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를 비판한 사설들 다 봤다. 나도 더 이상 언론에 굽신거리지 않고 할 말은 하겠다"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과 언론간의 '전쟁'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2월 6일 노장관이 해양수산부 기자들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언론과의 전쟁선포를 불사할 때가 됐다"고 발언한 것이 8일 언론에 보도된 후, 9일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등은 일제히 사설을 통해 노장관을 비판하고 나섰다.

사설들은 "망언" 등의 극단적 표현을 써가며 노장관을 비판했고 한 사설은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한다"(한국일보)고까지 주장했다.

관련기사
9일자 5개 중앙지 사설, 노장관과 '전쟁선포'

이런 언론의 대공세에 대해 노무현 장관은 어떻게 응전을 할까? 오마이뉴스는 9일 오전 8시10분부터 약 30분간 노 장관과 전화인터뷰를 가졌다. 노장관은 업무차 부산으로 내려가기 위해 김포공항 대합실에 머물고 있었다.

노장관은 이 인터뷰에서 "언론들이 나에게 이지메(일본말, 집단 괴롭힘)를 가하고 있다"면서 "이번 일로 언론의 압력을 받아 장관직에서 물러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장관은 또 현재의 거대신문사들이 조폭적 수준이라는 한겨레 정연주 논설주간의 규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정말 공감되는 말"이라면서 "내가 언론과의 전쟁불사라고 말한 것의 진의는 시민들이 그런 조폭적인 언론의 횡포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언론들의 눈치보기에 급급하면서 굽신거리며 살아오고 있다"면서 "나도 그런 것 때문에 모멸감을 느껴왔는데 할 말을 하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고 했다. 노장관은 이어 "나를 공격하는 언론들과 내 발언의 진의와 본질을 놓고 텔레비전 공개토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텔레비전 공개토론 하자

다음은 인터뷰에서 밝힌 노 장관의 '진의'와 심경을 거의 가감없이 그대로 옮긴 것이다.

- 오늘자(9일) 사설들이 일제히 노장관의 '언론과의 전쟁불사' 발언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는데, 그 사설들을 보았나.
"어제밤 가판 나왔을 때 보았다. 한마디로 이지메다. 그런 사설을 쓴 사람들과 내 발언의 진의를 놓고 텔레비전 공개토론을 하고 싶다. 내가 과연 못할 말을 했는지에 대해 국민들 앞에서 공개적인 토론을 당당하게 하자, 그렇게 이지메 하지 말고."

- 노장관 발언을 비판하는 사설들 가운데는 "장관직을 그만두라"는 주장도 있다.
"난 장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시민이고 한 사람의 정치인이다. 기자들과의 간담회 자리도 아니고 점심 먹으면서 사담하고 잡담하면서 기자들과 자유롭게 논쟁하는 자리였다. 그런 자리에서의 말을 그렇게 사설에서까지 문제삼는 것도 그렇지만 사퇴운운은 더 이상하다."

- 주요 신문들이 일제히 비슷한 사설을 실었는데, 서로 사전 교감이 있었다고 보나?
"그냥 그들의 생각이 일치하는 것 같다. 그 정도가 그들이 현재의 언론상황에 대해 인식하는 수준이고 그 일치가 그래서 문제다."

- 어제밤 가판에서 그런 사설을 보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을텐데.
"내가 한두번 당한 일인가? 그렇게 체념처럼 어쩔수 없다고 받아들였다. 우리에겐 언론이 일방적으로 몰아부칠 때 반론의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한다. 그 공간을 그들이 독점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내 발언에 대해 그들과 함께 당당히 공개토론을 하고 싶다는 말이다."


언론 눈치 보지 말고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

- 그 발언을 언론에서 문제삼은 이후 청와대에서는 어떤 말이 없었나?
"특별한 지적은 없었다. 나로서는 언론들이 거두절미하고 보도했기 때문에 내 진의를 이야기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 그날 기자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언론과의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는데, 그런 말을 한 것 자체는 맞는가?
"그 말은 했다. 그 말은 권력이 언론과 전쟁을 하라는 뜻이 아니고 개인 시민이나 정치인이 너무 언론에 굽신거리지 말고, 눈치보지 말고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는 말이었다. 거기서 전쟁이라는 말은 언론을 억압하거나 박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언론의 횡포로부터 자유를 찾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 오늘자 사설들은 한결같이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이" 어떻게 언론과의 전쟁 운운하느냐고 지적하고 있다.
"민주화운동을 했기 때문에 권력이 정의와 자유와 개인의 삶을 짓밟을 때 나는 권력과 맞서 싸웠다. 지금은 언론이 자기들 마음에 안드는 사람을 부당하게 짓밟고 힘 없는 사람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등 부당한 권력을 마구 휘두르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거기에 맞서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그런 안타까운 처지를 누구나 다 느끼고 있다. 지금은 정치권력보다 언론권력이 더 문제다. 시민들은 이에 맞서서 과감히 싸워야 한다."

-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들은 언론사 세무조사가 언론을 길들이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언론사 세무조사는 당연히 해야 한다. 세무조사를 통해 언론을 길들이려 하는 시도는 절대 반대한다. 그러나 언론이 기죽을 우려가 있다고 해서 세무조사를 면제해야 한다는 논리도 찬성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정도로 하면 된다. 언론은 언론대로 정부 봐주는 대가로 세무조사 면제 등의 특권을 누릴 생각을 하지 말고 정부도 세무조사 면제의 대가로 언론으로부터 덕볼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의 세무조사가 언론과 거래를 위한 조사라고는 보지 않는다."


조폭적 언론이라는 말에 정말 공감한다

- 한겨레 정연주 논설위원은 한겨레신문에 몇 달전 쓴 칼럼에 조선-중앙-동아의 사주횡포를 거론하면서 '조폭적 언론'이라고 표현해 언론계에서 회자된 적이 있다. 노장관이 '언론과의 전쟁 불사'를 말할때 범위를 좁혀 '조폭적 언론과의 전쟁불사'라는 표현을 썼으면 진의를 좀더 잘 전달했을 것이라고 어제 오마이뉴스의 한 기사가 지적하고 있다. 거대신문사들이 '조폭적'(조직폭력배적)이라는 정연주 논설위원의 성격규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정말 공감한다. 내가 '언론과의 전쟁불사' 발언을 할 때 잊어버리고 그 조폭적이라는 말을 안 했다. 공감한다 정말. 왜냐하면 언론이 사회의 보편적인 공론을 형성하지 않고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에게는 몰매를 내리치고 있지 않는가? 밉보인 사람들은 사석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중계하면서 망신을 주고 있다. 자기들에게 굽신거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언론의 맛을 보여준다. 그래서 많은 기업인과 정치인들이 언론 앞에서는 굽신거리기에 급급하고 돌아서서는 억울해 하면서 욕한다.

나도 그런 경우 때문에 대단히 모멸감을 느끼고 살아왔는데 이제 속말을 하니 속이 다 시원하다. 내가 주변사람들한테 맨날 듣는 말이 '언론하고 잘 지내라' '언론을 포섭하라'라는 말이었다. 얼마나 정치인들이 모멸감을 느끼는지 아는가? 다 눈치보고 산다. 지금도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언론의 공격에 얼마나 조마조마하겠는가? 이런 상황과 싸워야 한다."

노장관은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이면서 "정말 내가 열받네"라고 분을 토했다.

- 문제의 발언의 진의가 그랬다 하더라도 '전쟁'이라는 용어 사용이 좀 거칠었다는 지적도 있다.
"품위가 없는 용어를 쓴 점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점심 먹으면서 편안하게 사담하는 자리였다. 등산가는 사람에게 넥타이 안 맸다고 하니..."


그 발언 때문에 장관직 스스로 물러나는 일 없을 것

- 그 발언에 대해 앞으로 언론이 계속 문제삼을 수도 있는데, 스스로 장관직을 물러날 생각은 하지 않고 있나?
"그 발언은 내 직무나 당이나 정부와 아무 관계가 없고 개인의 평소 생각을 가지고 이야기한 것이다. 그것이 부도덕한 것이었다면 문제지만 언론의 횡포에 대한 평소의 소신을 말한 것뿐인데 왜 내가 장관에서 물러나야 하나."

- 부담을 느낀 청와대에서 사임하라고 한다면?
"그거야 할 수 없는 일이다. 임명권자의 뜻을 따라야 하니까."

- 문제의 발언은 이회창 총재의 '언론사 세무조사 중단' 요구를 정면 비판하는 가운데 나왔는데, 이 총재의 언론사 세무조사 중단론의 핵심적 문제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이번에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것으로 이제 권력과 언론의 야합 가능성은 끝나는 거다. 그 점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세무조사라는 정당한 공무집행을 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문제였다. 그것은 눈치보기였다. 이번 세무조사는 설령 그 의도가 어디에 있든간에 과거의 유착관계는 청산된 것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회창 총재의 언론사 세무조사 중단요구는 권력과 언론이 다시 부당하게 타협하고 야합하고 서로 봐주기하자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그것을 비판하지 않을 수 있나?"

- 이번 일로 노장관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일로 해서 내가 언론으로부터 어떤 박해를 더 받을지 모르지만, 그 동안 할말이 있으면서도 참고 있었던 것이 항상 부끄러웠다. 나도 큰일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서 걱정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부당한 언론의 횡포에는 당당하게 맞서겠다. 너무 걱정 안 했으면 좋겠다. 시민들이 언론의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나를 굳게 지켜주리라 믿는다."

- 큰 일을 앞두고 있다는 건 대통령 선거에 대한 출마준비를 말하나?
"그렇다."

- 상당히 흥분해 있는 것 같은데 지금까지의 인터뷰 내용 가운데 글로 옮기지 말았으면 하는 대목이 있나.
"그런 내용 없다. 다 실어도 무방하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노 장관은 해양수산부 연수원 순시 등의 업무를 보기 위해 부산행 비행기에 올랐다.

인터뷰를 마치고

노장관은 그렇게 할말을 다 쏟아냈다. 대우 김우중 씨의 몰락 원인 중의 하나가 '할말을 하는' 부하의 부재였다고 지적되듯이 우리 사회에서 할말을 한다는 것은 이례적인 용기를 필요로 한다.

모든 언론이 전두환 독재정권의 '보도지침'을 받아 권력의 주구노릇을 할 때 '할말은 한다, 말다운 말'을 내걸며 <말>지가 창간(1985년)됐다. 그 시절 보도지침을 받아 쓰던 거대언론들의 대표격인 조선일보는 50년만의 정권교체가 되고 언론자유의 호시절이 오자 1998년 경부터 '할말은 하는 신문'이라는 모토를 내걸었다.

노 장관은 1985년이나 1998년이나 2001년이나 할말은 하며 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정말 희귀한 정치인이자 희귀한 한 시민이다. 그도 그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해 행동하고 말하는 정치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입 자체가 하나의 연구되어야 할 언론이다.

거대신문사들은 모토를 내걸건 그렇지 않건 '할말을 하는 신문'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강조한다. 진정 그렇다면, 그 정신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할말을 하고 사는 이 희귀한 정치인과 공정한 게임을 해야할 것이다.

이제 노장관이 "조폭적 언론에 굽신거리지 말고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고 다시 할말을 했으니, "언론과의 전쟁불사 발언의 진의와 본질을 놓고 공개토론을 하자"고 제안했으니 공개토론에서 양자가 할말을 다 하고 국민들이 판단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OhmyNews 대표기자 & 대표이사. 2000년 2월22일 오마이뉴스 창간. 1988년 1월 월간 <말>에서 기자활동 시작. 사단법인 꿈틀리 이사장.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