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 대신 유아차. 국립국어원도, 서울시 여성가족재단도, 서울시 인권위원회도 권장한 대체 표현이다. 유모차에는 '어미 모(母)'만 들어갔기에 평등한 육아 개념에 반한다는 근거다. 즉, 여성에게 편중된 육아 부담을 개선하고 성평등한 언어로 변화하기 위한 시대적 흐름인 셈. 그러나 한 프로그램이 자막에 '유아차'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검열 방송이란 낙인이 찍혔다.

그 정체는 유튜브 채널 '뜬뜬'의 <핑계고>. 출연진들이 실생활에서 겪은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유모차'라는 표현을 사용하였고 자막에선 이를 '유아차'라고 정정하였다. 자칫 차별적일 수 있는 출연진의 언어 습관을 올바르게 바꾼 것. 하지만 이를 두고 일각에서 "틀린 단어도 아닌데 왜 바꾸냐", "과도한 언어 검열이다" 등 부정적인 여론이 일고 있다.

방송계에서 프로그램 자막으로 '유모차'를 '유아차'로 정정하였다가 논란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유아차'는 어쩌다 검열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유아차' 자막에 조롱 댓글에 신상 게시글까지
 
 < mini핑계고 >의 화면 갈무리, 세 출연진이 언급한 '유모차'가 자막에는 '유아차'로 표기되었다

< mini핑계고 >의 화면 갈무리, 세 출연진이 언급한 '유모차'가 자막에는 '유아차'로 표기되었다 ⓒ 뜬뜬 DdeunDdeun

 
지난 3일 공개된 < mini핑계고 >에는 MC 유재석과 게스트 박보영, 조세호가 출연했다. 이날 방송분에서 박보영은 조카들과 에버랜드를 가면서 유모차를 몰았던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세 사람은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누면서 '유모차'라는 표현을 사용하였고 자막에는 모두 '유아차'로 표기되었다.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과도한 언어 검열이란 의견이 제기되었다. 당사자들이 '유모차'라고 표현하였고 이 또한 잘못된 단어가 아닌데 정정한 것은 과한 처사라는 입장이다. 해당 영상에는 제작진을 향한 조롱 섞인 댓글과 7만여 개의 '싫어요'가 이어졌다. 또한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제작진의 실명을 거론하며 신상을 유추하는 게시글도 올라왔다.

이에 < mini핑계고 >의 '유아차' 자막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백래시의 일환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유아차'는 2018년 서울시와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진행한 '성평등 언어사전 시민 참여 캠페인'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시민들이 직접 성차별적 표현을 발굴해 개선하자는 취지로 활동 이후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이 제정되었다.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은 어린아이를 태워 밀고 다니는 수레를 뜻하는 '유모차(乳母車)'에 '어미 모(母)'만 포함돼 여성에게 육아 책임이 있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고 밝혔다. 이에 '유모차'를 '유아차'로 바꿔야 한다는 사회적 움직임이 일었고 서울시 인권위원회, 국립국어원 또한 '유아차' 사용을 권고했다. 즉, '유모차'는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변화한 시대를 담지 못한 차별적인 언어이다.

한편, '유아차' 자막 표시가 "변화한 시대에 적합한 표현이다", "시대가 변화하면 단어도 바뀌기 마련이다" 등 긍정적인 변화라는 의견도 있다. < mini핑계고 >의 '유아차' 자막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유아차' 사용 논란, 처음이 아니다
 
 라디오스타 802화 화면갈무리

라디오스타 802화 화면갈무리 ⓒ MBC

 
방송 프로그램에서 '유아차' 정정 자막을 사용하여 논란이 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방영된 MBC <라디오스타>에서 출연진 박세리가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유모차'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자막에는 '유아차'로 표기되었고 이에 대해서도 "출연진의 말과 다른 자막을 달 필요가 있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출연진의 말과 방송상 송출된 자막이 다른 경우는 빈번하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출연진이 브랜드명을 언급할 경우, 음소거로 처리하거나 자막에는 브랜드를 유추할 수 없게 표기한다. 출연진이 비속어처럼 과한 표현을 사용하였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는 모두 출연진의 발언을 올바르게 정정한 시도이며 모든 방송 프로그램이 생방송이 아닌 한 '편집'을 거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mini핑계고 >와 <라디오스타>의 '유아차' 자막 사용도 마찬가지다. 모두 성차별적인 언어 사용을 자제하고 성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방송계의 움직임이다. 결코 출연진의 표현을 검열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발언을 올바르게 정정하기 위한 시도다.

시대는 변화하고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언어학자 소쉬르의 말처럼 언어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유아차'는 성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사회의 변화된 흐름을 비추는 표현이다. '유아차'를 둘러싼 논쟁 또한 '유아차'라는 표현과 더불어 사회의 단상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현상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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