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백할거야> 스틸컷

영화 <고백할거야>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1.
<고백할거야>
한국 / 2021 / 14분
감독: 김선빈

사랑을 표현하는 일의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는 균형에 관한 것이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정도와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 사이의 평형을 유지하는 일. 이를 위해서는 상대의 감정을 잘 살펴보고, 서로의 마음이 함께 나아가고 있는지 정확하게 확인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랑의 감정이 귀하다고 한들, 일방적이기만 해서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감정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만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김선빈 감독의 영화 <고백할거야>에서는 학교 정문 앞에서 원치 않는 공개 고백을 받게 되는 성지원(김이슬 분)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수많은 학생과 선생님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신을 좋아한다는 남학생 한지원(김선빈 분)으로부터 강요당하게 된 마음. 심지어 대답까지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내일로 미룬 채 어렵사리 도망쳐 나오지만, 인터넷에는 벌써 자신의 영상이 떠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가 자신을 좋아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그녀. 두 사람 사이에는 이름이 같다는 조금 특별한 계기 말고는 떠오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교류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한 남학생의 잘못된 고백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이 시종일관 주목하는 자리는 그 감정을 일방적으로 떠안게 되는 쪽이다. 예상치 못한 당혹스러운 상황 앞에서 잠시 감정적 어려움을 겪게 되는 여학생이지만, 영화는 그 자리를 무력하고 위태로운 상태로만 두고자 하지 않는다. 감정의 교류 없이 홀로 쌓아 올린 일방적인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무너질 수 있는지, 또 무작정 꺼내놓은 고백의 호기로움이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지 거절의 장면을 통해 정확히 보여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한 가지 더, 이 짧은 에피소드를 지나는 동안 작지만 큰 성장을 했다고 볼 수 있는 인물 여학생 성지원을 두고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일에 대한 중요성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두 사람이 다시 만나기 전에 등장하는 학교 선배(강소령 분)와의 추격전은 여학생 지원이 남학생 지원에게 자신의 뜻과 감정을 전달하기 전에 마주하게 되는 작은 에피소드가 된다. 정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두 번의 과정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얻게 되는 평화. 영화의 마지막에서야 조심스러워야 할 자리와 단호해야 할 자리가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영화 <뭐해> 스틸컷

영화 <뭐해>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2.
<뭐해>
한국 / 2021 / 12분
감독: 신지수

유미(임유빈 분)는 외출 직전 갑자기 약속을 취소당한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하루를 보낼 생각으로 준비한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이리저리 연락을 돌려보지만 여의치가 않다. SNS 속 친구들은 다들 약속도 많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은데, 자신만 집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다. 예상하지 못한 약속이 생기지만 정작 또 누군가를 만나러 나가려니 생각만큼 몸이 움직여지지는 않는다. 역시 조금 전에 나가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 나갔어야만 했다.

영화 <뭐해>는 현실 세계의 모습만큼이나 SNS 상의 모습이 중요해진 현세대의 모습과 세태를 잘 투영해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세대가 관계를 맺고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하는 듯 보이지만 무거운 의중을 담고 있는 모노드라마에 가깝다. 오래된 사진을 마치 오늘의 일상이었던 것처럼 업데이트를 하고 집안 소파 위에 앉아 TV를 보며 식은 식빵 조각을 뜯어먹는 유미의 모습은 현실적이기만 하다. 너무 멀리 있어서가 아니라 아주 가까이 있어서 더욱 그렇다.

보통 누군가의 먹방은 허기를 대신하거나 순간의 배고픔을 참기 위해 시청하곤 한다. 목적 자체가 욕구의 해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속이는 것에 있다는 뜻이다. 유미가 작은 식빵 조각을 뜯어먹으며 치즈가 흘러내리는 두터운 햄버거 먹방을 부러운 듯이 지켜보는 장면 속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허상과 거짓된 욕망의 해소에 관한 모습이 모두 담겨있는 셈이다. 모두가 SNS 속 타인의 만들어진 모습을 바라보고, 자신의 모습을 똑같이 생성해 내고, 가까스로 현실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이 드라마의 가장 서늘한 장면은 유미가 부러운듯 지켜본 모두가 사실 그날 밤 유미와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같은 하루를 보냈다는 사실이다. 
 
 영화 <계란 카레라이스> 스틸컷

영화 <계란 카레라이스>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3.
<계란 카레라이스>
한국 / 2021 / 5분
감독: 서지형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뉘이는 여자가 있다.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귀가한 모습 그대로 자신을 내던진 그 가련한 모습 뒤로 학교와 아르바이트,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겪은 숱한 스트레스가 하이라이트 필름처럼 지나간다. 여기에는 불특정 다수로부터 행해진 보이지 않는 폭력도 함께다. 한편, 부엌에서는 그런 그녀를 위해 한 끼의 카레라이스가 만들어지고 있다. 재료를 씻고 썰고 한데 모아 뭉근하게 끓인 뒤에, 노른자가 살짝 터질 정도의 계란 프라이를 얹어 그릇에 담아낸다.

5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을 가진 애니메이션 영화 <계란 카레라이스>는 제대로 된 한 끼의 식사, 집밥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짧지만 따뜻한 작품이다. '맛있는 걸 먹고 모두 잊어버리자'는 귀여운 연출 의도로 시작된 이 작품은 힘든 일들의 순간과 카레를 만드는 과정을 번갈아 보여줌으로써 나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하루 일상 속에서 쌓이고 덮인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을 한 끼의 식사가 전달하는 온기를 통해 해소하고자 하는 소망과 이를 응원하는 마음이 함께 담겨있다.

앞서 잠깐 이야기한 것처럼 이 작품의 특징은 처음 시작에서 두 개의 다른 내러티브로 시작된 장면들이 중후반부를 지나며 자연스럽게 결합한다는 점에 있다. 카레라이스를 만들기 위해 준비되는 여러 재료들이 하루 속 부정적인 경험과 감정들로 비유되는 장면에서 서로 다른 두 과정이 겹쳐지게 된다. 이 모두를 입 안에 털어 넣고 난 후에 한결 기분이 나아지는 주인공의 모습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 하루의 스트레스를 긍정적으로 해소하고자 하는 데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단점은 딱 하나, 보고 있는 내내 배가 고파져 온다는 사실 뿐이다.
덧붙이는 글 이 작품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한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의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열여섯 번째 큐레이션 ‘나를 앓게 하는 영화들’ 중 한 작품입니다. 오는 2023년 9월 30일까지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회원 가입 후 시청 가능합니다.
영화 인디그라운드 고백할거야 뭐해 계란카레라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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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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