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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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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10대들이 거리로 나와 촛불집회를 하는 걸까? 무슨 연유로 촛불집회를 거듭할 수록 참가하는 10대들의 규모가 계속 커지고 있을까? 알고 지내는 10대들에게 단답형으로 물어봤다. 그 중에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경우도 있고 소식만 접한 경우도 있었다. 대답을 들어본 결과 그 '왜?'에 대해 나는 아직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단문으로 물었으니 단답으로 듣긴 들었다.

그 단답들을 모아보면 촛불집회 현장의 자유발언, 구호, 전단, 피켓에서 밝히는 목소리와 대동소이했다.

"내가 왜 이 나이에 목숨을 걱정해야 하나?"

이것이 10대들의 단답이다. 이들은 1990~95년 사이에 태어나 현재 중1에서 고3의 나이에 해당하는 10대들이다.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가 지켜주자."

이것은 그 10대를 자녀로 둔 부모들의 단답이다. 부모 자녀 사이에 광우병에 대한 걱정과 근심어린 대화를 주고받았을 테니 영향이 있을 것이다.

이 부모들은 대략 1960~70년 사이에 태어났다. 즉 1980~90년 시기에 청년기를 보낸 세대로, 소위 '386세대'라고 언론이 부르는 그 연령대이다. 하여 일부에서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10대들을 가리켜 '386 2세대'라는 괴이한 딱지를 붙이기도 했다. 이 말이 괴이한 것은 '386'이라는 세대 작명법의 오류를 그대로 반복할 뿐 아니라, 요즘 한창 주가가 떨어진 '386=운동권' 이미지를 다시 10대들에게도 갖다 붙이려는 색깔론의 유혹 또는 함정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10대 여성들이 '좌파의 희망'?

반면 "어쨌든 새로운 세대가 우리 사회에 등장했습니다(MBC 뉴스 중에서)"라고 전하는 시각이 있다. 뉴스는 이전 10대와 다르게 개인주의적이지 않고 소통을 잘하며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한다며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알린다.

우석훈씨는 훨씬 명확한 생각을 <한겨레> 칼럼에 밝혔다. 그는 지금의 10대와 20대가 다르고 10대 남학생과 여학생이 다르다면서 "하버마스가 지적한 개념으로 '소통'"과 "최근 경제학에서 유행하는 '신뢰'라는 개념"을 "10대 소녀"는 기르고 있으나 "20대 대학생"은 그렇지 못하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한 반론은 변희재씨가 <빅뉴스>에 썼다. 그는 우석훈씨가 20대를 무능력자로 규정하고 10대 여성에게 "좌파의 희망"을 본다면서, 변희재씨 자신도 10대들의 "긍정적인 잠재력을 인정하"나 "다만 이들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려는 좌파 386세력들의 개입을 막는다면"이라고 했다. 보다시피 그의 반론은 우석훈씨처럼 그 10대들의 잠재력에 주목하기보다 "386세대의 지시를 그대로 따라주는 꼭두각시"가 되는 것을 막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다음 글에서 "10대들의 에너지를 어떻게 생산적으로 끌어올려야 하는지" 다룬다니 두고 볼 일이다.

한편 여성주의 저널 <일다>의 박희정씨는 이번 촛불집회에 "좌우 세력으로 일컬어지는 정치적 성향이 배제"되어 있다고 본다. 그리고 10대 여성이 더 주도적이고 많은 이유에 대해 "여성들은 먹을거리 문제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타인에 비해 민감"하며 특히 "10대이기 때문에 미래 세대로서 느끼는 '당사자 인식'에 가족과 친구를 걱정하는 '연민과 배려'가 더해져 10대 여성들이 느끼는 절박함은 상당한 것"으로 인식한다. 나아가 포털 사이트의 뉴스란에 붙는 댓글의 주도층이 남성이었다면 "이제 10대 여성들이 여론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고 주목한다.

10대들이 촛불집회에 '왜?' 나섰는가에 대해, 그 10대들 자신의 내재적 동기와 외부적 요인으로 나눌 때 변희재, 우석훈, 박희정씨의 글이 주안점을 어디에 두는지 알 수 있다. 촛불집회+10대의 현상에 대해 그 선배나 어른들이 반응하는 생각과 감성의 지도가 어떠한지도 대략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 점에서 나는 여전히 그 '왜?'에 대해 모르고 있다. 10대들이 광우병과 한미정상회담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계기로 촛불집회에 나온 것은 알겠는데, 이를 통해 10대들 자신의 내면에서 일으켜진 그것의 '왜?'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폭발 직전 10대들이 숨 쉴 수 있는 공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가 예정된 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학생들이 쇠고기 수입개방 집회와 관련된 설문지를 친구의 등에 올려 놓고 작성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가 예정된 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학생들이 쇠고기 수입개방 집회와 관련된 설문지를 친구의 등에 올려 놓고 작성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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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나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쪽 방향의 경험과 지식과 정보를 끌어들이는 수밖에 없다. '광우병+촛불집회+10대'라는 현상 이면에서 꾸준히 쌓여왔다가 행동으로 터져 나온 요즘 10대들의 그 내면, 그 격발, 그 계기에 대해 생각하려면 말이다. 그러자면 먼저 떠올려야 할 몇 가지 풍경이 있다.

그중 두 가지 풍경만 생각하자. 먼저 1990~95년에 태어난 지금의 10대는 지난 대선의 정권 교체와 함께 극과 극으로 달라지고 있는 대입제도의 혼란과 그로 인해 훨씬 강도 높게 촉발되는 그간의 누적된 입시 피로증을 겪는 중고등학교 학생이라는 점이다.

좌우 정권을 떠나 '교육의 다양화'는 이미 10여년 이전부터 제기된 염원이나, 전 정부와 현 정부가 그 대의를 내세우며 교육정책을 바꿀수록 사교육은 공룡이 되어가고 공교육은 화석이 되어간다. 어찌 해야 대입에 성공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잘 아는데, 그것은 교육정책과 제도에 대한 불신이고 반대로 집집마다 알아서 학부모 매니지먼트에 의한 경쟁으로 뛰고 더 뛰는 것이다. 그 도가 지금 극점을 향해 치솟아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지금의 학생이 겪는 공황 상태의 불안과 막막함이 어떤 강도와 감도인지 생생하게 직시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학교붕괴'니 '교실붕괴'니 말이 끊이질 않았지만, 10대들은 그 학교와 교실에 무던히도 적응하는 초인적 자세를 보여 왔다. 그 희한한 풍경의 하나가 '잠자러 가는 학교'와 '밤새워 공부하는 학원'의 공존이다. 그리고 학교와 학원 어디도 창의성, 자율, 공정한 경쟁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학생과 학부모 당사자가 잘 안다. 비유컨대 그렇듯 눈이라도 잠시 붙이고 친구들과 잠깐의 수다라도 나눴던 그 학교마저 미친 것처럼 학원과 경쟁하듯 내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현 교육당국이 뭐라 말하든 학생들이 느끼는 현실은 그렇다. 폭발 직전인 것이다.

다른 풍경을 보자. 지금의 대학생처럼 '공부'에 이렇게나 많은 시간과 돈을 쓰던 대학생이 없었듯이 지금의 10대도 그렇다. 아니 지금대로 간다면 현재의 10대는 건국 이래 가장 지독하게 많은 '공부'를 할 것이다. 만약 휴대폰과 인터넷이 없었다면, 적당히 쉬고 놀아야 가능한 인간의 육체적·정신적·심리적 생명의 유지를 위해 10대들이 뭘 어떻게 했을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그 10대가 자신들이 직접 지켜봤던 2002년의 월드컵 응원과 효순·미선이 촛불집회를 떠올린 것이다. 응원이든 시위든 10대들에게는 어쩌면 그것만이 숨 쉬고 행동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으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촛불집회에 가본 이는 느끼겠지만, 그곳에는 여느 집회시위와 같은 점도 많았으나 새로운 점도 많았다. 그 새로운 문화의 발원지는 분명 10대들이었다. 10대들은 그곳에서 자신을 주장하고 서로 공감했으며 웃고 울면서 놀았다. 일부 어른들이 좌우 색안경을 끼고 뭐라 말하든, 또한 사실과 괴담과 과학과 공포가 고루 뒤섞여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10대들은 촛불집회에 모여서 쉬고 놀았다. 나는 이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쉬고 놀 수 있으려면, 인간으로서 살기 위해 그러자면, 그 길밖에 없는 셈이다. 

광우병과 한미 정상회담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이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 담당자들이 했던 말과 행동 등의 이슈는 그 계기였을 뿐이다. 이 사안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계기를 통해 10대들이 촛불집회에 대거 등장한 그 현상을 10대들의 내재적 동기에서, 그들의 내면을 둘러싼 일상적 삶의 환경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하자는 이 글의 취지에서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 계기가 10대들에게 그렇게나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한 원인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언론과 전문가들이 쏟아놓는 많은 말글에서는 이렇게 보고 있었다.

대통령과 정부가 위로는 못해줄 망정...

어른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든 한우를 먹든 아예 고기를 안 먹든 선택한다 치더라도, 10대들은 학교 급식 때문에 선택의 자유도 피해갈 방도도 없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게다가 광우병의 10년 잠복기론에 의하면 가장 큰 피해자가 자신들이라는 계산이 선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중고등학생 연령의 10대들에게는 피선거권은 물론 선거권도 주지 않으면서 무슨 권리로 이 정부나 어른들이 그런 결정을 해서 자신들에게 피해를 주느냐고 따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왜 이 나이에 목숨을 걱정해야 하나?"는 10대의 목소리나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가 지켜주자"는 부모의 목소리가 커다란 공명을 일으키는 이유다.

혹자는 이에 덧붙여 그것이 바로 먹는 일이라서 그렇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일면 그런 것도 같다. 의식주 중에서 입는 문제는 노출이나 명품 소비 등 이미 세계화되었고 집 문제는 세계적으로 거의 최악으로 곪았는데, 그래도 버티고 사는 우리 국민이 유독 먹는 문제에 대해서만큼 못 참는 것 같기도 해서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는 자조적 말은 잘 써도 '입고 살자고'나 '집사고 살자고' 하는 말은 안 쓴다. 하나 일면 수긍이 안 간다. 급식이 먹는 일이 분명하나 그 위생과 안정성에 대해서는 광우병 외에도 숱한 문제들이 제기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물론 치료의 방법이 없어 한번 걸리면 죽게 되는 광우병의 위험성, 그에 대해 정부가 취해야 할 마땅한 검역과 위생 조치, 이런 사안에 대한 국민과의 소통 등 일련의 문제는 먹을거리와 급식에 대한 여타 이슈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 미국산 쇠고기는 전부터 수입해서 먹어왔고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한 정보도 이미 알려져 있었다. 이렇게 이 사안만 좁혀서 볼 때 남는 이슈는 30개월 이하 소의 SRM(특정위험물질)도 수입하고 30개월 이상 소도 수입하기로 한 현 정부의 결정과 그 배후이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 모두가 '지식인'이 되었을 만큼 그 사안이 크다.

그런데 이 사안이 가진 그토록 민감한 뇌관의 성격을 감안해도 나는 10대들의 이번 촛불집회와 관련하여 '왜?' 지금을 택할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마저 다 못 푼 기분이다. 다시 그 먹는 문제로 돌아가 보면, 사실 우리 국민들 정서에는 '웰빙'에 대한 뜨거운 관심만큼이나 '에이 뭐 먹고 죽지'하는 태도도 적잖게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좀 과장하면 한국 사회는 입는 문제, 집 문제에 더해 먹는 문제에서도 실은 '막나간 상태'의 한복판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처럼 온갖 문제가 심각하고 내내 터졌는데도 실은 그만큼 우리 국민이 또 '면역력'을 길러왔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10대도 그 국민 문화의 영향 속에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지금을 택하게 된 그 계기를 걸러내고 또 걸러내서 보면, 마지막에 남는 그 최초의 도화선에 불을 댕긴 것은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 새로운 결정을 내리면서 보여준 이명박 대통령의 웃음과 발언 그리고 정부 당국자들의 잇따른 언행이다. 시쳇말로 '에이 뭐 먹고 죽지'라고 했을 국민도, 대통령과 정부가 위로는 못해줄 망정 '값싸게 먹든가 싫으면 안 먹으면 된다'는 식으로 나올 때 엄청 열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히 10대들도 그렇게 반응했을 것이다. 나아가 10대들은 이참에 그 여파의 회오리에서 자신의 내면을 꼭꼭 잠가왔던 그 문을 참고 억누르다가 스스로 연 것이다.  

10대도 '학생'이기 이전에 '인간'

6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학생과 시민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6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학생과 시민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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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주제로 돌아오자. 그렇게 스스로 내면의 문을 연 10대들의 이번 행동이 앞으로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퇴행할지 그것은 미지수다. 기대도 걸 수 있고 걱정도 할 수 있겠으나 단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번 광우병 문제와 촛불집회 자체도 매우 중요한 이슈이지만, 이를 계기로 등장한, '우리는 아직 살아있습니다'라고 '우리는 잘 살고 싶습니다'라고 자신의 존재감을 행동으로 드러낸 10대들을 보면서 한국 사회의 선배와 어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결심할 것이며 무엇부터 실천할 것인지 꼭 돌아보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

글을 마치면서 내 짧은 생각을 덧붙이면 이렇다. 10대는 인간이다. 내가 남자고 어른이고 서울사람이며 직장인이고 남편이듯이, 10대 또한 학생이면서 소비자이고 자녀이면서 시민으로서 여러 정체성을 갖는 복합적 존재이자 통합적 인격체이다.

하나 10대는 한국 사회에서 너무 오랜 세월을 오로지 '학생'이기만을 강요받아 왔다. 학교와 학원 어디에서든 그 '학생되기'조차도 '진짜 공부'나 '인생 학습'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입시'감옥'의 '수감자되기'라는 것을 10대들은 너무 잘 안다. 하여 이제껏 선배들이 그랬듯 웬만하면 참고 견디다가 어서 나이를 먹어 10대를 벗어나는 수밖에 없다고 여기고 여기까지 왔다.

그런 10대들이 스스로 촛불집회의 장을 열었고 그곳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웃고 울면서 놀고 있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을 맛보기 위해서 말이다. 여기에 무슨 좌우와 음모와 배후와 선동이 있다는 것일까. 다 부차적인 것들이고 침소봉대로밖에 읽히질 않는다. 내가 짐작하는 건 여기까지다. 10대들이 보여준 이번 촛불집회 그 다음이 어떨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다음이 지금의 10대들에게 더 좋은 삶으로 연결되는 것이기 위해서는 좌든 우든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지금 10대들에게 '학생' 이외의 수많은 정체성들을 속히 인정하고 그에 따른 행동의 기회를 더 많이 더 다양하게 부여하는 것이다. 그중에는 지금보다 더 연령을 낮춰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확대하는 일도 있다. 어른들이 특히 정치권에서 지금의 10대들이 부화뇌동할까봐 걱정한다면, 그들 10대를 일찍부터 선거에 참여시켜야 한다. 나이가 적다고 야단치거나 타이를 게 아니라 권리를 주고 그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문화를 경험하게 해야 한다. 물론 지금 10대들이 '진짜 공부'와 '인생 학습'의 온전한 당사자가 될 수 있게끔 하는 일도 포함된다. 

그렇게 하기가 어려울까. 앞서 의식주 문제를 빗대었으나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너무 많은 문제가 뒤죽박죽 깊숙하게 꼬여 있어서 아득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란 게 원래 그런지 격동의 근현대를 압축적으로 겪어온 우리 국민의 독특한 기질 덕인지 모르겠으나,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일은 반드시 될 것 같다가도 버럭 안 되고 절대 안 될 것 같다가도 덜컹 되는 체험의 연속인 것 같기도 해서 쉬이 희망을 놓을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촛불을 든 10대들은 말하고 있다.

"하면 할수록 망치잖아요. 하지 마세요. 우리는 살아가야 해요. 잘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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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문화평론가인 김종휘님은 청소년 직업체험 및 학습·문화 공간인 하자센터의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미국 쇠고기, #촛불문화제, #10대, #청소년,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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