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리그 레전드(선발&마무리 전천후 투수)

KBO 리그 레전드(선발&마무리 전천후 투수) ⓒ KBO

 
'레전드(Legend, 전설)'라는 말의 관용적 의미는, 흔히 한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거나 혹은 전설적인 업적을 남긴 인물을 지칭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그 인물이 걸어온 여정에 대한 존중(Respect)의 의미가 담겨있다.
 
스포츠건 어떤 분야건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단지 큰 성공을 거뒀다는 결과만을 의미하는 것을 떠나서, 자신만의 서사와 감동이 있어야 한다. 운동만 잘해서 좋은 성적을 올린 스포츠 선수라면 훌륭한 '기술자'라고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단지 그것만으로 레전드라는 수식어까지 붙일 수 있을까.
 
KBO(한국프로야구)가 리그 40주년을 기념해 선정한 '레전드 40인'의 마지막 4명을 공개했다. 여기서 도박과 사기, 세금 체납 등으로 숱한 물의를 일으킨 '칩드래곤' 임창용의 이름이 포함된 것이 눈에 띈다.
 
임창용은 지난 9월 19일 발표된 KBO리그 40주년 레전드 발표에서 송진우와 구대성, 김용수와 함께 '전천후 투수' 항목으로 분류됐다. 1995년 프로에 입문해 2018년 은퇴한 임창용은 한국, 일본, 미국 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한 몇 안 되는 선수였다.
 
특히 KBO리그에서는 통산 760경기에 등판해 130승 86패, 258세이브, 19홀드, 평균자책점 3.45의 성적을 남기면서 해태-KIA와 삼성에서 모두 한국시리즈 우승에 일조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5년간 무려 128세이브를 기록하며 최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한·미·일 통산 기록은 141승 99패 40홀드, 평균자책점 3.30이고, 386세이브는 오승환에 이어 역대 2위다.
 
KBO의 어설픈 해명

KBO의 레전드 40인은 추천된 후보 177명을 대상으로 전문가 투표(80%)와 팬 투표(20%) 결과를 합산한 다음에 상위 40명을 선정했다. KBO의 발표에 따르면 임창용은 전문가 투표에서 112표(57.44점), 팬 투표 46만 8798표(8.58점), 총 점수 66.02점으로 무려 21위라는 높은 순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야구'만 놓고봤을 때 임창용의 레전드 자격을 의심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실력에 완전히 반비례한 사생활과 자기관리였다. 임창용은 선수 시절은 물론이고 은퇴 후에도 숱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구설수에 휘말렸다. 특히 지난 7월에는 상습도박 혐의로 기소되어 임창용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300만 원, 4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기도 했다.
 
KBO도 물론 임창용의 논란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정을 강행했다. 이에 대하여 KBO측은 "이미 팬 투표와 전문가 평가가 완료된 이후였고, 선수의 굴곡 또한 야구 역사의 일부이기에 순위와 평가를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KBO의 어설픈 해명은 또다시 팬들의 불편한 여론에 오히려 기름만 부은 꼴이 됐다. 임창용을 둘러싼 논란은 최근에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임창용은 이미 삼성 라이온즈 시절인 2015년에 오승환-윤성환-안지만 등과 함께 '해외원정도박 파문'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며 야구계에서 퇴출될 뻔했다. 이번에 적용된 상습도박 혐의도 7년 전의 사건과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여기에 임창용은 2000년대 초반에는 간통죄가 아직 폐지되기 전 외도를 한 사실이 들통나 피소를 당하기도 했다. WBC 국가대표팀 시절이던 2017년에는 일본에서 전지훈련 기간 중 '무면허 운전'을 한 사실이 적발되어 국제망신을 당했다.

은퇴후인 2020년에는 국세청이 발표한 '고액 세금 체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며, 2021년에는 지인에게 빌린 돈을 갚지 않아 '사기 혐의'로 피소되기도 했다. 흔히 경기장 안에서 악동이라고 평가받는 선수들은 많았지만 이 정도로 많은 '실형급 범죄'에 해당하는 사고를 혼자서 저지른 경우도 찾아보기 힘든 역대급이다.
 
심각한 사회적 일탈이 '선수의 굴곡'?
 
 갑작스런 선발 전환 이후 부진에 빠진 KIA 임창용

지난 2018년 임창용의 모습. ⓒ KIA 타이거즈

 
이처럼 임창용은 절대 한두 번의 실수가 아니었고, 죄질도 나빴으며, 충분히 반성하거나 자숙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창용이 뛰어난 야구 성적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를 대표하는 레전드로 예우를 받아야만 하는지 팬들의 시선은 회의적이다.
 
KBO는 사전에 임창용의 레전드 40인 선정 자격을 논의하고 걸러낼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 평가' 점수 비중이 높았다는 이번 레전드 40인 선정에서 버젓이 임창용에게 예상보다 높은 순위를 줬다는 것이나, KBO가 구성원의 심각한 사회적 일탈을 고작 '선수의 굴곡' 정도로 안이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 해명이 더 놀랍다. 도대체 언제부터 개인의 심각한 도덕불감증까지 'KBO 역사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는지, 이런 황당한 발상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일까.
 
KBO가 발표한 레전드 40인은 단순히 올스타를 뽑는 것이나 인기투표를 하는 것과는 무게가 다르다. 말 그대로 역대 대한민국 프로야구사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닌 인물들을 선정하는 것이었고, 두고두고 역사에 남는다.
 
미국스포츠에 비유하면 메이저리그(미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이나 NBA(미프로농구)가 발표한 '위대한 75인' 등과 비슷한 무게를 지닌다. 이들은 레전드가 해당 리그와 종목에 남긴 업적과 기여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선정되는 것이다. 배리 본즈나 로저 클레멘스처럼 야구선수로서 엄청난 업적을 세우고도 명예의 전당 입성에 실패한 사례도 있다.
 
물론 레전드 40인 중에서 선정 자격에 논란이 있었던 것이 임창용만은 아니다. 누구나 살면서 크고작은 흠결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운동만 잘하면 인성이나 사생활은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것'과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도박과 사기, 탈세 등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야구를 잘하면 KBO가 공식 인정하는 레전드에 포함될수 있다는 전례를 남기는 것은, 자칫 구성원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임창용이 대체 무슨 기준으로 레전드 40인에 포함된 것인지, 과연 임창용을 대체할만한 레전드가 KBO 역사에 없었는지, KBO는 분명한 해명을 다시 내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 야구팬들의 존중과 축하를 받아야 할 레전드 선정기획이 임창용 때문에 오히려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란만 초래한 것은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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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용 레전드40인 K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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