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4, 남자 농구 4강 진출 실패 3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8강전, 대한민국과 중국의 경기가 70-84, 대한민국의 패배로 끝났다. 경기 종료 뒤 대한민국 선수들이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 70-84, 남자 농구 4강 진출 실패 3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8강전, 대한민국과 중국의 경기가 70-84, 대한민국의 패배로 끝났다. 경기 종료 뒤 대한민국 선수들이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결국 반전은 없었다. 추일승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이 중국의 벽을 넘지 못하고 '노메달'이 확정됐다.
 
추일승호는 10월 3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8강전에서 중국에 70대 84로 패했다. 이로써 한국은 2006년 도하 대회(5위) 이후 17년 만에 메달권 진입에 실패하는 굴욕을 당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2014년 인천 대회 이후 9년 만의 금메달을 목표로 내세웠다. 아시안게임 직전에 2023 FIBA 농구월드컵이 열리면서 중국, 일본, 이란 등 아시아 강호들이 주축 선수들의 부상-휴식 등의 이유로 1.5군~2군에 가까운 전력을 꾸리면서 한국으로서는 모처럼 우승의 적기로 여겨졌다.
 
한국은 조별리그 D조에서 약체 인도네시아(95대 55)-카타르(76대 64)를 연이어 제압하며 2연승을 달렸다. 하지만 조별리그 최종전이자 8강 결정전이었던 일본전에서 77대 83으로 패하며 대회 플랜이 완전히 꼬였다.
 
D조 2위로 밀려난 한국은 8강에 직행하지 못하고 12강에서 바레인과의 경기를 한 번 더 치러야 했으며, 14시간 만에 다시 우승후보인 홈팀 중국과 8강에서 만나는 최악의 일정이 주어졌다. 모두 일본전 패배가 불러온 나비효과였다.
 
한국은 로테이션을 가동하면서도 바레인을 여유있게 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희망은 거기까지였다. 중국전에서는 바레인전에서 많은 시간을 뛰지 않으며 체력을 안배한 라건아-허훈 등 주전들을 총동원했음에도 1쿼터만 근소하게 접전이었을뿐 2쿼터에 이미 점수차가 20점 이상 벌어지며 승부가 일찍 기울었다. 한국은 경기 초반 라건아의 탭슛으로 먼저 선취골을 넣은 것이 이날의 처음이자 마지막 리드였고 이후 점수차가 벌어진 3, 4쿼터에는 한 번도 10점 차 이내로 좁히지 못하며 그야말로 완패를 당했다.
 
예고된 비극 '항저우 참사' 원인 3가지
 
작전 지시하는 추일승 감독 3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8강전, 대한민국과 중국의 경기. 1쿼터 대한민국 추일승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 작전 지시하는 추일승 감독 3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8강전, 대한민국과 중국의 경기. 1쿼터 대한민국 추일승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농구로서는 이번 '항저우 참사'에 대하여 그 어떤 핑계나 남탓을 하기 어렵다. 일본은 지난 농구월드컵에 출전한 정예멤버들이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고 젊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2~3군이었다. 중국도 간판센터 저우치가 빠진 상황이었고, 이번 한국전에서는 악명높은 홈콜(편파판정)이나 소림농구 등의 거친 플레이도 별로 나오지 않았다. 그에 비하여 한국은 최정예 멤버로 수개월간 아시안게임을 대비하고도 철저히 '실력'으로 밀린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대회는 아시아에서도 3류로 전락해버린 한국농구의 초라한 현실을 자각하게 했다는 점에서 더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농구는 한때 아시아무대에서만큼은 강호의 위상을 자부해왔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세대교체 실패와 세계농구 흐름과의 단절, 아시아농구의 상향평준화 같은 악재가 겹치면서 국제무대에서 점점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나마 아시안게임에서는 홈에서 열린 2002년 부산 대회와 2014 인천 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자존심을 지켰으나, 안방만 벗어나면 종이호랑이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이번 대회의 실패는 불운이나 이변이 아니라, 오랫동안 누적된 한국농구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누적된 끝에 벌어진 예고된 비극에 가깝다.
 
항저우 참사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최상의 전력을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 한국은 국내 최고의 토종빅맨 오세근을 비롯하여, 포워드진에서는 송교창-여준석-최준용-이현중-문성곤 등이 부상과 개인사정으로 연이어 하차하면서 전력이 크게 약해졌다. 이는 국제무대에서 대표팀의 높이 하락과 추일승 전술의 플랜 A였던 '포워드 농구'의 붕괴로 이어졌다. 대표팀은 결국 라건아와 허훈 등 몇몇 선수들의 컨디션과 개인능력에만 의존하는 플레이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대표팀의 국제경험과 협회의 지원 부족이다. 한국농구는 최근 몇 년간 FIBA 농구월드컵 예선(코로나19로 출전포기)과 파리올림픽 사전예선(여행금지국가인 시리아 개최로 출전포기) 등에 연이어 불참해 실격처리를 당하면서, 지난해 FIBA 아시아컵 이후 무려 1년 넘게 선수들이 국제경험을 쌓을 기회들을 연이어 날렸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나설 대표팀의 전력 강화를 위한 체계적인 지원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추일승호는 지난 7월 일본과 국내에서 열린 두 차례의 평가전, 아시안게임 직전에 급하게 추진된 일본 전지훈련을 제외하면 모두 국내 프로팀-상무 등과 연습경기를 치르며 대회를 준비해야 했다. 국제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은 돌발변수로 위기 상황에 직면했을때 스스로 헤쳐나가는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치명적이었던 부분은, 한국농구가 세계농구의 흐름에 한참 뒤떨어진 '무색무취하고 올드한 농구'만 고집했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농구의 장점이었던 속공과 3점슛은 이제 더 이상 국제무대에서 한국이 우위에 있는 요소가 아니다.
 
일본을 상대로는 무한 스페이싱과 빠른 패스워크에 이은 양공농구에 수비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며 무려 17개의 3점슛을 내주고 자멸했다. 중국에서는 높이싸움에서 완전히 밀리며 포지션을 아무리 바꿔도 미스매치가 없는 중국 선수들의 무한 스위칭 플레이에 공수 모두 고전을 면지못했다. 오히려 신장이 큰 중국 선수들이 작은 한국 선수들보다 더 빠르고 슛이 좋고 돌파까지도 가능했다.
 
중동이나 유럽팀도 아니고 이제는 같은 동아시아권 라이벌인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도, 높이-슛- 스피드-개인기 하나 어느 하나 우세를 점하지 못한다는 것이 지금 한국농구의 냉정한 현 주소였다. 그나마 아시아무대에서는 정상급으로 평가받는 수비 전술과 조직력으로 버텨왔지만, 일본과 중국전에서는 믿었던 지역방어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며 '수비농구'에 대한 환상도 깨졌다.
 
국제무대에서는 수비가 아무리 강해도 승부처에서 확실한 공격루트가 없는 팀은 버텨낼 수 없다. 경기가 안풀릴 때 1대 1로 경기를 풀어줄 해결사가 없는 한국은 라건아와 허훈이 가로막히자, 내내 드리블만 하다 수비를 달고 무리한 터프샷을 날리는 것 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일본과 중국도 세계무대에서는 아직 강호라고 하기는 어려운 팀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적어도 세계농구의 흐름을 수용하고, 대표팀 운영에 장기적인 비전과 추진력을 가지고 오랫동안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한국은 창의성도 국제 경쟁력도 없는 '한국식 농구'만 수십년째 고집해오다가 끝내 아시아에서도 3류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아시안게임 이후 당분간 한국이 나설 만한 국제대회도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 큰 위기는 어쩌면 이제부터가 시작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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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한중전 추일승호 순위결정전 노메달 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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