는 섹시어필 한 매력만으로 관객들에게 통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만 것이다. 이 작품 실패는 이후 엄청난 영향을 그녀에게 미쳤다. 작품 실패 후 TV용 영화와 비디오용 영화를 제외하고 그녀의 모습을 더 이상 80년대 영화에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다시 극장용 영화로 돌아온 것은 무려 7년 뒤인 <욕망의 거리>(1990년/한국에서 1992년 개봉)를 통해서였다. <사하라> 실패가 그녀에게 얼마나 큰 치명타로 작용하였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물론 <사하라> 실패 후 20대에 말단비대증이 발병하면서 그녀가 제대로 연기활동에만 전념할 수 없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사하라>는 80년대 대표 서구미인으로 알려진 여배우 브룩 쉴즈가 씁쓸하게 영화계에서 사라지게 만든 작품이다. 단 몇 년간 청춘스타 이미지만 고수한 채 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상당한 아쉬움을 남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마릴린 몬로 모두 오랫동안 자신의 전성기를 이어간 것과 비교해보면 아쉬움은 더 커진다.

분명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 시대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던 청춘스타 브룩 쉴즈는 영원히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2000년대 나온 그 어떤 청춘스타도 전 세계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확고히 한 배우는 거의 없었다. 브룩 쉴즈 이후 그녀보다 뛰어난 청춘스타는 없었다는 말과 비슷할 것이다. 그녀가 어떻게 그 시대를 지배했는지 보여준 단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프리티 베이비>에서 보여준 그녀의 이미지는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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