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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에 충실? 대전중부경찰서 전경.
ⓒ 심규상
경찰이 집단폭행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으나 폭행 용의자를 보고도 제대로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고 지나친데다 이들의 은신처에 대한 제보를 받고도 검거를 위한 노력을 외면해 결과적으로 용의자들의 도주 및 사건 은폐를 도왔다는 주장이 피해자로부터 제기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이인범(22. 대전시 서구 탄방동. 당시 휴가중 군인)씨와 이씨의 동생 이인성(19)씨는 지난 10월 13일 밤11시 경 귀가를 위해 대전시 중구 문창동 일대 골목을 지나다 괴청년들로 부터 '쳐다봤다'는 이유로 집단 폭행을 당해 중상을 입었다.

특히 동생 이인성(22. 서구 탄방동)씨는 쇠파이프 등으로 온 몸을 맞아 머리가 부어오르는 등으로 현재까지 혼수상태에 빠져 있으며 폐렴 등 합병증까지 겹쳐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이인범씨 또한 코뼈가 부러지고 온 몸에 심한 타박상을 입었다.

이와 관련 피해자 이씨와 이씨 가족들은 지난 10월 18일 당시 사건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을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대전지검에 고소했다. 다음은 피해 당사자인 이씨의 증언 내용.

"13일 오후 11시경이었다. 동생과 차를 타고 골목을 지나는데 다짜고짜 한 괴청년이 쫓아와서는 우리 차에 뭔가를 집어던졌다. 확인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자 청년은 "왜 기분 나쁘게 쳐다보고 가느냐"며 갖은 욕설을 퍼부었다. 동생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따지자 괴청년은 "손 좀 봐줘야 겠다"며 휴대폰으로 연락을 취했고 여관 근처에서 곧 3명이 달려 나왔다.

▲ "직접 당하고 보니..억울하고 분통이 터집니다" 폭행 피해자 이인범씨.
ⓒ 심규상
이들은 쇠파이프 등으로 동생과 나를 사정없이 두둘겨팼고 동생이 쓰러지자 머리를 밟고 아스팔트 위로 끌고다녔다. 그리고는 쇠파이프로 동생이 몰던 차 유리를 모두 깨뜨렸다.

그대로 두면 동생이 죽을 것만 같아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그때마다 폭행이 계속됐다. 한 청년이 동생을 어디론가 질질 끌고 갔다. 나중에 알아보니 인근 공사판에 버렸다고 했다. 다행히 길을 지나던 주민이 경찰에 신고(오후 11시 10분경)했는지 경찰차가 나타났다.(오후 11시 30분경).

'이제 살았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차에서 내려보지도 않은 채 창문을 통해 "무슨 일 있냐"고 물었고 괴청년들이 "아무 일 없다. 신경 쓰지 말고 가라"고 하자 그대로 현장을 벗어나려 했다.

그냥 경찰이 떠나면 이들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아 "살려주세요"하고 몇 번을 소리쳤다. 하지만 경찰차는 그냥 가버렸다. 당시 나는 얼굴은 물론 옷 전체가 피범벅이 돼 있었고 내가 있던 자리는 가로등 아래여서 눈여겨 보지 않아도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다.

경찰이 가고난 뒤 또 맞았다. 경찰도 손 못대고 갔으니 이젠 죽었구나 생각했다. 군인 신분임을 밝히고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신고하면 죽여 버린다고 위협한 후 풀어줬다.(오후 11시 45분경)

아버지께 전화를 통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경찰에 신고하고 동생을 찾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아는 형들에게 전화해 도와달라고 했다. 10분 뒤쯤 형들과 경찰차가 왔다. 아까 왔던 그 경찰이었다. 그 경찰을 보고 "살려달라고 했는데 왜 차에서 내려보지도 않고 그냥 갔느냐"고 따지자 "못 들었다"고 했다. "환한 가로등 아래에서 얼굴과 온몸이 이처럼 피범벅인데 보고도 모르냐"고 했더니 이번에는 "못 봤다"고 했다.

나를 때린 사람들이 여관에 있는 것 같다며 인근 여관을 조사해 검거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경찰은 차량지원을 받자며 시간을 끌었다. 보다못해 같이 있던 형들이 우리가 도울 테니 도망가기 전에 잡으러가자고 하자 경찰은 "혹시 당신들이 범인 아니냐"고 도와주러 온 형들에게 뚱딴지 같은 소리만 했다.

다시 10분쯤 뒤에 인근 파출소에서 순찰차가 더 왔고 인근 여관에 들어갔다. 하지만 경찰은 무슨 이유인지 카운터에 가서는 "여기 건장한 청년 3-4명 입실해 있냐"고만 묻고 여관 주인이 "없다"고 하자 그냥 나왔다. "객실 조사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따지자 경찰은 "걔들 자주 본 애들이다. 안면 있는 애들이니 내일 아침 잡아주겠다. 걱정하지 말아라"고 그냥 갈 것을 종용한 후 현장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경찰은 다음 날 아침에도 이들을 검거하지 못했다. 사건 발생 5일 뒤인 18일 새벽 가해자 중 한 사람인 이아무개씨(26)가 '자진출두'해 제 발로 걸어 들어온 한 사람만을 붙잡았을 뿐이다.

중부경찰서 관계자는 "나머지 세 사람은 도주해 있는 상태로 가족들을 상대로 은신처를 파악하는 등 검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씨 등이 집행폭행 당한 대전시 중구 문창동 현장 골목.
ⓒ 심규상
하지만 자진출두한 가해자는 경찰진술을 통해 이씨 등이 먼저 쇠파이프를 들고 덤벼 정당방위 차원에서 싸움을 했다고 엇갈린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결과적으로 경찰이 폭력배들의 도주와 사건 은폐를 도왔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며 "경찰이 늑장출동에다 피해를 당한 시민을 도와주기는커녕 폭력배들에게 유리한 일처리를 하는 것을 직접 당하고 보니 억울하고 분통해 말도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사경을 헤매고 있는 동생의 억울한 사정을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느냐"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와 관련 대전 중부경찰서 관계자는 "현재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 관련 경찰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며 "진술이 엇갈리고 있어 조사가 마무리돼야 진위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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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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