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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출입기자실에서 쫓겨난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가 한국언론재단 자료실에서 찾은 두 번째 자료는 한 언론학 교수의 논문이었다. 그것은 13년전인 1988년에 쓰여진 것이었다.

당시 한양대 신방과 교수였던 팽원순 씨는 [신문연구](관훈클럽 발행) 1988년 여름호에 실린<기자단의 기능과 그 문제>라는 글에서 "기자단은 해방 후 지금까지 우리 언론의 하나의 당연한 제도처럼 인정되어 그대로 유지되어 왔지만 그 동안 한번도 그 존재의 의미가 제대로 검토되거나 개혁의 노력을 거친 일이 없었다"면서 "기자단의 폐쇄성은 헌법에도 위배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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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 교수는 우리의 '기자단'이 일본의 '기자클럽'을 본따 만든 것이라고 했다.

"'기자단'이 우리나라에 특이한 기자들의 조직이라고 했지만 우리의 기자단은 본래 일본의 '기자클럽'을 본떠서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그것이 일본의 것을 본뜬 것이면서도 일본 것과도 또 다른 특이한 것으로 변모해 왔기 때문에 우리만의 특이한 것이라고 표현해도 잘못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기자단은 해방 후 우리 신문이 대거 나타나면서 출입처인 당초의 미군정 각 기관에서부터 거의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각 기관의 기자실에 모인 기자들이 차츰 그들끼리의 친목을 도모하고 상호간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기자단'을 조직하게 되었다.

우선 우리의 기자단과 일본의 기자클럽은 미국이나 서구제국에서 볼 수 있는 기자클럽이나 기자실 조직과는 달리 다분히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점에 있어 성격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기자클럽'은 '방침'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의 '기자단'은 어떤 방침도 찾아볼 수 없다고 팽교수는 지적한다.

1949년 일본신문협회는 '기자클럽에 관한 신문협회 방침'을 발표했다.

"기자클럽은 각 공공기관에서 배속된 기자의 유지들이 서로 모여서 친목사교를 목적으로 조직하는 것으로 하며 취재상의 문제에는 일체 관여치 않는 것으로 한다. 기자클럽은 기자실의 일부를 사용케 하기로 한다."

즉 1) 친목단체이며 취재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2) 기자실 전체가 아닌 일부만 사용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잘 지켜지지 않자 일본신문협회는 1978년 다시 '기자클럽에 관한 일본신문협회편집위원회의 견해'를 발표하고 기자클럽이 배타적인 조직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했다. 그 '견해'에는 이런 조항이 있다.

"기자클럽은 취재기자들의 조직이기 때문에 취재활동의 원활화를 기하기 위해 약간의 조정역을 수행하는 것은 인정된다. 다만 그 조정기능이 확대되거나 남용되지 않도록 엄히 주의를 해야 할 것이다.

취재원인 각 공공기관은 기자클럽 가맹사의 기자이든 아니든 간에 취재활동을 하는 모든 미디어의 기자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그 책무이다. 이 경우 기자클럽은 클럽가맹사 이외의 보도기관과 해당 취재원과의 사이에 있어 취재상의 문제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입장이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신문편집인협회나 기자협회 등이 나서서 '기자단'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논의를 하지 못했다.

따라서 팽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기자단'이 일본보다 더 폐쇄적으로 운영되어 왔으며 이는 '법에도 어긋난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기관의 기자실의 경우는 기자단이 회원에게만 발급케 하고 있는 출입증이 없으면 출입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회원이 아니면 그에 접근조차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기자단이 모든 보도기관에게 개방되어야 할 공공시설로서의 기자실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이용을 배제할 어떠한 합리적인 근거도 내세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독점하고 있는 것은 따지고 보면 법에도 어긋나는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기자단의 존재는 다른 보도기관의 기자들에 의한 정당한 취재의 권리를 저해하고 정보독점의 특권을 멋대로 차지하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팽교수는 또 기자단의 폐쇄성은 "헌법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기자단은 기자들의 사교를 위해 조직된 임의단체에 불과하기 때문에 헌법으로 보장된 언론의 자유, 정보의 자유를 행사하는데 실질적인 제약을 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없으며 그런 행위를 해서도 안될 것이다. 다만 기자들간의 취재윤리를 어겨서 다른 기자들에게 해를 미쳤을 경우에는 그 도덕적인 책임을 추궁하고 이를 경고하는 정도의 제재에 그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팽교수는 이 글을 통해 기자단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개선방안도 제시했다. 우선 친목단체로 명확히 성격규정을 하고 취재에는 관여하지 말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선의 방안으로서는 첫째로 기자단을 엄격히 친목단체의 성격으로 환원시키고 기자실의 시설과 편의만을 기자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체제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기자단은 미국이나 영국의 기자클럽처럼 출입기자들 상호간의 사교를 위한 모임의 성격으로 엄격히 제한하여 취재에는 일체 관여하지 못하게 하고 기자실에서 그 시설과 편의만을 공동으로 이용하게 하여 기자마다의 독자적인 취재를 최대한으로 보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해금시간(엠바고)이든 오프 더 레코드이든 그런 것에 관한 약점은 모두 취재원 쪽의 책임으로 돌리게 하고 뉴스의 흐름을 통제하는 그런 약정에 기자들이 집단적으로 책임을 지는 일은 없게 해야 할 것이다."


팽교수는 또 언론사들이 기자실 이외의 더 넓은 공간에서 취재를 하는 것이 시대의 요구와도 맞다고 지적했다.

"이제 보도기관들이 정부기관의 뉴스만을 지나치게 중요시하는 낡은 뉴스권에서 벗어나 일반국민의 생활과 활동에 보다 더 큰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밑으로부터 또는 수평에서 상향으로의 뉴스의 흐름을 더 왕성하게 하는데 힘을 써야 할 것이다.

국민생활의 영역이 자꾸만 넓어짐에 따라 이제는 기자단과 같은 메카니즘으로는 도저히 건져낼 수 없는 많은 다양한 종류의 뉴스가 더욱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관청에서 나오는 발표물의 전달은 통신사에 맡기고, 기자단에 배치한 기자를 점차 줄여가면서 그들과는 별도로 독자취재를 위해 활동할 수 있는 기자들의 팀을 늘려가도록 하는 방향으로 취재체제를 바꾸어가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신문의 취재조직과 취재방식을 참된 의미로 현대화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며 또 우리 신문을 획일성에서 벗어난 참으로 개성 있는 신문으로 만드는 첩경이기도 할 것이다."


팽교수의 13년 전의 글은 오늘 다시 읽어봐도 우리 현실에서 꼭 필요한 지적들이다. 그 글은 '자유경쟁시대의 언론'이라는 특집의 하나로 실린 것이었다. 지금은 13년 전보다 훨씬 더 자유경쟁시대가 되었다. 신문편집인협회나 기자협회 언론노련 등은 지금이라도 '헌법에도 위배되는' 현재의 기자실 운영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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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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