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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순 교수(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가 출입기자실 문제와 관련해 '긴급기고'를 오마이뉴스에 해왔다.

장 교수는 "현행 출입처제도로 구획화된 전근대적인 취재시스템으로는 더욱 복잡해지고 유동적으로 변하는 정보화 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뉴스를 제공할 수 없다"면서 "독자와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질높은 뉴스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그리고 언론인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서도 현행 출입처 제도는 폐기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지금과 같은 출입처 기자실을 그대로 두고는 절대로 언론개혁이 실현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장 교수의 기고문 전문.

올해 들어 언론개혁의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족벌언론의 소유와 경영의 비리에 대한 강도높은 정부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고, 범시민단체의 참여로 "신문개혁국민행동"이 어제 출범했다. 지금까지 언론개혁의 초점은 주로 신문을 대상으로 언론사주의 비리와 횡포 그리고 시장질서를 파괴하는 불공정거래 행위에 맞추어져 왔다. 언론사주의 부당한 편집권 간섭과 무가지 살포 등을 통한 신문강매 행위가 언론의 진실보도를 차단하고 여론형성을 왜곡시키는 주범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에서 진실의 왜곡과 여론의 조작은 대체로 세단계를 거쳐 이루어진다. 첫째 기자들이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 둘째 언론사 사주와 간부들에 의한 편집 과정, 그리고 셋째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완성된 뉴스가 전달되는 과정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언론개혁의 담론은 첫째 과정, 즉 기자들이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리와 문제점은 외면해 왔다.

그 결과 마치 족벌사주와 그들의 대리인을 몰아내고, 무가지살포와 경품을 제한하면 한국 언론이 정상화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뉴스공정의 첫 번째 단계, 기자들이 뉴스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해지지 못한다면 나머지 두 단계가 설사 개혁된다 하더라도 결코 언론개혁은 완성될 수 없다. 뉴스를 하나의 상품으로 본다면 기자들이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은 원자재를 구입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불량자재의 공급이 이루어지고, 가격담합이 이루어진다면 결코 제대로 된 상품이 나올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한국의 기자들이 정보 수집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출입처 기자실이다. 주요 뉴스 거리를 제공하는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공간이다. 정보를 제공하는 측에서는 보다 쉽게 언론에 접할 수 있고, 언론사의 입장에서는 손쉽게 원자재를 구할 수 있어, 피차간에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한국의 기자실은 다른 나라의 기자실과 다르다.

취재를 원하는 모든 기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자들사이에서 허락을 받은 기자들만 들어간다. 심지어는 출입처 기자실을 만들어준 공공기관의 근무자들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더욱 이상한 것은 기자들이 기자실 운영비용을 거의 내지 않는다. 조금 내는 곳도 있지만 실제 비용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나머지 비용은 국민의 세금이나 해당기업의 소비자들에게 돌아간다.

한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에서 기자실이나 공보실이라는 제도가 있긴하지만 한국의 기자실처럼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적어도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는 나라라면 그렇게 할 수 없다. 우선 국민의 알권리를 최우선으로 해야하는 언론에게 배타나 독점이나 폐쇄라는 용어는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신문협회의 경우, 1978년 새로운 기자클럽 운영지침을 만들면서 "기자클럽에 소속된 기자는 해당 클럽에서 이루어지는 타사의 자유로운 취재, 보도활동을 존중하고 불미스럽게 그 행동을 저해 또는 규제하는 듯한 협정-사전합의 등을 해서는 안된다"고 선언했다. 또한 "취재원으로부터는 어떤 형태의 특별한 편의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재확인했다.

기자실을 배타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당연히 언론의 본분에 대해서 의심하게 만든다. 언론과 취재원과의 유착과 타협과 거래를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언론이 고집하는 기자실은 이미 오랫동안 비리의 온상으로 여겨져왔다. 더욱이 인터넷의 등장으로 정보의 보급이 보편-신속해지고, 언론매체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에서 일부 언론사들만이 독점적으로 기자실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일 뿐이다.

언론개혁이 제대로 되려면 족벌언론타도와 시장질서의 회복과 아울러 반민주적이고 퇴폐적이고 전근대적인 한국언론의 출입처 기자실 관행이 개선되어야 한다. 급격히 줄어드는 독자의 신뢰도를 회복하고 뉴미디어 시대에서도 뉴스공급과 여론형성의 주체로서 그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도 독점적 출입처 기자실 제도는 바뀌어야 한다.

정보통신의 발달은 출입처 기자실을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과거 공중전화도 없고, 팩스도 없었던 시절, 기자실이 기자들의 취재활동에 커다란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동전화와 노트북 컴퓨터를 통해 어디서나 취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데스크와 기자의 수시 연락이 가능해져 기자들이 명령 즉시 현장으로 출동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취재원 근처를 서성거리면서 사건이 터지기를 대비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출입처제도는 보다 민주화되고 다양해지는 우리사회의 언론환경에도 적합하지 않다. 출입처는 정부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권위주의 시절에 유효하던 제도이다. 당시는 국민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 보다는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가 훨씬 더 중요했다. 그러나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그 양상은 달라지고 있다.

물론 정부기관은 여전히 중요한 취재원이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결정 만큼이나 정부의 정책에 대한 국민의 여론과 반응도 중요해졌다. 정부 관련 보도는 더 이상 정부에서 제공하는 취재자료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그 반대편에 서있는 국민들의 반응과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상응하는 비중으로 다루어야 한다. 따라서 정부부처의 기자실에 붙박혀 있는 기자는 이제 필요가 없다.

정부부처가 제시한 보도자료를 들고, 국민들 속으로 뛰어들어가 민심과 대비할수 있는 넓은 취재영역을 가진 기자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언론은 아직도 "발표저널리즘," "떼거리저널리즘"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출입처제도에 익숙해짐에 따라 출입처의 공보담당자들이 갖다주는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소극적인 취재관행 때문이다.

기자들의 입장에서는 피곤하게 현장을 누비며 기사거리를 찾거나 취재하지 않아도 취재원들이 알아서 기자실로 보도자료를 가져오고 브리핑을 해주니까 편리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출입처제도에 안주하는 기자들은 언론인으로서의 전문적인 취재보도기능을 스스로 퇴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출입처 관행에 익숙한 우리나라 기자들은 적극적으로 취재원을 발굴하고, 다른 기자들과 차별성을 가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왔다. 특히 자기 스스로 기사를 발굴하고, 취재원을 관리하는 능력을 배양할 기회를 포기했다. 그 결과 언론인으로서 전문성을 갖춘 언론인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우리사회에 엄청나게 깔려있는 부정과 부패를 헤집고 들어가 감춰진 진실을 전달해주는 기사들을 발견하기 힘든 것도 바로 출입처 제도 때문이다. 기껏해야 검찰의 수사발표나 감사원의 적발 보고서를 갖고 흥분하는 것이 우리 기자들의 보편적인 행태이다.

출입처로 쏟아져 들어오는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기자들은 자신들이 정보화 시대에는 더 이상 필요없는 퇴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 독자들의 뉴스수요가 달라지고 있음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언론계가 종이신문과 공중파방송의 양대 축으로 짜여져 있던 시절, 독자와 시청자들이 요구하던 주요 뉴스는 스트레이트 뉴스였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의 독자와 시청자들은 단순 뉴스보다는 재미있거나 심층 분석한 뉴스를 언론으로부터 기대한다. 단순 뉴스는 이제 컴퓨터 통신이나 대안 매체를 통해서 손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과 방송으로부터 독자와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뉴스는 그 속에 맥락과 의미와 분석이 담긴 뉴스이다. 독자나 시청자로부터 "아 그래서 그렇구나!" 하는 반응을 얻을 수 있는 뉴스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심층분석뉴스는 각 기자들에게 고정 출입처를 배정하는 경직된 취재방식으로는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다. 출입처제도는 뉴스취재의 구역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뉴스는 구역과 관계없이 발생하고 진행된다. 뉴스는 호우속의 강물처럼 역동적으로 흘러내려가는데 기자들은 일정 간격을 두고 보초를 서면서 취재하고 있는 것이 현행 출입처 제도이다.

강가에서 지켜보는 기자가 아니라 강물을 따라 같이 흘러내려가는 기자만이 그 뉴스를 정확하게 취재 보도할 수 있다. 현재의 출입처제도는 그와 같은 효율적인 뉴스추적을 어렵게 한다. 기자들이 자기 담당구역을 벗어낫다는 이유로 추적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언론사 경영자의 입장에서도 출입처제도는 득이 될 것이 없다. 출입처 제도란 한명의 기자가 강물의 시작에서 끝까지 따라가면서 취재보도 해야할 기사를, 강변 곳곳에 기자를 배치해 강물의 흐름을 살피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인력낭비인 것이다.

과거나 미래나 언론사의 사활이 효율적인 인력관리에 달려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제 우리 언론도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인력을 배치해 뉴스를 생산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출입처 제도와 같이 첨단 정보통신시대의 효율적인 인력관리와는 거리가 먼 전근대적인 뉴스생산방식은 과감히 폐기해야 할 것이다.

한편 출입처 기자실은 매우 효과적인 언론플레이의 창구로서 취재원들에 의해 악용되어 왔다. 기자들이 취재원을 포섭하기 보다는, 기자들이 취재원들에게 포섭되어 정부나 기업의 감시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례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특히 출입처의 기자실은 해당 부처를 취재하는 모든 언론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요일간지와 방송 등 기득권 언론에게만 배타적으로 주어진다. 이처럼 특권화된 우리나라의 출입기자제도는 다양한 언론부조리의 근원이기도 한다. 기자들간의 동업자 보호의식과 상호담합으로 인해 뉴스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전달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기자들이 개인적으로 행할 수 없는 향응접대, 촌지수수, 엠바고 등이 기자단, 혹은 기자실이라는 집단을 이용해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우리 언론계에서 관행상 유지되어온 출입처 기자실 제도는 기득권언론과 권력과의 이해가 맞아 유지되어온 비민주적 관행이었다. 출입처 기자실 제도는 기득권 언론이 아닌 대안언론이나 군소언론의 취재원 접근권을 차단함으로써, 국민이면 누구나 균등히 누려야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의 기자실은 국민의 알권리를 제약하고, 정부나 기업의 언론플레이를 유도하며, 언론인의 자질향상에도 치명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다.

따라서 기자실 형태로 운영되는 현행 출입처 제도는 하루속히 바뀌어야 한다. 특정 기득권 언론에게만 주어지는 출입기자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소속에 관계없이 기자라면 누구든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는 환경을 정부는 보장해야 한다. 굳이 기자실이 필요하다면 특정 언론사 기자들의 폐쇄적 독점적 공간이 아니라 모든 언론인들에게 늘 공개되어 있는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한다.

정보화 사회에서 언론이 살아남는 길은 취재보도 기능을 십분 발휘해 부가가치가 높은 뉴스와 정보를 독자와 시청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자들이 적극적인 취재보도를 통해 창출하는 것이지, 출입처 공보담당자들이 가져다주는 보도자료를 적당히 옮기는 것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행 출입처제도로 구획화된 전근대적인 취재시스템으로는 더욱 복잡해지고 유동적으로 변하는 정보화 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뉴스를 제공할 수 없다.

독자와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질높은 뉴스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그리고 언론인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서도 현행 출입처 제도는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과 같은 출입처 기자실을 그대로 두고는 절대로 언론개혁이 실현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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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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