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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인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교주(校主) 박정희 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영남학원법인 정관 1장 1조)

'교주(校主) 박정희'

ⓒ오마이뉴스 이승욱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영남대학교(경북 경산시 대동 소재)를 '설립한' 인물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다. 지난 67년 박 전 대통령은 각각 47년, 50년 지역민의 힘으로 설립됐던 대구대와 청구대를 통합해 학교법인 영남학원과 영남대학교를 탄생시켰다.

영남대학교 설립 이후 영남학원은 영남병원(현 영남의료원) 개원에 이어 영남전문대학(현 영남이공대학) 등을 설립하며 거대 재단으로 성장하게 된다.

79년 박 전 대통령의 사망 이후 이듬해인 80년 4월 영남학원은 박 대통령의 장녀인 근혜(현 한나라당 국회의원) 씨가 '바통'을 이어받아 재단이사장으로 선임됐다.

하지만 '박근혜 체제'는 87년 영남대학교 교수협의회(교수협)가 발족하게 됨으로써 내리막으로 치닫게 된다. 당시 교수협이 재단이사들의 부정입학, 재단재산처분 문제 등을 폭로하는 등 부정비리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

구 재단의 비리로 결국 관선이사체제로

결국 88년 10월 영남대 사태가 국정감사의 도마에 오르게 되고 당시 '박 전 대통령과 일가가 영남학원에 출연금을 낸 사실이 없다'는 점이 알려지고 교수협을 비롯해 학생들의 더욱 강력한 반발을 사게 된다. 이 사태는 박근혜 씨가 재단이사장직을 사퇴하는 것과 재단이사들이 전원 사퇴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영남학원의 '관선이사 시대'는 이렇게 시작됐다.

관선이사 체제가 문을 연 지 약 13년이 지난 요즘 민선체제 출범을 위한 목소리가 빈번하게 제기되고 있다. 학원의 안정화와 능동적인 학교운영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 그 이유.

하지만 민선체제로의 전환 목소리를 틈타 '구 재단 복귀' 주장도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정관상의 '교주'가 아닌 실질적인 박정희 일가의 '재단 되찾기'가 시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구 비리재단의 복귀 움직임을 좌시할 수 없다"

ⓒ오마이뉴스 이승욱
29일 오전 10시 대구 영남대의료원 내 영남학원 법인사무실에서는 '영남학원소속 민주단체대표자협의회'(이하 영민협. 대표 윤병태)와 대구참여연대 등 지역시민사회단체가 기자회견을 가지고 △구 비리재단 복귀 저지 △정치적인 이사개편 반대 △민주적인 사립학교법 개정 등을 촉구했다.

영민협은 영남학원에 소속돼 있는 영남대학교 총학생회, 민주동문회, 보건의료노조 영남의료원지부, 대학강사노조 분회가 참여하고 있는 단체.

이들이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유는 영남학원에 파견된 관선이사의 임기가 오는 12월 30일로 마무리되고 새로운 이사진 선임이 다음달 초로 임박해 왔기 때문이다. 현재 영남학원에 파견돼 있는 이사진은 최재호 이사장(변호사)을 포함해 이상천 영남대 총장 등 7명이다. 이들 중 당연직인 3명의 이사를 제외하고 4명의 이사진이 교체된다.

문제는 교육부의 새로운 이사진 파견에 구 재단측 인사들이 배치될 것으로 보인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부터다. 특히 관련자들에 따르면 최근 구 재단측 인사인 Y재단 관계자가 이상천 영남대 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직접적인 언급이 나왔다고 전하고 있다.

영민협 윤병태 의장은 "최근 구 재단 인사가 두어 번 대학총장을 만나 '구 재단 측 인사를 이사로 곧 선임하게 될 것', '구 재단 복귀에 도움을 달라' 등의 이야기를 전한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또 윤 의장은 "88년 당시 학원민주화 운동을 통해 박근혜 이사가 영남학원에서 손을 떼겠다고 했지만 다시 그 일가를 중심으로 재단 복귀를 점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이사진의 교체시기를 틈타 구 비리재단 관계자들이 학원에 복귀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민협에서 주장하듯 실제 구 재단의 움직임은 있는 것인가.

일단 영민협에서 지목한 Y재단 아무개 사무국장은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이를 부인했다. 이 사무국장은 "재단 복귀 문제로 총장을 만난 일이 절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재단 복귀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이야기돼오고 있었고 최근에도 들었던 적이 있다"고 말해 사실상 구 재단 복귀 움직임을 인정했다. 또 "과거 정치적인 시류에 의해 박정희 대통령과 일가가 자리를 떠나야 했지만 다시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야 하지 않겠냐"면서 구 재단 복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영민협에서는 구 재단의 복귀 시나리오를 다음과 같이 파악하고 있다.

"일단 이번 관선이사 선임에 재단인사를 대거 포진시키고 재단이사장으로 신아무개(박정희 기념사업 관계자) 씨를 내세워 관선이사 체제에서 민선으로 전환시키려고 할 것이다. 관선이사 체제를 어느 정도 끌고 간 이후에 박 전대통령의 차녀인 박서영 씨를 구 재단의 이사장으로 하는 민선이사체제를 출범시킬 것으로 본다." 영민협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영민협이 구 재단의 복귀 움직임에 대해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점에 대해 영민협은 이날 발표한 기자회견문에서 "내년 지자체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 과거 영남학원을 사유화하려 했던 박근혜 씨의 정치적 행보와 관련하여 영남학원이 정치적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결국 학원 장악을 통해 지역의 정치적인 여론 형성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또한 구 재단의 복귀로 인해 학교가 사유화되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영민협측은 "학교는 개인이나 특정 세력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고 전제하고 "교육의 공공성 확보와 올바른 교육을 위해 당연히 공익화되어야 할 대학에서 오히려 근거 없는 연고권을 내세워 영남학원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구 재단의 작태에 분노를 억제할 길이 없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영남학원이 관리하고 있는 영남이공대학 전경ⓒ오마이뉴스 이승욱
또 영민협 윤병태 의장은 "구 재단측에서 영남학원(영남대의료원)이 지고 있는 빚 200억 원 중 100억 원을 우선 지원하고 5년 동안 1000억 원의 기부금을 내겠다면서 재단 복귀의 미끼를 던지고 있다"고 말하고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경제적인 논리에 의해 학원을 장악하겠다는 음모에 다름 아니다"고 주장했다.

전국보헙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 최근순 지부장은 "영남의료원의 경우 독립채산제로 분리돼 있다고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재단이사장의 관리하에 있기 때문에 누구를 재단이사장을 맞느냐가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만약 구 재단이 복귀하게 된다면 노조활동의 제약이 직접적으로 진행되고 정치적 성향 때문에 병원도 정치자금줄의 역할로 전락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현재로선 민선이사체제로의 전환에 대해서는 모두 수긍하고 있는 형편이다. 10여 년이 넘은 관선이사체제가 너무 오래 지속됐다는 점이 이유이다. 관선이사체제의 경우 과감한 사업과 추진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대학 구성원으로부터 비난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99년 사립학교법 개정이 구 재단의 복귀근거 마련

그래서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관선이사체제의 문제점에 대한 여론이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구 재단의 복귀를 수긍하는 여론은 높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지난 99년 사립학교법의 개정으로 인해 재단 복귀가 훨씬 수월해졌다는 점이 구 재단의 입지를 높여준 결과가 됐다.

현재 영남대 등은 전국에서 비리재단의 복귀로 학내분규가 발생하는 것처럼 분규로 이어질 것이라는 위기론이 팽배해지고 있다. 각종 비리 등으로 구 재단이 물러났던 시기에 겪었던 학내분규가 다시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이다.

영민협은 오늘(30일) 서울에서 교육인적자원부와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을 면담하고, 청와대, 여야를 방문하는 등 민주적이고 정치적 입김이 배제된 원칙적인 임시이사 파견, 사립학교법의 민주적인 개정을 요구할 계획이다.

다음은 영남대민주동문회 장세룡 회장(72학번)과의 인터뷰 요지

"학내 민주화 이룬 값진 성과 돈 때문에 넘길 수 없다"

- 구 재단의 복귀 움직임은 언제 알게 됐나?

ⓒ오마이뉴스 이승욱
"한 2년 전부터 그쪽(구 재단) 사람들이 캠프를 만들어 정치적인 힘을 이용해 재단에 복귀하겠다는 활동을 벌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던 것이 박서영 씨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이 최근 '이사 선임을 위해 로비를 일삼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 영남학원의 교주가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돼 있는데...

"사실 지역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대구대와 청구대를 통합되는 데는 정치적인 힘이 작용했다. 당시 삼선개헌을 앞둔 시점이라 박정희가 대통령직을 마치면 영남대로 올 것이라는 말도 많았다. 독재자의 말 한마디면 되지 않을 일이 있나."

- 관선이사체제에 대해서는 마무리돼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안다.

"관선이사체제는 조속히 탈피해야 한다. 획기적인 학교 운영에 제약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 권력자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재단에 복귀하는 것도 인정할 수 없는 일이다."

- 과거 박근혜 이사장이 있을 때 재단측이 물러난 이유는 무엇이었나?

"부정입학을 비롯해서 재산횡령 등 수없이 많은 비리들이 밝혀졌다. 당시 영남대 학생, 교수들에 엄청난 명예훼손을 그들이 저지른 것이 됐다. 그후 교수, 학생들을 포함해서 총파업을 벌이고 재단을 몰아내기 위해 투쟁을 벌였다. 당시만 해도 이 사안이 지역에서 큰 반향을 불러모았다. 그후 국정감사에까지 영남대 사태가 오르내리면서 구 재단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 지금 심정은?

"막상 학내 민주화를 이루어내기는 했었지만 학내 개혁은 별로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강력한 힘으로 비리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 그것이 사태를 다시 불거지게 한 것 같다. 하지만 영남대는 그나마 지역에서 학내 민주화를 최초로 이룬 모델이었다. 다시 그것이 무너지면 이것은 다른 학교로까지 옮겨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구 재단측에서 돈을 몇 푼 주고 재단 복귀를 하겠다고 하지만 우리의 값진 학내 민주화를 그렇게 돈으로 팔아버릴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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