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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가명. 26세) 씨는 설문지를 작성하는 내내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지만 짐짓 태연한 척하려 노력했다. 워낙 성격이 괄괄한 그는 평소처럼 큰목소리로 '이런 쓸데없는 조사는 또 뭐하러 한데?'라며 부러 짜증을 내보였다.

지난 5월 31일, K지역의 한 성매매 집결지에서 성희 씨를 비롯한 그 지역 여성들은 경찰들에 의해 설문조사를 받았다. 그 곳은 이름만 들어도 '아, 거기'라고 누구나 알 법한 오래된 성매매 집결 지역이다.

한 여성이 경찰청장에게 보낸 편지(부분)

이 날의 설문조사는 전에 비추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의례적인 것이었다. 성희 씨에 따르면, 이 지역 여성들 사이에서는 며칠 전부터 경찰들이 설문조사를 하러 나올 거라는 소문이 돌았고, 개중에 어떤 여성은 '다 불겠다'며 평소에 쌓였던 얘기들을 털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경찰이 조사 나올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던 업주는 여성들에게 '니네는 여기 온 지 꽤 오래 됐고, 빚도 없어. 월급은 한 달에 백만 원 받는 거다. 알았지?'라며 다짐을 받아두기도 했다.

설문 내용은 업소 내 빚, 폭력, 감금 등에 관한 사실이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들이 대부분이었다. 성희 씨가 한참 질문지를 작성하고 있는데 한 여자 경찰이 들어왔다. 그 여자 경찰은 성희 씨가 쓰고 있던 설문지 한켠에 '전화?'라고 써보였고, 성희 씨는 주변을 둘러본 뒤 '그렇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상대방도 알았다는 듯 고개짓을 하더니 다시 밖으로 나갔다. 여자 경찰은 그 지역 여성청소년계로 발령 받은 지 얼마 안 된 N반장이었고, 성희 씨는 바로 며칠 전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XX업소에서 감금된 채로 매춘을 강요받고 있다'는 등의 내용을 제보해 도움을 요청했던 터였다.

설문 조사를 한 지 삼 일이 지났을 때 경찰들이 다시 업소를 찾아와 더 조사할 게 있으니 성희 씨네 업소의 여성들을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긴장한 업주는 갑자기 수화기를 들더니 평소에 알고 지내던 경찰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 저것을 알아보는 눈치였다. 하지만 별 소득이 없었는지 이내 전화기를 내려 놓았다.

경찰서에 도착하니 성희 씨네 업소에서 온 네 명과 다른 업소에서 온 여성 네 명이 더 있었다. 다른 업소의 여성들도 설문 조사 과정에서 경찰들과 따로 얘기하고 싶다는 '은밀한 의사'를 밝혔고, 그 후 N반장은 이 여성들을 '조사'라는 명목으로 따로 불러낸 것이었다.

N반장은 여성들과 일대 일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 과정에서 성희 씨를 비롯한 여섯 명의 여성들이 '그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N반장은 '앞으로 어려운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여러분들이 정말로 확실하게 각오를 해야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하면서 여성들의 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그렇게 해서 성희 씨를 비롯한 여섯 명의 여성들은 경찰서에 남게 되었다. N반장은 그 날밤 여성들과 밤새워 이야기를 나눴다.

이 여성들이 업소에서 겪은 일들은 지난 해 9월, 매춘업소 내 화재로 다섯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군산 '감뚝지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늘 쇠창살이 있는 공간에 갇혀 지내야 했고, 하루도 쉴 수가 없었으며, 월급은 거의 받지 못했다. 월급이라며 달마다 십여만 원을 주었지만, 그 돈은 그 자리에서 다시 생활비 명목으로 걷혀졌다.

목욕탕을 갈 때도 지키는 사람이 있었으며, 친구와 수다떠는 일, 어딘가로 훌쩍 가고 싶은 마음조차도 함부로 가슴에 품을 수 없었다. 그 여성들 중 한 명은 '유일하게 하고 싶은 얘기 다할 수 있는 일기장마저도 화재 사건 이후에 문제가 될까 싶어 태워버렸다'고 말했다. 그 일기장 안에는 그 동안 업주에게 당했던 여러 번의 성폭행 기억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N반장은 그들에게 경찰들이 이용하는 숙직실에서 잘 수 있게 해주었다. 그 곳에서 여성들은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새벽이 되자, N반장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다시 오겠다며 집으로 갔다. 혹시 모르니 문을 꼭 잠그고 있으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침이 되자, 경찰서 앞에는 검은 승용차 몇 대와 낯익은 '삼촌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불안한 마음에 밤이 언제 지날지 막막하기만했던 성희 씨는 그 모습을 보자 더욱 가슴이 뛰었다. 자신이 그런 제보를 했고, 원하던 것처럼 그 곳을 빠져 나올 수 있게 되었지만 앞으로 어떤 일을 감당해야 할지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성단체를 찾아 서울로 향하기로 했다. N반장은 서울로 출발하기 전까지 첩보작전이라도 짜듯 밖의 동정을 살피며 차는 어떤 차를 이용하는 게 좋을지, 어떤 길을 이용하는 게 좋을지 꼼꼼하게 따져보는 눈치였다. 틈틈이 밖을 살피던 N반장은 괜찮겠다 싶었는지 '가자!'며 여성들을 차에 태웠다.

"그게 뭐죠? 톨게이트, 거기 지나는데 막 소리치고 싶었어요. 이제 자유다! 전날까지만 해도 진짜 무서웠거든요. 혹시 삼촌들이 문 따고 쳐들어오면 어쩌나, 우리가 차에 탔는데 나타나서 끄집어내면 어쩌나 싶었어요. 근데, 거기 딱 지나니까 진짜 실감이 났어요."

성희 씨는 그 때의 심정을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차에 타 있던 사람 누구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며칠 뒤, 여성들이 상담을 받았던 단체로 택배 꾸러미들이 배달되었다. 여성들이 급작스럽게 나오느라고 미처 챙기지 못했던 짐을 N반장이 업소로 직접 가서 찾아 보내준 것이었다. 한편 해당 업소의 업주들은 지난 6월초 윤락행위등방지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수감 중이며, 업소를 빠져 나온 여성들은 나름의 처지에 맞게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다.

그 때 일을 계기로 성매매 현장에서 벗어난 성희 씨는 '지금도 자다가 깨면 이게 꿈이 아닐까?'라면서 지금껏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함께 나온 또 다른 여성도 '혼자서 거리를 거닐 수 있고, 보고 싶은 사람에게 전화를 걸 수 있고, 맘놓고 일기장에 끄적여 볼 수 있는' 지금의 생활이 가슴 뛰도록 벅차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도망쳤던 여성들이 다시 끌려와 몽둥이 찜질로 대가를 치르는 것을 많이 보아왔기에 쉽사리 두려운 마음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그런 경우 당사자 여성은 오히려 더 큰 빚을 떠안아야만 했으니, 앞으로 이들이 감당해야 할 몫은 너무 혹독하다.

한 여성이 경찰청장에게 보낸 편지(부분)

하지만 자신과 동료들을 구해준 N반장에 대한 기억만큼은 쉽게 잊지 못했다. 그래서 성희 씨는 얼마 전, 자신의 사연을 적어 경찰청장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보냈다. 고마운 마음 한편으로, 자신들 못지 않게 앞으로 N반장이 겪어야 할 어려움이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여성 한 명은 N반장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N반장은 성희 씨가 염려한 것처럼 그 때의 일 때문에 업주들과 '어깨'들에게서 수시로 미행과 협박을 받고 있다. 흔히 다른 동료들이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가 건네는 흰 봉투를 받는 대신 다만 업무에 충실했던 까닭일까. 우리 사회에서 '인간에 대한 성의 있는 눈길'을 간직하며 현장을 뛰어다니는 일이 어느 때부터인가 이렇듯 만만치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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