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라 너무 편하다. 행복해. 기 안 빨려서. (여자 댄서들은) 원래 되게 무서웠는데." -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아래 <스우파>), <스트리트 맨 파이터>(아래 <스맨파>) 진행자 강다니엘, 팬들과 주고받은 채팅에서

"<스우파> 때는 기싸움이라는 걸 하잖아요. 쟤 뭔데? 이러면서. 저희 <스맨파>는 대신 몸으로 부딪히다 보니까. 그래서 '리스펙'이 생기고." - <스맨파> 출연자 테드, 매거진 < GQ > 인터뷰에서

"여자 댄서들은 서바이벌에 질투와 욕심이 있었다면, 남자 댄서들은 의리와 자존심 싸움 등을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 권영찬 엠넷 책임 프로듀서, <스맨파> 제작발표회에서


<스우파>는 원래 존중받지 못한 기획이었다. 2021년 방영된 첫 시즌에는 원래 상금이 한 푼도 걸려있지 않았다. 이에 비난이 쏟아지자 뒤늦게 우승 상금 5000만 원을 추가했다. 프라우드먼, 홀리뱅, 라치카 등 업계에서 이름난 댄스 크루들이 참여했지만 대중 인지도는 높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들은 오직 춤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경쟁에 뛰어들었다. <스우파1>이 큰 성공을 거둔 이후, 2022년 남자 버전으로 제작된 <스맨파>(2022)는 처음부터 우승팀에 상금 5000만 원과 외제차, 대기업 광고촬영 기회를 내걸었다.

그러나 여전히 <스우파>에 대한 취급은 좋지 못했다. 지난해 <스맨파> 일부 출연진과 제작진은 두 프로그램을 비교하며 "여자 댄서들은 질투가 있다"거나 "기싸움 한다", "기빨렸다"는 말로 '노 리스펙(No Respect)'을 드러냈다. <스맨파>는 남자들의 의리와 자존심 등 존중을 담은 표현으로 추켜세우면서, <스우파>는 여자들의 기싸움, 욕심, 질투 등으로 낮잡아 봤다. 마치 여성 댄서를 '노 리스펙 약자 지목 배틀' 상대로 지목한 모양새다.

"여성 댄서들은 '질투'나 '욕심'이 있었다면, 남자 댄서들은 의리를 보게 될 것"이라던 제작진 발언과 달리, <스우파2> 시청자는 여성들의 의리, '리스펙'을 목격하고 있다. 특히 지난 10월 3일 방송된 6회에서 미나명과 리아킴이 화해하는 장면은 이 프로그램이 그토록 사랑받은 이유를 보여줬다.

'리스펙' 받지 못한 여자들이 서로를 '리스펙'하는 방법
 
 10월 3일 방송된 <스트릿 우먼 파이터 2> 6회 마지막 장면,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리아킴과 미나명이 포웅하고 있다.

10월 3일 방송된 <스트릿 우먼 파이터 2> 6회 마지막 장면,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리아킴과 미나명이 포웅하고 있다. ⓒ 엠넷

 
미나명과 리아킴의 관계는 방송 전부터 유명했다. 과거 두 사람은 '원 밀리언' 초창기 멤버로 10년여간 함께한 사이였다. 하지만 미나명은 안무가 처우 문제로 리아킴과 의견차가 생기면서 갈라섰다고 밝혔다. 미나명은 '원 밀리언' 댄서들을 주축으로 새로운 팀 '딥앤댑'을 꾸렸다. 이는 업계에서 널리 알려진 사연이었다.

<스우파2>는 이러한 사연을 가진 '원 밀리언'과 '딥앤댑'을 라이벌 구도로 그렸다. 첫회부터 리아킴은 '딥앤댑'에 "뭐라 하는지 보자"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미나명은 "제작 이력이 많으면 뭐하냐"며 리아킴을 공격했다. 9월 29일 전파를 탄 '노 리스펙 약자 지목 배틀'에서 갈등은 정점에 달했다. 리아킴이 '노 리스펙(no respect)' 댄서로 지목한 대상은 미나명이었다.

리아킴과 미나명은 서로를 도발하는 안무를 선보였다. 주먹을 겨누는 시늉, 발차기하는 동작을 연달아 수행하다가 분위기가 과열되며 리아킴이 미나명을 밀어내는 장면까지 연출되었다. 이에 심사위원 모니카는 "솔직히 별로였다. 너무 감정에 휩싸인 상태에서 서로를 비난하는 무빙을 하는데, 기량을 볼 수가 없었다"고 혹평했다. 두 사람은 심사평에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리아킴은 배틀 직후 소감을 묻는 인터뷰에서 "창피함이 밀려왔다. 부끄러운 배틀이었다"고 고백했고, 판정승을 거둔 미나명은 속시원히 기뻐하지 못했다. 후에 그는 "언니(리아킴)한테 창피하지 않게 하고 싶었어"라고 말했다. 이날 배틀을 계기로 갈등은 서서히 누그러졌다. 노골적인 자존심 싸움이 댄서로서 부끄러울 뿐이란 사실을 깨달은 듯 보였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2> '노 리스펙 약자 지목 배틀' 중 충돌하는 미나명과 리아킴

<스트릿 우먼 파이터 2> '노 리스펙 약자 지목 배틀' 중 충돌하는 미나명과 리아킴 ⓒ 엠넷

 
'딥앤댑'은 '올플러'와의 탈락 배틀에서 패하며 하차하게 됐다. 리더 미나명이 마지막 소감을 전한 사람은 오랜 불화를 겪은 리아킴이었다. 미나명은 "정말 치열했던 20대를 함께했던 원 밀리언을 이제는 놓아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지난 10년 동안 너무 감사했다고 인사드리고 싶다"고 고개 숙였다.

이에 리아킴 역시 눈물을 흘리며 "잘했다, 너무 고생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미나명은 "혜랑(리아킴의 본명) 언니가 잘했다고 해줬어"라며 울컥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오랜 악연은 '언니, 동생'이라는 자매애로 마침표를 찍었다. 방송 후 두 사람이 인스타그램 계정을 동시에 '맞팔'하자 <스우파2> 팬들은 열광했다.

이러한 서사는 시즌1의 서사와 겹쳐진다. 함께 일하다 사이가 틀어진 리아킴과 미나명은 허니제이와 리헤이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애초에 <스우파> 시리즈에 시청자가 푹 빠진 이유는 '악마의 편집'으로 만들어낸 '캣파이트' 때문이 아니었다. 댄서들이 서로 협력하고 때론 치열하게 대립하는 모습에 호응한 것이었다.

"난 멋이 없는 건 안 해"
 
 리더 계급 안무 채택 후 '올플러' 리더 할로는 "난 멋이 없는 건 안 해"라며 가장 멋있는 안무에 투표했다고 밝힌다.

리더 계급 안무 채택 후 '올플러' 리더 할로는 "난 멋이 없는 건 안 해"라며 가장 멋있는 안무에 투표했다고 밝힌다. ⓒ 엠넷

 
'올플러' 리더 할로의 말은 댄서들이 춤에 임하는 자세를 정의하는 한마디다. 이기고 지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 표현이기도 했다.

'계급 미션'은 각자 만든 안무 중 하나를 뽑아 댄스 비디오를 찍는 미션이다. 안무 채택을 위해 모인 리더 계급 댄서들은 경쟁의 유불리를 위해 '쉬운 안무'로 전략 투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안무에 소신투표했다.

"저는 사실 단점을 못 봤습니다." 할로는 경쟁자인 바다의 안무를 인정한다고 평가했다. '기싸움'만을 위해 세게 내뱉는 말은 없었다. 할로는 같은 안무가로서 바다를 존중하되,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는 자신감도 드러냈다.

여성을 향한 편견은 <스우파>를 '기싸움'이라고 깎아내렸고, 그러한 편견 위에 고안된 규칙은 서로를 깎아내리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스우파2> 댄서들은 그저 자신의 춤을 더 정교하게 조각하기로 했다. "언니를 창피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난 멋이 없는 건 안 한다"는 여성들은 춤에 대한 전문가로서, 부끄럽지 않은 춤을 만드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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