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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장하준 교수는 한미통화교환협정 체결에 대하여 “폭풍이 몰아치는데 우산 하나를 더 받친 격”이라고 잘라 말했다. 어찌 보면 이 말은 너무 냉소적이어서 실감이 와 닿지 않는다. 대관절 장 교수가 이렇게까지 심하게 말하는 이유는 뭔가? 장 교수는 무슨 근거로 지금을 폭풍이 몰아치는 시기라고 하는 것이며, 한미통화교환협정을 고작 우산 하나밖에 안 되는 것으로 폄하하는가? 그렇다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는 것인가?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부키)은 이런 의문을 해소해 주는 책이다. 국방부는 이 책을 뒤늦게 불온서적으로 지정해 영내 반입을 금지했다. 그런데 이 책은 이미 작년에 한국의 베스트셀러였다. 또한 이 책은 미국에서도 널리 읽혀 아마존 순위 경제학 부문에서 2위, 국제 부문에서는 1위를 기록했었다. 게다가 국방부가 불온서적으로 지정하자 올해 다시 한국에서 붐을 타고 있다.

 

'리만 브라더스'가 보기에는 곤혹스럽고 괘씸한 책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국방부 지정 불온서적 23종 가운데 가장 유명한 책이다. 동시에 이 책은 미국 발 금융 위기로 인해 신자유주의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오늘의 시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왜 이 책이 불온서적으로 지정된 것일까? 다시 말해 국방부는 이 책의 어떤 점을 불온하다고 여긴 것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국방부가 제시한 불온서적의 기준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친북· 반정부’이고, 둘째는 ‘반미’이며, 셋째는 ‘반자본주의’이다. 이 책은 경제학 학술서로서 친북· 반정부 또는 반미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 아마 국방부는 이 책을 셋째 기준인 반자본주의 서적으로 간주한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대단히 자본주의적이다. 원래 저자인 장하준 교수는 자본주의를 철저히 신뢰하는 학자이다. (그의 자본주의 신뢰에는 일면 과도한 면이 있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그는 경제 발전을 행복의 지상 과제처럼 여기는 학자로서 박정희의 경제 발전 모델을 높이 평가한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공부를 마친 후 지금은 그곳 교수로 자리잡고 있는 이력에 걸맞게 그는 자본주의적이다.

 

그렇다면 국방부는 왜 이 책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것일까? 그것은 이 책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신자유주의가 곧 자본주의라고 여기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강만수 장관과 같은 이른바  ‘리만 브라더스’가 보기에 아주 곤혹스럽거나 또는 괘씸하게 여겨지는 책이다. 이로 보아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은 순수하지 않은 정치적 의도를 품은 것이다.

 

사다리를 걷어차는 교활한 사마리아인들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오른 사람이 그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뒤를 이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수단을 빼앗는 매우 교활한 방법이다.”

 

이것은 19세기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한 말이다. 당시 경제 선진국이었던 영국이 경제 후진국 독일에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것에 항의해서 한 말이다. 리스트는 영국을 먼저 정상에 올라가 놓고 다른 사람은 오르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차는 교활한 나라로 본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리스트의 말에 힌트 또는 영감을 얻어 역저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를 2002년에 발간한 바 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바로 이 <사다리 걷어차기>의 보충· 해설서적인 성격을 띠는 책이다.

 

예수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기록을 <누가서>에 남겨 놓고 있지만, 원래 사마리아인들은 유대교인들이 보기에 매우 교활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이었다. 책 제목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교활하고 이기적인 사람을 가리킨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체제하의 선진국들을 비유하는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1980년대 들어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경제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들에 신자유주의를 강요해 왔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관세를 철폐하는 자유무역에 있다. 이것은 모든 나라가 같은 조건에서 무한 경쟁을 벌여야 경제가 발전한다는 논리이다. 이를 위해 외국인 투자 유치, 민영화, 규제 철폐, 특허권 보호 등을 실시해야 한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자유경쟁은 두란과 알리의 복싱 경기

 

선진국들은 자유 경쟁을 해야 후진국들의 경제가 빨리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저자에 의하면 이것은 사탕발림으로 남을 눙치는 짓이다. 왜냐하면 미국이나 영국 같은 경제 선진국들도 초창기에는 철저히 보호무역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자유 경쟁을 체급을 무시한 복싱 경기에 비유한다. 로베르토 두란이 아무리 권투를 잘한다고 하더라고 무하마드 알리와 경기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요컨대 자유무역은 불공정하기 짝이 없는 경기라는 것이다.

 

여섯 살 난 아들을 경쟁력을 키워준답시고 직업을 갖게 한다면 아이는 약삭빠른 구두닦이 소년이나 돈 잘 버는 행상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뇌수술을 하는 전문의나 핵물리학자가 되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경제 후진국들은 어느 정도 경쟁력을 키울 때까지는 일정 기간 보호를 받아야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치로 볼 때, 박정희가 한국 경제를 발전시킨 것은 독재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보호 무역을 했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이 일찍부터 자유무역시장에 노출되었더라면 삼성은 여전히 경공업 소비재 따위나 파는 후진 기업으로 머물러 있을 것이고, 현대는 아파트나 짓는 건설회사로 남아 있어야 했을 것이다.

 

저자는 외국인 투자에 대해서도 정확한 실상을 제공한다. 스웨덴 식민지로 600년, 이어서 러시아 식민지로 100년을 보낸 핀란드 사람들은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1918년 이래 외국인을 멀리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 국가이다. 결과 핀란드는 외국인 투자에 가장 많은 규제를 둔 나라였다. 핀란드는 유치산업(장래에는 성장이 기대되나 지금은 수준이 낮아 국가가 보호하지 않으면 국제 경쟁에서 견딜 수 없는 산업)을 철저히 보호했다.

 

핀란드가 외국인 투자를 어느 정도 허용하게 된 것은 1987년이었고, 전면적으로 자유화한 것은 1993년이었는데 이것은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해서였다. 신자유주의자들의 말대로라면 이렇게 극단적인 외국인 배척 전략을 구사한 핀란드는 경제가 형편없이 추락했어야 한다. 하지만 핀란드의 경제는 괄목상대했다. 만약 핀란드가 일찍부터 신자유주의를 채택하여 외국인 투자를 받아들였다면 노키아와 같은 세계 굴지의 이동전화 회사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무기,  '사악한 삼총사'

 

사실 여기까지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학자로서 웬만하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본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보이는 유별난 통찰력은 신자유주의의 원인과 결과를 명쾌하게 논증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저자에 의하면 신자유주의는 놀랍게도 군사적 제국주의 또는 식민주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아편전쟁은 한마디로 자칭 자유무역의 선도자가 자국의 마약 불법 거래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에 전쟁을 선포한 것이었다. 이렇듯 첫 번째 세계화 시기(1870~1913)에 영국의 패권 하에 발전하고 있던 상품·사람·돈의 자유로운 이동은 대부분 시장의 힘이 아니라 군사력 덕분에 가능했다."(P.48)

 

영국은 군사력으로 불평등조약인 난징조약을 맺어 중국과 (아편을 포함한) 자유무역은 물론 홍콩까지 얻게 되었다. 물론 1980년대 이후 강대국들은 군사력을 동원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이 신자유주의를 위해 동원한 무기는 무엇일까? 그 무기는 바로 IMF와 세계은행과 WTO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셋을 가리켜 ‘사악한 삼총사’라고 일컫는다.

 

이 책의 가장 탁월한 성과는 신자유주의가 후진국은 물론 이를 주장하는 선진국들에도 손해임을 입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제국주의에 의한 1차 자유 무역 기간(1870~1913)과 IMF 등을 내세운 최근의 자유 무역 기간(1980년~ 현재)에 이룬 경제 성장이 보호 무역 기간이었던 1950~1979년에 비해 약소국이건 강대국이건 훨씬 낮으며 금융위기나 외환 위기의 횟수도 단연 많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저자는 신자유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제든 위기는 찾아오며 이럴 경우 신자유적인 미봉책으로는 위기를 결코 극복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저자가 한미통화교환협정을 ‘폭풍 속의 우산’으로 평가한 것은 이런 학문적 신념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이번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는 맹목적인 신자유주의자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유무역협정에 일정 부분 비판적이며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저소득층에 대한 감세와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를 공약한 바 있다. 오바마는 미국 상원에서 실시한 66번의 투표 가운데 보수적인 법안보다는 진보적인 법안에 65번이나 표를 행사했다고 한다.

 

오바마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만약 미국이 보수적인 신자유주의를 수정하고 세계 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나는 실마리를 풀게 된다면,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저자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된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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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역사팩션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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