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하는 송교창·허웅 21일 오후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부산 KCC와 원주 DB의 4차전 경기. KCC 송교창이 득점에 성공 후 허웅과 기뻐하고 있다.

▲ 기뻐하는 송교창·허웅 21일 오후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부산 KCC와 원주 DB의 4차전 경기. KCC 송교창이 득점에 성공 후 허웅과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라건아를 앞세운 프로농구 부산 KCC가 사상 첫 정규리그 5위팀의 챔피언결정전 진출이라는 새 역사를 현실로 이뤄냈다.
 
4월 21일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린 '2023-2024 프로농구 4강 PO(5전 3승제)' 4차전에서 KCC는 정규리그 1위팀 원주 DB를 80-63으로 완파했다. 이로써 KCC는 시리즈 전적 3승 1패를 기록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선착하여 창원 LG-수원 KT(2승 1패로 LG 리드) 승자와 맞붙게 됐다.
 
라건아가 17점 17리바운드의 더블-더블에 무려 3개의 3점슛과 6개의 블록슛까지 더하며 그야말로 공수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송교창이 14점 6리바운드 3어시스트, 최준용이 10점 8리바운드 4어시스트, 허웅이 14점 4어시스트, 이승현이 9점 4리바운드로 모든 선수가 고르게 활약했다. 2옵션 외국인 선수 알리제 존슨은 불과 5분 44초만 출장하고도 두 자릿수 득점(10점)을 올렸다.
 
DB는 MVP 듀오 디드릭 로슨(16점 8리바운드 4어시스트)과 이선 알바노(14점 2어시스트 5리바운드)가 30점을 합작하며 분전했으나 극심한 야투난조가 발목을 잡았다. DB는 이날 야투율이 고작 30.3%(23/76)에 그쳤고 3점슛도 28개를 난사했으나 림을 가른 것은 고작 6개(21.4%)에 불과할 만큼 경기 내내 졸전을 펼쳤다.
 
프로농구 역사에서 5위팀의 챔프전 진출은 KCC가 사상 최초다. 종전 플레이오프에서 가장 낮은 순위로 챔프전에 오른 경우는 2008-09시즌의 서울 삼성과 2010-11시즌의 원주 DB(당시는 동부)로 당시 순위는 4위였다. 하지만 두 팀 모두 챔프전에서 나란히 KCC에게 무릎을 끓으며 우승에는 실패했다.
 
공교롭게도 전창진 KCC 감독은 2010-11시즌 당시 부산 KT(현 수원)의 감독으로 팀을 정규리그 1위로 이끌고도 4강에서 덜미를 잡히며 챔프전 진출에 실패하는 굴욕을 겪은 바 있다. 공교롭게도 당시 상대가 친정팀이자 김주성 감독이 현역으로 있던 시절의 원주 DB였다. 그런데 13년 만에 입장이 180도 바뀌어 이번엔 전창진 감독이 김주성 감독의 DB의 통합우승을 저지하는 '하위시드의 반란'에 주인공이 됐다.
 
KCC는 올시즌을 앞두고 라건아, 허웅, 이승현, 최준용, 송교창, 알리제 존슨으로 이어지는 국가대표급 초호화 전력을 구축하며 '슈퍼팀'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주축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 조직력의 엇박자로 인하여 정규리그에서는 30승 24패로 5위에 그치는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 전창진 감독은 정규리그의 부진을 자책하며 봄농구에서의 설욕을 다짐했다.
 
정규리그 막바지에야 부상선수들이 복귀하며 완전체 전력을 구축한 KCC는, 단기전인 플레이오프에서 전혀 다른 팀이 되어 있었다. KCC는 6강플레이오프에서 4위 서울 SK를 3연승으로 가볍게 스윕하며 심상치 않은 기세를 드러냈다.
 
4강에서는 정규리그 1위팀 원주 DB를 만났지만 KCC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정규리그 상대전적에서 1승 5패로 크게 밀렸던 KCC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강력한 수비와 골밑장악을 바탕으로 DB의 공격을 꽁꽁 묶어내며 내내 시리즈를 주도했다. KCC는 SK와의 3연전에서 평균 21.6점차를 기록했고, DB전에서도 유일하게 패배한 2차전(71-80)을 제외하면 승리한 경기에서는 DB를 평균 13.6점차로 압도하며 대부분 막판 접전 없이 승부를 일찍 결정지었다.
 
KCC 플레이오프 돌풍의 선봉장은 단연 라건아다. 정규리그에서는 에이징 커브 조짐등으로 15.6점, 8.4리바운드라는 다소 아쉬운 성적을 기록하며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도 들었지만, 봄농구에 접어들면서 완벽하게 부활했다. 플레이오프 7경기에서 평균 23.3점, 13.1리바운드로 20-10을 달성하며 전성기 못지 않은 생산력을 과시했다. 특히 야투 성공률이 무려 67.7%(65/96)로 거의 7할에 육박하는 괴물같은 활약을 선보였다.
 
라건아는 전성기인 울산 현대모비스 시절 3연패 한 차례 포함 4번의 우승을 차지하며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군림했다. 하지만 현대모비스를 떠나서는 우승하지 못했다. 삼성과 KCC에서도 각각 챔피언결정전에 올랐으나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나이를 감안할 때 어쩌면 올시즌이 KCC는 물론 한국무대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될 수도 있기에 더욱 의미가 있는 도전이다. 라건아가 다시 한번 정상에 오른다면 외국인 선수로서는 5회로 개인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세우게 된다.
 
도우미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KCC는 정규시즌까지만 해도 좋은 선수구성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의 손발이 잘 맞지 않았다. 부상 문제도 있었지만, 개성과 자존심이 강한 스타 선수들간의 융화가 쉽지 않았던 부분도 컸다.
 
하지만 플레이오프들어 부상에 돌아온 송교창과 클러치타임에 강한 허훈이 내외곽에서 든든하게 중심을 잡아줬다. 최준용은 심리적으로 기복은 있었지만 농구에만 집중했던 경기에서는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며 게임체인저로 등극했다.
 
여기에 정규시즌에서 부진했던 이승현과 켈빈 에피스톨라, 알리제 존슨 등이 출전시간과 잔부상 등에 구애받지 않고 팀을 위해서 헌신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KCC는 한창 탄탄해진 팀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전창진 감독은 봄농구에서 KCC의 반등 비결을 '희생'으로 꼽으며 선수들이 욕심을 접고 이타적인 플레이의 중요성을 깨닫고 각성한 것이 상승세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KCC의 상승세에 유일한 악재는, 시리즈 도중 벌어진 판정 논란이었다. 지난 3차전에서 최준용과 디드릭 로슨의 충돌 상황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KCC측에 유리한 판정이 내려졌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DB는 휴식일인 20일 저녁 김주성 감독이 직접 서울까지 올라가 심판설명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KCC 측 역시 지난 2차전에서 심판설명회를 요구했다며 판정 수혜 의혹을 단호하게 부인했다.
 
전창진 감독은 4차전을 앞두고 "약이 올라서라도 더 이기고 싶다"며 불쾌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는 KCC의 투지를 더 자극하는 결과로 돌아왔다. KCC는 4차전에서 초반부터 그야말로 DB를 압도하며 판정 의혹과 관계없이 충분히 승리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경기력으로 증명했다.
 
반면 DB는 정규시즌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에도 불구하고 챔프전 진출에 실패한 최초의 팀이라는 불명예 신기록을 수립하여 아쉽게 시즌을 마무리했다. 정규리그 1위가 4강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건 2008~2009시즌(울산 현대모비스)과 2010~2011시즌(부산 KT)에 이어 3번째다.

4강 직행 이후 휴식기가 오히려 경기감각에는 독이 된 듯, 선수들의 컨디션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로슨과 알바노가 KCC 수비의 집중견제에 내내 고전하며 기록에 비하여 무리하고 비효율적인 플레이가 많았다. 이를 지원해줘야 할 국내 선수들의 동반 부진도 심각했다. 강상재가 4경기 내내 한 자릿수 득점에 묶였고, 김종규는 3, 4차전에서 2경기 연속 5반칙 퇴장당하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정규시즌에 쏠쏠한 공헌도를 보였던 식스맨들의 활약도 플레이오프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결과론이지만 구단과 갈등을 빚으며 전력에서 이탈한 가드 두경민의 빈자리도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DB의 원클럽맨 출신으로 올시즌 첫 정식 지휘봉을 처음 잡은 '초보' 김주성 감독은 데뷔 첫해 정규리그 우승에도 불구하고, 봄농구에서는 아쉬운 마무리로 인하여 '절반의 성공'에 만족해야 했다.
 
KCC는 내친김에 사상 첫 5위팀의 챔프전 우승이라는 역사에 도전한다. 프로농구에서 가장 낮은 순위로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던 사례는, 남자농구에서는 3위(2020-21시즌 정관장 등 총 5회 ), 여자농구에서는 4위(2020-21시즌 용인 삼성생명, 1회)였다.  NBA(미프로농구)에서는 1994-95시즌 하킴 올라주원을 앞세운 휴스턴 로케츠가 서부 6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올라 우승한 것이 역대 기록이다.
 
KCC가 챔프전에 오른 것은 2020-21시즌 이후 3년 만이다. 당시 KCC는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고도 제러드 설린저를 앞세운 안양 정관장(당시는 KGC)에게 4전 전승으로 완패하며 통합우승에 실패했다. KCC의 마지막 우승은 2010-11시즌으로 13년 전이다. 사령탑 전창진 감독은 원주 DB 감독시절인 2007-08시즌 이후 16년 만이자 개인 통산 4번째 챔프전 우승에 도전한다.
 
통산 6번째 우승에 도전하는 KCC는 새 연고지 이전 첫해 만에 챔프전 진출에 성공하며 '부산에서의 첫 우승'을 노린다. 프로농구에서 부산 연고팀이 챔프전 우승을 차지한 것은 프로농구 출범 원년인 1997년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현 울산 현대모비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27년 만의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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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KCC 라건아 원주DB 프로농구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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