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스틸 이미지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스틸 이미지 ⓒ 한국영화다양성주간


우리나라 유·초등교육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는 여성이 많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학교가 '교육'을 넘어 '보육'의 기능까지 맡은 것도 한 가지 원인이라고 본다. 최근에는 일찍 출근하는 학부모를 위해 '아침돌봄교실'까지 운영한다. '오후돌봄교실'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우리 학교 병설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사의 대부분도 여성이다. 학교 행정실에도 여성이 많다. 학교 내외 청소를 돕는 사람도 여성이다. 급식을 마련해 주는 분도 모두 여성이다. 가르치고 돌보고 먹이는 일까지, 모두 여성의 노동이 주를 이룬다. 남자들이 많은 일터도 여럿 있겠지만, 내 일터는 이렇다는 얘기다.

학교 구성원 모두가 한솥밥을 먹는다. 점심시간, 우리 모두가 '교육공동체'임을 실감한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우리 학교 병설유치원 선생님은 앞치마를 두르고 급식실에서 배식차를 가져간다. 유치원 내에서 원생들은 밥을 먹을 것이다. 초등학생은 급식실에서 먹는다. 특수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도움반'의 선생님은 학생들의 식사를 돕는다. 몸이 불편한 학생들의 급식판에 음식을 담아다 준다. 덩어리가 큰 반찬을 잘라주기도 하고 생선 가시를 발라 주기도 한다. 옷에 음식을 흘리면 닦아주기도 한다. 반찬을 골고루 먹으라는 잔소리까지. 마치 가정집 식탁의 풍경 같다. 학생들이 식사를 마치고 나가면 급식 종사자가 식탁을 닦는다. 학교 급식실은 수런거림 속에서도 규칙과 질서를 이루어내고 있다.

글 초반부터 여성, 돌봄, 먹는 일 등의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본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 때문이다. 이 영화는 김보람 감독 작품이고 다큐멘터리다. 지난 17일 저녁,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8층 '인디페이스'에 도착했다. 좌석표를 배정받고 상영관에 들어갔다. 출연자는 두 명. 두 사람은 모녀지간이다. 어머니는 어깨 정도까지 내려오는 파마머리에 안경을 썼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여느 여자들의 목소리보다 톤이 낮았고 울림이 있었다. 매우 안정적으로 들렸다. 딸 채영씨는 쇼트커트 머리에 젊다. 여느 젊은 여성과 다름이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랫동안 섭식 장애를 겪고 있다. 2007년 15살, 어린 채영은 거식증으로 인해 폐쇄 병동에서 치료까지 받았다. 10년 후, 모녀의 대화가 영화 속에서 시작된다. 

거식증으로 고통받던 채영 씨가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더 이상 남의 통제를 받고 싶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통제하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단지 먹고 뱉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다였다고. 거식증이라는 게 단순한 생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요인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흔히 사람들은 어떤 질병이나 증상에 직면하면 그 원인을 찾는다. 이 모녀도 그랬다. 불행히도 그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그간의 어머니 행적이 의심을 자아낸다. 1990년 전후로 엄마는 노동운동가로 살았다. 어린 딸을 남에게 맡기고 엄마는 '바깥일'에 치중했다. 엄마는 자책한다. 자기 때문에 딸의 베이스캠프가 빈약했다고.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채영 씨의 외가도 베이스캠프로서의 역할이 탄탄하지는 않은 것 같다.

엄마가 외부활동을 하느라 채영 씨는 외로웠다. 남의 손에 맡겨진 어린 채영은 늘 '이방인'처럼 느꼈을 터이다. 엄마의 늦은 귀가, 외로운 딸. 일하는 엄마의 자녀라고 해서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아무래도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나이에는 영향이 작지는 않을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의심은 평면적이다. 아마 다른 원인이 있을 터인데, 영화는 그걸 말해주지 않는다. 얽히고설킨 인간의 삶을 어떻게 한마디로 말할 수 있으랴. 거식증의 원인 찾기, 이것은 관객의 몫이다.

여성의 육아, 특히 일하는 여성의 육아, 나아가서 '운동권' 여성의 삶. 자녀교육을 오롯이 여성에게 짐 지우는 사회 풍토. 단순히 외모를 위해 섭식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요인으로 인해 섭식장애를 겪는 '아픈' 사람의 삶. 할머니-어머니-딸로 이어지는, 여자-여자-여자로 이어지는 삶의 연속성. 영화에서 '아빠'에 대한 언급은 없다.

영화의 제목과 연관 지어 보았다. 모녀의 생활 속에서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은 거의 찾기 힘들다. 모녀가 마주하고 맛있는 식사를 한 적이 거의 없다. 모녀에게 먹는 일이란, 부자연스러움 자체다. 그러다가 채영 씨의 외할머니 제삿날. 모녀는 제사상에서 자연스럽게 식탁을 마주한다. 죽은 이의 식탁에 산 자가 나란히 앉는다. 먹는 일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두 사람의 인연을 만든 것도 따지고 보면 채영 씨 외할머니의 출산이었다. 채영 씨가 출생한 것은 어머니의 출산에 기인한 것이고.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스틸 이미지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스틸 이미지 ⓒ 한국영화다양성주간

       
영화가 끝나고 GV(Guest Visit:관객과의 대화) 시간이다. 관람석을 꽉 채운 관람객 누구도 일어나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기다려온 듯하다. 영화에 출연한 실제 인물과 감독이 무대에 자리했다. 어머니 박상옥 선생님. 딸 채영 씨. 두 사람의 겉모습은 영화 속과 같다. 목소리도. 영화가 최근 촬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엄마는 딸의 성장기에 함께하지 못한 부분을 자책했다. 엄마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성인이 된 채영 씨는 아름답다. 아무리 모녀지간이라도 인간의 내면을 완벽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터이다. 그런데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GV시간에도 아빠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다. 홀로 딸을 키운 엄마는 지금도 일을 한다. 대안학교 교사다. 여러 사연을 가지고 전국에서 모여든 청소년을 가르친다고 한다. 관객 중 박상옥 선생님의 제자가 다수 있음을 알았다. 그 제자들의 질문과 소감에서 선생님에 대한 존경이 느껴졌다. GV시간에 박상옥 선생님은 감독에게 질문한다. 이 영화의 주제가 뭐냐고. 감독도 명확하게 '이거다'하고 짚어주지 않았다. 주제 찾기, 이 또한 관객의 몫이다.      

먹고산다는 것, 때로는 비루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우나 이처럼 중요하고 위대한 일이 또 무엇이 있으랴. 언뜻 단순해 보이는 먹고사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고통이다. 먹고살려고 일하고 일하면서 부딪치는 삶의 시련 또한 제 각각일 것이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80억 명 인구의 얼굴이 다르다. 이 사람들은 80억 가지의 사연을 안고 살고 있을 것이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볼 일이다.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은 '23 한국영화 다양성 주간' 행사의 개막작이다. 한국영화 다양성 주간은 올해로 2회째라고 한다. '한국영화 다양성 주간'에 대해 공식 팸플릿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2023 한국영화 다양성 주간은 한국영화의 다양성과 포용성의 가치를 발견하고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영화진흥위원회와 여성영화인모임이 주최하고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 주최하는 영화 스크리닝과 포럼 및 토크를 결합한 행사입니다."
 
 2023 한국영화 다양성 주간 포스터

2023 한국영화 다양성 주간 포스터 ⓒ 영화진흥위원회

      
지난 16일자 <한겨레> 기사 "영화 현장 성폭력, 5년째 든든하게 막는 '든든'이 있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 포용 지표를 내놓았다. '한국영화의 다양성·포용 지표개발 및 정책 방안 연구'에서 정한 한국 영화의 7대 포용 지표는 '성별' '인종' '연령' '지역' '계급' '장애' '성 정체성'이다. 우리 사회가 이러한 여러 지표의 문제점을 풀어가는 공감과 배려와 지혜를 발휘한다면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 같다.

한국영화다양성주간에 상영한 영화는 <두 사람을 위한 식탁>외에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지옥만세> <그 여름> <다음 소희> <조이랜드>가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강지영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 2023한국영화다양성주간 섭식장애 거식증 김보람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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