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이런 게 문제가 아니야?"

tvN <눈물의 여왕>과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뒤늦은 혹평을 받고 있다. 비판의 주인공이 된 에피소드는 <눈물의 여왕> 3화, 그리고 <슈퍼맨이 돌아왔다> 518화. 모두 한국에서 방영된 지 2주가 넘어간 회차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잠잠했던 방송이 해외로 넘어가며 역풍을 맞고 있다. 해당 회차에 담긴 아프리카를 향한 왜곡된 인식이 그 이유다.

지난 12일 방영된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는 아이 훈육 과정에서 "아프리카 애들은 이런 거 못 먹어", "아프리카 애들은 빵 말고 흙만 먹어" 등의 발언들이 여과 없이 송출되었다. 16일 <눈물의 여왕> 3화에선 한 캐릭터가 아프리카 여행담을 털어놓으며 "나의 20대는 야생과 야만으로 채워졌다", "창밖 풍경만으로 야생은 느낄만큼 느꼈다"고 표현했다. 한국 예능과 드라마의 무감한 아프리카 문화 왜곡에 해외 시청자가 반기를 들었다.
 
해외를 들썩이게 한 '슈돌'의 아찔한 훈육?
 
 틱톡 사용자(@x2***)의 게시글

틱톡 사용자(@x2***)의 게시글 ⓒ tiktok

 
<슈퍼맨이 돌아왔다>(아래 '슈돌') 518화에선 가수 바다가 음식을 남기는 자녀를 훈육하는 에피소드가 실렸다. 바다는 편식하는 자녀를 향해 "아프리카 아기는 이런 음식(피자)을 못 먹는다"고 이야기했고, 자녀는 그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이후 바다가 빵에서 딸기를 골라 먹는 모습을 보며 "아프리카에서는 빵 안 먹고 흙만 먹어"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해당 에피소드가 해외 소셜 미디어 틱톡에 퍼지며 해외 시청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23일 틱톡에는 "아프리카를 향한 한국인들의 인식이 이러한가"라는 코멘트와 함께 해당 회차를 비판하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이에 "무지는 학습되는 것이고 어른들은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한국의 교육 수준은 높은데 문화적인 교육은 무지하고 부족하다", "우리가 흙을 먹는다고? 들어본 적 없다" 등 거센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해당 게시글이 X(옛 트위터)로 퍼지며 프로그램은 물론, 문화적 차별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한국 전반을 향한 따가운 지적도 나왔다. "한국은 해외 문화에 대해 무지하다", "이래서 더 이상 한국 문화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됐다" 등 타 문화에 대한 왜곡은 비단 '슈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이다. 이미 문화 왜곡, 제노포빅(외국인 혐오) 등으로 논란이 되었던 과거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해외 시청자의 경험이 '슈돌'과 합쳐지며 비판의 물결이 일고 있다.

'슈돌'이 보여준 차별적인 발언은 출연진 개인만의 일이 아니다. "아프리카 애들은 굶어 죽는데, 너희는~"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사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쓰인 편식에 대한 훈육법이다. 유튜브 채널 '코리안브로스'에선 한 외국인 출연진이 "한국 영화에선 음식을 남기면 '세상에, 다 먹어야지! 지금도 아프리카 아이들이 굶어 죽고 있다고!'라고 하더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한국 가정과 학교에서 자주 통용되는 '교육 방법'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화하였고, 아프리카는 달라졌다. 지난 2월 아프리카개발은행(afDB)의 '아프리카 거시경제적 성과 및 전망(MEO)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11개국이 올해 경제성장률 상위 20개국에 이름을 올릴 예정이다. 이제 아프리카를 가난한 나라라고 떠올리는 것은 마치 한국을 여전히 원조 수원국으로 바라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혹여 아프리카가 경제적으로 성장하지 않았다 해도, 타인의 불행을 통해 나의 행복을 확인하는 훈육법은 아쉬움을 남긴다.
 
드라마 속 한 캐릭터의 허세가 불러온 참사
 
 <눈물의 여왕> 3화 중 한 장면.

<눈물의 여왕> 3화 중 한 장면. ⓒ tvN

 
<눈물의 여왕> 3화에선 캐릭터 '홍수철(곽동연 분)'의 대사가 비판의 중심이 되었다. 홍수철은 아프리카 여행 경험을 떠올리며 "저의 20대는 야생과 야만의 대격돌이었죠"라고 이야기한다. 이에 다른 캐릭터가 '겨우 일주일 다녀왔고 모기 때문에 호텔에만 있지 않았냐'고 되묻자 그는 "창밖 풍경만으로 야생은 느낄만큼 느꼈거든요"라고 답한다.

물론 해당 장면은 캐릭터의 허세적인 면모를 부각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캐릭터의 특성을 드러내기 위해 아프리카를 왜곡된 방식으로 묘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에 해외 시청자들은 "아프리카는 대륙이지만, 여러 나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왜 아프리카를 마치 하나의 '야만적인 국가'로 묘사하는가", "한국 드라마의 시청자층에 아프리카인들도 있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는 '야만적인 대륙'이란 편견은 아프리카인을 향한 노예제도와 흑백분리 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해 시작된 관념으로 빈번히 여러 문화권 내에서 직간접적으로 되풀이되는 이미지다.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어리석고 무지한 캐릭터는 주로 흑인 배우가 맡거나 혹은 아프리카 문화를 우스꽝스럽고 야만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프리카를 향한 문화 왜곡에 해당한다.

K-자부심 말고 'K-반성' 필요하다
 
 해외 시청자(@jooo***)는 "아프리카를 한국 드라마 작가에게서 구해줘"라고 반응했다

해외 시청자(@jooo***)는 "아프리카를 한국 드라마 작가에게서 구해줘"라고 반응했다 ⓒ X

 
두 에피소드를 두고 <슈퍼맨이 돌아왔다> <눈물의 여왕>이 차별적인 프로그램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은연중에 드러난 당혹스러운 훈육법이 편집 없이 방영되고, 캐릭터의 성격 묘사를 위해 타 문화의 차별적인 이미지를 건드린다는 건 문화 왜곡과 차별에 무감한 한국을 되새기게 된다. 또한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자정적인 움직임보다 해외 시청자의 반응이 더 빨랐다는 점이 차별을 향한 한국의 태도를 보여준다.

K-팝, K-드라마 열풍으로 문화 강대국 반열에 오른 한국. 더 이상 한국 콘텐츠는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해외 시청자들의 예리한 레이더에 '무지한' 한국이 걸리지 않도록 문화 상대주의를 곱씹어야 하는 순간이다.
제노포빅 인종차별 슈퍼맨이돌아왔다 눈물의여왕 문화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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