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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눈부신 성장,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유치와 WTO 가입 이후 자신감과 활력에 넘치는 중국인들의 모습. 이런 것들은 이젠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못한다. 들을 만큼 들었고, 놀랄 만큼 놀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만나는 고위 공직자들 가운데 젊은 인재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에는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지금까지 덩샤오핑이나 75세의 장쩌민 주석들로 인해 ‘노인공화국’의 이미지로 남아 있던 중국에 세대교체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으며, 광대한 대륙이 경제적 변모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젊은 대륙’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못해 두렵기까지 하다.


장자강시 장홍쿤 시장과의 만남

필자가 중국의 세대교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강소성 장자강(張家港) 시 장홍쿤(蔣宏坤) 시장(46세)과의 만남이었다. 90만 인구를 포용하고 있는 대도시의 시장이 예상보다 훨씬 젊은 사람이라는 데 놀란 것도 잠깐. 훤칠한 외모와 세련된 매너에, 시정을 소상하게 파악하고 부지런히 현장을 누비는 모습에서 최근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연경화(年輕化), 전문화, 지식화의 3대 원칙이 성공할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최근 400만 인구의 강소성 성도인 난징(南京) 시 상무부시장 겸 시당 부서기로 승진했다.

지난 연초에 처음 만나 친숙해진 김진길(金振吉) 엔벤지역 조선족 총서기(42세)도 비슷한 경우이다. 지린(吉林)대학 출신의 경제학 석사로서 소수민족에게 상당부분 자치권을 허용하는 정책에 따라 조선족의 차세대 리더로 떠오른 그는 40세에 엔지(延吉)시 시장이 되었고 최근 조선족 총서기로 영전하는 등 고속 승진가도를 달리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보시라이(薄熙來 51세) 랴오닝(遼寧)성 성장은 중국의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대표적인 신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42세의 나이로 인구 550만의 다롄(大連) 시장에 취임, 연평균 14%의 고속성장을 통해 다롄시를 전국에서 가장 쾌적한 공업도시로 탈바꿈시킨 공로를 인정 받아 금년에 성장으로 진급한 그는 미래의 총리감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또 다른 차세대 대표주자의 한 명으로 거론되는 인물이 리커창(李克强 46세) 허난(河南)성 성장이다. 베이징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후진타오(胡錦濤, 58세) 부주석에 이어 1992년 37세의 나이로 공산주의 청년단 제1서기에 임명된 그는 허난성 부성장을 거쳐 43세에 성장의 반열에 올랐다.

차오웨지(趙樂際 44세) 칭하오(靑海)성 성장이나 시진핑(習近平 48세) 푸젠(福建)성 성장도 주목해야 할 신세대 지도자로 손색이 없는 인물들이다.


공직사회 차세대 주자들 대부분 30,40대

공산당 내에서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핵심인물로 주목 받는 저우창(周强) 공산당청년단 제1서기는 39세에 불과하다. 학생운동가 출신으로 98년 전임자인 리커창에 이어 취임한 그는 무서운 추진력과 치밀한 기획력으로 지도부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중앙정부 내에서는 왕치산(王岐山 53세) 국무원 체제개혁판공실 주임(장관급), 치우쉐창(邱學强 44세) 최고인민검찰원 부검찰장, 판웨(潘岳 42세) 체제개혁판공실 부주임, 왕이(王毅 48세) 외교부 부장조리(차관급) 등이 세대교체를 선도하고 있다.

사실상 중앙정부 기구나 다름없는 언론이나 대학의 세대교체 움직임 역시 두드러진다. 30대 후반에 신화사 비서장, 부사장을 거친 차이밍차오(蔡明照 46세) 국무원 신문판공실 부주임과 허핑(何平 44세) 신화사 부사장 등은 언론분야에서 중국의 발전을 지원할 나팔수로 인정 받고 있으며 30대 초반에 미국에서 유전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타임’지에 의해 21세기의 세계를 이끌어갈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된 천장량(陳章良 40세) 베이징 대학교 부총장은 중국의 신세대 교육정책을 이끌어 갈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당과 정부의 고위직을 대상으로 시작된 세대교체의 바람은 중ㆍ하위직으로 급속하게 퍼져가고 있다. 지난 11월말 베이징시가 공개 선발한 부국장 및 시 산하 기업의 고급 관리자 30명의 편균 연령이 38.8세이며, 그 가운데 가장 젊은 간부는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中關村)의 서비스담당 처장으로 일하던 33세의 왕리쥔(王立軍)이라는 사실이 이러한 시대적 추세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 정부 인사정책의 뼈대는 5호4해(五湖四海)의 원칙이었다. 땅덩어리가 넓고 다민족으로 구성된 중국 정부가 각 지역, 모든 민족 출신의 인재를 고루 등용함으로써 통일국가를 원만하게 이끌고 가려는 데서 창안한 인사정책으로 청나라 강희 대제 시대에 확립되었고, 마오쩌둥 시대에 이르기까지 부동의 원칙으로 지켜져 왔다.

또한 공산당이 통치하는 신중국에서는 공산혁명에의 참여 여부와 혁명과정에서의 업적이 주요 보직 결정의 핵심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연공서열형 인사의 부작용이 확대되고 마침내 고급당원과 고위공무원 등 소위 ‘철밥통’들이 나라를 망친다는 비판이 뒤따르게 된 것이다.


덩샤오핑의 후진타오 임명 그후

그러나 개혁개방 정책의 추진을 위해서는 경제를 알고 전문지식을 겸비한 인재 등용이 불가피하며, 이를 위해 시대의 변화에 둔감하고 전문성이 결여된 기득권 계층이 퇴진해야 한다는 현실적 요구를 절감한 덩샤오핑은 연경화, 전문화, 지식화의 3대 원칙을 제시하고 이를 강력히 밀어붙였다.

덩샤오핑은 자신이 모든 공직에서 퇴임한 1992년 제14차 당대회에서 당시 49세이던 후진타오를 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파격적으로 임명함으로써 연경화 추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때부터 당ㆍ정ㆍ군의 각 분야에서 4∼50대의 신진 인사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장쩌민 주석 역시 94년부터 공무원 수를 30% 이상 대폭 감축하고, 공채를 통한 전문지식을 갖춘 젊은 인재들의 고위 공무원 발탁을 제도화하는 등 공무원제도에 대한 일대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는 공무원 집단이 국가 건설의 선봉대가 되기는커녕 낡은 사고방식에 얽매여 오히려 개혁과 성장의 발목을 잡는 현실적 모순을 해결하지 않으면 중국의 장래는 어둡다는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장 주석은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동의 하에 후진타오 부주석을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어 놓고, 내년 가을 열리는 제 16차 전인대에서 그를 국가주석으로 선출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예상대로 후진타오가 내년 가을 국가주석으로 취임할 경우 중국은 명실상부하게 ‘젊은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될 것이며, 이에 발맞추어 중국 정부 내의 주요 보직이 젊음과 고학력(석ㆍ박사학위 소지자), 그리고 전문성을 겸비한 인재들로 교체되는 경향은 더욱 가속화 될 것이다.


우리의 인재등용 현실은...

이처럼 개혁과 경제발전 추세에 발맞춘 과감한 세대교체는 이웃한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IMF 이후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시행해 왔다고 하지만 공무원, 그 중에서도 고급 공무원 사회만은 사실상 구조조정의 무풍지대로 온존하고 있으며 이것이 개혁의 대세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국민의 정부 들어 유능한 인재등용이라는 명분 하에 소위 ‘개방형 직제’라는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그나마도 대다수가 퇴직 공무원 내지 그 아류들로 메워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금 같아서는 관료집단의 조직이기주의는 그 어떤 권력이나 명분으로도 깨뜨리기 힘든 높고 굳센 장벽인 것 같다.

답답한 현실은 그뿐이 아니다. 개혁과 구조조정의 대세에 따라 교사의 정년이 62세로 낮춰진 것이 엊그제의 일인데, 그마저 표 이외에는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시 원상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음 대통령 선거가 불과 1년 후로 다가와 있지만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이 선거는 또 다시 60∼70대 노인들의 손바닥 잔치로 전락하게 될 것은 불 보듯 한 일이다.

현실적으로 관료이기주의의 굳센 장벽을 깨뜨릴 방법도 없고, 나이가 많다 하여 공직에서 물러나게 하거나, 선거에 나오지 못하게 할 방법도 없다. 또 그게 반드시 좋은 일이라는 확증도 없기는 하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홀로 눈부신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중국과, 시련과 고통의 나락 속으로 점차 깊숙히 빠져들어가는 우리 경제의 현실을 비교해 보라.

지금까지 중국을 이끌어온 노인 지도자들이 미래의 중국을 위해 사회 각 분야에서의 과감한 세대교체를 선도해 가는 모습은 참으로 부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비즈니스 때문에 자주 중국을 방문하여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됩니다. 제 생각은 단편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세계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홀로 고도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하나의 단서는 되리라 생각하며 종종 글을 올리고자 합니다. 관심있는 분들께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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